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평창 육백마지기 하얀 날개 바람 따라 서둘러 가을 오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입력 : 2022-09-03 15:00:00 수정 : 2022-09-03 11:47:5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차박’ 명소 청옥산 정상 드넓은 초원과 하얀 풍력발전기 어우러져 낭만 가득/대관령하늘목장엔 양떼들과 하얀풍력발전기가 만드는 동화속 세상 펼쳐져 

 

육백마지기 정상 풍경

“위잉∼위잉” 풍력발전기 하얀 날개가 힘차게 허공을 휘저으며 돌아간다.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제대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불어오는 거센 바람. 반팔 소매 밑으로 드러난 맨살에 소름 돋을 정도로 추위가 몰려와 몸을 잔뜩 웅크려보지만 해발 1255.7m의 서늘한 기운을 도저히 막아낼 도리가 없다. 계절은 아직 여름 끝자락을 붙잡고 있으나 평창 청옥산 육백마지기엔 서둘러 가을이 왔다.

 

육백마지기 풍력발전기
육백마지기 하트 포토존

#육백마지기에 불어오는 가을바람

 

강원 평창군 미탄면사무소에서 청라천을 따라 청옥산 길을 오른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오르막 도로를 구불구불 위태롭게 20여분 달리자 이번엔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다. 천장에 머리를 몇 번 찧으며 그렇게 10여분을 더 오르자 산 위에 펼쳐진 넓은 들판이 아버지 품처럼 여행자를 반긴다. ‘차박’의 성지 육백마지기다. 평일 점심때쯤 올랐는데 이미 전망 좋은 명당자리는 SUV 차량이 모두 차지하고 앉았다. 대충 주차하고 내리려는데 차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 강한 바람 때문이다. 간신히 차 밖으로 나서자 이글거리던 여름은 온데간데없고 옷깃을 여미는 늦가을 새벽 같은 서늘함이 엄습한다. 점퍼를 미리 챙기지 않은 것을 자책하며 반팔 밑으로 토시를 단단히 껴입고 길을 나선다.

 

육백마지기 산책로 계단
육백마지기 산책로

청옥산은 곤드레나물과 더불어 청옥이란 산채가 자생해서 붙여진 이름. 독특하게도 정상 부근에 평탄한 초원이 펼쳐져 있는데 볍씨 600말을 뿌릴 수 있을 정도로 드넓어 ‘육백마지기’로 불린다. 축구장 여섯 개 정도를 합친 규모다. 사실 이곳은 춘궁기 산나물을 뜯어 연명하던 산촌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노래 ‘평창아라리’의 발상지. 청옥산에는 야생화와 산나물이 많아 풍족하지는 않아도 배고픔을 어느 정도 달래줬다. 평창아라리는 최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에 정선, 태백과 함께 포함됐다.

 

육백마지기 나무의자 포토존
육백마지기 작은 예배당

고원지대이지만 도로가 나 있어 신 정상까지 차로 갈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곳이다. 정상에 서니 넓은 농경지와 거대한 하얀 날개가 돌아가는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그리고 마치 산수화처럼 겹겹이 쌓이며 멀어져가는 산자락들까지 더해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어준다. 이런 멋진 곳을 차박 마니아들이 그냥 둘 리 없다. 주말에는 전망 좋은 난간 쪽 주차공간은 서로 차지하려고 전쟁이 벌어질 정도로 인기다. 심지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으며 명당자리를 사고팔 정도라니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다. 가만히 보기만 해도 힐링되는데 산자락을 붉게 물들이는 장엄한 저녁노을과 머리 위로 은하수가 쏟아지는 밤하늘까지 덤으로 즐길 수 있으니 날이 좋을 때는 전국에서 여행자들이 몰려든다. 하지만 바람이 거세 화재에 취약한 곳이어서 취사는 절대 금지다.

