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리스크에 성실히 대응하고
강성 지지층 의존 관성 탈피 등
당 외연 넓히기 위해 변신할 때
3·9 대선을 100일 남짓 앞둔 지난해 11월2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저도 민주당이라는 큰 그릇 속에 갇혀가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면서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의 민주당’ 후보로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10%포인트 이상 벌어지자 반전을 위한 승부수를 던진 것이었다. 그때로부터 9개월이 지나 그의 말대로 ‘이재명의 민주당’은 현실이 됐다.
이 대표가 수락연설에서 밝힌 것처럼 변방 출신 비주류 이재명은 여당 대선 후보에 이어 169석 거대 야당인 민주당의 수장이 됐다. 당권과 함께 2년 후 총선 공천권을 쥐고 5년 후 대선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대선에서 패배한 지 5개월 만이다. 전당대회 내내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 확대명(확실히 대표는 이재명) 분위기가 이어진 데다 77.77%라는 기록적인 득표율을 얻었으니 한껏 고무돼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대표 앞날이 장밋빛은 아니다. 그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불안감도 여전한 까닭이다. 발등의 불은 이 대표를 둘러싼 각종 사법 리스크다. 현재 성남 대장동·백현동 비리와 성남FC 후원금 의혹, 법인카드 불법 사용,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 10여개 의혹에 대한 검경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 대표는 이미 국회의원 당선과 당헌 80조 개정에 이어 당대표 선출까지 ‘3겹의 방탄복’을 입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제1 야당의 운명과도 얽혀 있는 사안이다. “나와 무관하다” “모르는 일”이라고 손사래 치는 걸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솔직하고 겸허한 태도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 대표가 떳떳하다면 먼저 나서서 의혹을 해명하고 수사에 임하는 게 옳다. 그리고 잘못이 있다면 책임져야 한다. 이번에 분명하게 매듭짓지 않으면 두고두고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 이 대표가 자신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해 당까지 끌어들여 극한 대치 국면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일각의 우려는 기우에 그쳐야 할 것이다.
정치를 황폐화하는 팬덤정치에 기대는 것도 우려스럽다. 친명(친이재명)계 박찬대 최고위원은 지난 29일 ‘권리당원 전원투표 우선’ 당헌 신설에 대해 “숙의를 해서 서두르지 않되 신속하게 거쳐나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했다. 권리당원 전원투표 신설안은 ‘이재명 방탄용’ 당헌 개정이란 논란 끝에 지난 24일 당 중앙위원회에서 부결된 사안이다. 그런데도 ‘개딸’(개혁의 딸) 등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이 요구하는 당헌 개정을 재추진하겠다는 것이다.
‘20년 집권’을 호언장담했던 민주당이 5년 만에 야당으로 전락한 건 강성 지지층에 휘둘린 탓이 크다. 이들에 의해 정책과 노선이 좌지우지되면서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커졌고, 유권자는 민주당을 외면했다. 강성 지지층에 끌려다녀선 안 된다는 경고가 잇달았지만 당 지도부는 귀를 닫았다. 그 결과가 대선과 지방선거의 잇단 패배였다. 팬덤정치와 결별하지 않으면 민주당에 등 돌린 중도층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 집권도 기대난망이다.
이뿐인가. 친명 일색의 새 지도부는 대여 강경 투쟁 노선을 밀어붙일 태세다. 친명계 최고위원들은 이 대표 취임 첫날부터 “윤석열정부의 폭주를 막겠다”고 강경 메시지를 쏟아내면서 김건희 특검,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을 외쳤다. 강경파가 당론을 좌지우지해 다른 목소리가 반영되기 불가능한 구조가 고착화하면 민주당은 지지층을 넓히기 어려워진다.
이 대표의 가장 큰 적은 윤석열정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이제까지의 이재명’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강성 지지층에 둘러싸여 무한 독주의 길을 가려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말 바꾸기 등으로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는 일도 중요하다. 이 대표의 변화는 민주당의 재건을 위해서도, 그의 대권 재도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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