2005년 겨울, 쪽방촌을 나오는 내 발걸음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누우면 벽에 발이 닿을 듯 좁은 쪽방에서 70대 어르신은 전기장판 하나로 긴 하루를 버텼다. 손바닥만 한 TV가 유일한 벗으로 보였다. 라면 국물이 눌어붙은 냄비와 허름한 이불채 등 한 뼘 방 안에는 가재도구들이 감출 곳 없이 쌓여 있었다.
생애 처음 본 쪽방은 사진이나 글로 접할 때보다 더 안타깝도록 열악했다. 방값은 하루 7000원으로 기억된다. 싼 월셋집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막연하게, 부조리하다 싶었다. 뉴타운 개발 열풍이 휩쓸던 당시 서울을 걸으며, 어설프고 어렴풋한 의문이 들었다. ‘최소한의 집과 삶을 보장하는 게 정부와 사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아닐까.’
15년 넘게 흐른 지금,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일깨우는 사건들이 지난 한 달 이어졌다. 관악·동작구 반지하 폭우 피해, 보육원 출신 청년들의 극단적 선택, 수원 세 모녀 비극까지 우리 사회 약한 고리들의 민낯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8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지난해까지 자산 투자 열풍으로 너도나도 주머니가 두둑해진 듯했고, 기본소득과 현금수당들은 우리 복지가 한 단계 올라선 듯 느끼게 했다. 열기가 빠진 후 드러난 현실은 처참했다. 여전했던 재난·복지 사각지대는 가장 힘든 계층의 희생을 불렀다.
지난 8일 밤 서울 관악구 반지하의 일가족 3명은 폭우로 무섭게 차오르는 물을 보며 절박하게 도움을 구했지만 빠져나올 수 없었다. 반지하 밀집 지역에 물막이판이 있었다면, 하다못해 안에서 열 수 있는 방범창이라도 보급됐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115년 만의 폭우는 기후위기가 유력한 원인으로 꼽히지만, 기후위기의 부작용은 에너지 다소비 국가·산업이 아닌 가장 취약한 계층을 강타했다.
보육원 출신 청년 두 명의 극단적 선택은 구멍 숭숭 뚫린 지원책을 돌아보게 했다. 지난 18일 광주에서 보육원 출신 대학 새내기가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라는 메모를 남긴 채 세상을 등졌다. 보육원에서 자란 다른 청년은 ‘삶이 고달프다’는 유서 12장을 남기고 떠났다.
이들은 빈곤, 성장 과정의 상처, 외로움 등 여러 아픔을 겪었다. 사회의 도움은 적었다. 부모의 품에 있는 청년들도 사회에 안착하기 힘든데, 이들은 맨몸이다시피 사회에 내던져졌다. 내년에는 보호종료아동의 자립수당이 오르고 전담 인력이 확충되지만 이들의 홀로서기를 지원하기에는 땜질 처방에 그쳐 보인다.
지난 21일 경기 수원에서는 암과 희귀병으로 생활고에 시달린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매달 125만원의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었지만, 빚에 쫓겨 숨어 살았다.
세 모녀의 참사는 다시금 복지제도의 맹점을 들췄다. 신청해야 받을 수 있는 혜택, 복잡한 신청 절차, 되풀이된 위기 가구 발굴 시스템의 실패가 거론됐다.
보육원 청년들과 수원 세 모녀 사건이 알려진 후 대안들이 쏟아지듯 제시됐다. 내년 복지 예산도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하지만 복지제도와 재난 대응의 허점을 조금이라도 해결하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돌봐줄 어른이 없는 아이가 건강하게 사회에 나올 때까지 나라가 책임지고 키우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제2의 보육원 청년과 세 모녀가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복지는 권리임을 당연시하며 공동체에 도움을 청하려면 선결 과제가 무엇인지는 8월을 떠나보내며 고민해야 할 우리 사회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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