 

육백마지기 자작나무숲
육백마지기 자작나무숲

정상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작은 예배당과 알록달록 나무의자로 꾸며진 포토존이 나오며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예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육백마지기에는 정상으로 오르는 길 중간쯤 산등성이에 자작나무숲이 숨어있다. 면적이 넓은 건 아니지만 잡목 하나 없이 오롯이 자작나무로만 이뤄졌다. 하얀 수피와 초록색 이파리가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은 넋을 잃게 한다.

 

대관령하늘목장 입구
대관령하늘목장 말 방목
대관령하늘목장 하늘마루전망대

#양들의 세상, 대관령하늘목장

 

대관령하늘목장은 육백마지기처럼 하얀 풍력발전기가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동화 속 세상이다.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실개천 너머 푸른 하늘 아래 초록 언덕에 양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낭만적인 풍경이 여행자를 반긴다. 입구 중앙역의 트랙터 마차는 목장의 트레이드마크로 5km 코스를 따라 목장 곳곳을 둘러볼 수 있다. 마차를 타고 젖소가 하루에 원유 3t을 생산하는 젖소의 집과 말, 소, 염소, 양들이 뛰어노는 방목지를 지나 10여분 만에 해발 약 1000m 산정상 하늘마루전망대에 섰다. 발아래로는 목장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전망대 양쪽 능선을 따라 드문드문 늘어선 하얀 풍력발전기까지 더해져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마차는 이곳에 쉬어가기 때문에 선선한 바람을 즐기며 서둘러 오는 가을을 가슴으로 맞기 좋다.

대관령하늘목장 하늘마루전망대
대관령하늘목장 하늘마루전망대
대관령하늘목장 하늘마루전망대 의자 포토존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길 왼쪽에 파랑, 노랑, 빨강 의자가 놓인 포토존은 연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공간. 의자에 앉아 머리 위 거대한 풍력발전기 날개가 힘차게 도는 풍경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가슴속 묵은 찌꺼기들이 날갯짓을 따라 훨훨 날아가 버리는 기분이다. 하늘마루전망대에서 이만평초원과 별맞이언덕을 지나 하늘목장 선자령까지 2km가량 트레킹 코스가 이어지며 편도 40분 정도 걸린다. 대관령에 가장 높은 해발 1157m 선자령은 선녀들이 자식들을 데리고 내려와 놀았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로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강릉 시내와 동해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대관령하늘목장 말 방목
대관령하늘목장 양떼 방목
대관령하늘목장 염소  

별맞이 언덕은 선자령 아래 펼쳐진 그림 같은 초지. 목동들이 늦은 일을 마치고 산을 내려가려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빛이 너무 예뻐서 일부러 일을 늦게 마치고 별을 감상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중앙역에서 선자령까지 걸어가는 코스는 왕복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하늘마루전망대에서 목장입구까지는 내려가는 길은 50분 정도 거리여서 가을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걷기에 적당하다. 하늘마루전망대 인근의 ‘너른풍경길’(10분), 원시림과 야생화를 벗하며 걸을 수 있는 ‘가장자리숲길’(40분), 방목된 소와 말을 즐기는 참숲길(10분) 등 저마다 다른 매력을 뽐내는 다양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양떼 먹이주기 체험
대관령하늘목장 방목지
대관령하늘목장 포토존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촬영지를 지나면 양떼들의 천국. 여행자들이 울타리로 다가가자 양들이 짧은 다리로 서로 경쟁하듯 초원을 달리며 몰려드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난다. 아기동물원에서는 새끼 양들에게 먹이 주는 체험을 할 수 있어 아이들에게 인기. 높은 산지에 둘러싸인 대관령 고원 지대에 조성된 하늘목장은 40년 동안 외부인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다가 2014년에 일반에 개방됐다. 그만큼 대관령의 청정 생태계가 잘 보존된 자연 친화적인 목장이다. 현재 젖소 400여마리, 양 100여마리, 말 40여마리를 방목 중이라 언제든지 자연을 벗 삼아 뛰어노는 동물을 만나게 된다. 


평창=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혜리 '겨울 여신 등장'
  • 혜리 '겨울 여신 등장'
  • 권은비 '매력적인 손인사'
  • 강한나 '사랑스러운 미소'
  • 김성령 '오늘도 예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