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펙+ “10월 日 10만배럴 감산”
국제유가 다시 ↑… 국내 물가 요동
고환율·고물가에 휘청이는 한국경제에 에너지 위기 ‘비상등’까지 다시 켜졌다.
우선 천장이 뚫린 듯 치솟는 원·달러 환율 움직임이 가장 위태롭다.
6일 원·달러 환율이 지속해서 상승하며 또다시 연고점을 경신하고 1370원대에서 마감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0.3원 오른 달러당 1371.7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는 금융위기 2009년 4월 1일(1379.5원) 이후 13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장중 기준 5거래일 연속, 종가기준 4거래일 연속 연고점 경신이다.
여기에 러시아 가스공급 중단에 석유수출국기구플러스(OPEC+)의 감산합의까지 더해지면서 에너지를 전적으로 수입하는 우리나라로선 당장 수급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특히 겨울을 앞두고 각국에서 천연가스 확보 전쟁이 불붙으면서 불안감이 높다.
5일(현지시간) 오펙+는 화상회의로 진행된 월례 회의 후 성명을 통해 10월 하루 원유 생산량을 이달보다 10만배럴 줄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펙+ 회원국의 원유 생산량은 지난 8월 수준(하루 4385만배럴)으로 다시 줄게 됐다. 이 여파로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0월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 대비 2.3% 상승한 배럴당 88.8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는 9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날 서방의 제재가 철회될 때까지 유럽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CNBC방송은 “오펙+의 발표와 러시아와 서방 간 에너지 분쟁이 겹치면서 유럽인들은 경기 침체와 겨울철 가스 부족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 급등은 우리 경제에도 충격으로 작용할 수 있다. 주요 발전연료 중 하나인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한국전력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오는 전력도매가격이 연일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상황이다. 본격적으로 난방이 시작되는 겨울철이 오면 도시가스 수급 등에 부담이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다.
게다가 석유값이 올라갈 경우 그나마 상승세가 둔화했던 국내 물가가 다시 치솟을 수 있어 당국은 긴장하고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는 등 총력을 기울인 효과가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고환율과 에너지수입 가격 상승, 반도체·중국 수출 부진 등의 여파로 무역수지는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무역수지는 94억7000만달러 적자로, 1956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1∼8월 누적 무역적자 역시 247억2300만달러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처럼 경제위기가 눈앞에 닥쳤지만 사실상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책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대외 리스크로 인한 충격이다보니 국내 대책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 대책도 “모니터링 확대”, “안정적 수준” 등 시장에 시그널을 주는 데 그치고 있다.
◆커지는 무역수지 적자… 에너지 수급난까지 겹쳐 ‘비상’
금융위기 이후 안정적으로 흑자 기조를 이어오던 무역수지가 올해 들어 처음으로 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한 데에는 원자재 가격 상승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무역수지 악화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자원수입국들의 공통적인 상황이지만, 유럽발 에너지 수급난과 고환율, 중국 경기 둔화 등이 겹치며 적자 규모를 이례적으로 더욱 키우며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한국은행은 6일 발표한 ‘최근 무역수지 적자 원인·지속가능성 점검’ 보고서에서 “국제 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글로벌 경기 둔화의 영향이 본격화하고 있다”며 “수출 둔화와 수입 증가에 따라 당분간 무역수지 적자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최근 무역적자의 원인에 대해 “대부분 수입단가 상승에 기인하며 중국 경기 부진 등에 따른 수출물량 둔화도 일부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무역수지는 전년 동기 대비 454억달러 줄었다. 이 중 수출입 단가 요인에 따른 감소가 472억달러(수입단가 상승으로 -768억달러·수출 단가상승으로 +395억달러)에 달했다.
물량 요인 측면에서는 특히 품목 가운데 원유·가스·석탄 등 에너지류와 정유 등 석유제품의 단가 요인이 무역수지를 353억달러 끌어내렸다. 올해 무역수지 감소 폭(454억달러)의 78%에 해당한다.
이런 가운데 에너지 상황은 앞으로 더 한국 경제를 옥죌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가스공급 중단에 석유수출국기구플러스(OPEC+)의 감산합의까지 더해지면서 에너지를 전적으로 수입하는 우리나라로선 당장 수급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에너지 수입국인 우리의 경우 겨울은 난방수요가 더해지기 때문에 하절기(일 평균 7만t)보다 많은 하루 12만t을 쓴다. 미리 많이 사서 저장해 놓으면 좋겠지만 가스라는 특성 때문에 장기 보관이 어렵다. 현재 법적 비축의무량은 9일분이다. 그러나 동절기 가스 확보에 큰 문제는 없다는 게 한국가스공사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입장이다.
문제는 가격이다. 현물 구매분은 물론이고 장기 계약 물량도 부분적으로 미국 가스 현물시장 가격이나 유가 등에 연동되기 때문에 국제 가스 가격이 오르면 덩달아 오를 수밖에 없다. 올 초 백만Btu(열량단위)당 29.4달러였던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 5일 62.8달러까지 2배 이상 뛰었다. 정부는 가격 부담을 덜기 위해 액화석유가스(LPG)를 섞어 공급하고 있으며 올겨울 석탄발전 상한 제약을 푸는 방법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고공행진하는 가스의 대체재로 국제 석탄 수요가 늘면서 석탄 가격도 크게 뛰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 유가 하락을 막겠다는 의지인 만큼 이런 담합(감산)이 깨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겨울이 돼서 가스값 문제가 생기면 전체적으로 에너지 가격은 겨울에 다시 오를 것”이라며 “석탄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 외환시장을 안정시켜 원자재 가격 인상 폭을 제어하는 조치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과 밀접한 원·달러 환율도 우호적이지 않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환율 상승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재 달러 강세를 이끄는 가장 큰 요인인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의 강력한 긴축 의지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달러의 대체재 역할을 하는 유로화가 러시아의 가스 공급 차단, 유럽 경기 악화 등으로 약세를 못 벗어나는 점, 중국 위안화가 코로나19 도시 봉쇄 등의 원인으로 약세를 지속하고 있는 점 등도 달러 강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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