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30대 회사원인 박정길씨. 그는 최근 저녁 굶기를 시작했다. 오른 물가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이어트도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챌린지다. 한 달 350만원이 안되는 월급에 전세대출 이자와 월세, 생활비 등을 고려하면 먹을 것 다 먹곤 살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씨는 “회사 사정이 안 좋아 지난해 연봉이 2%정도 밖에 안 올랐다. 하지만 물가는 연봉과 상관없이 오르다 보니 이런 고육지책을 생각해낸 것”이라며 “다이어트도 할 겸 겸사겸사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 만이 아니다. 최근 고공행진 중인 물가 때문에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무지출 챌린지는 지출을 최소화해 돈을 최대한 아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사회적 현상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무지출에 성공했는지를 가계부나 인증샷을 통해 공유하는 게시물이 늘고 있다. 지금까지 욜로족과 플렉스 등 고지출이 미덕으로 치부됐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대기업 과장인 이모씨. 주변에서 부러워하는 연봉 8000만원의 대기업 회사원이지만 그도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했다. 지난해 무리하게 산 아파트가 화근이었다. 그는 지난해 서울 성동구 옥수동의 아파트를 사기 위해 대출을 받았고 현재 월 이자만 300만원에 육박한다. 이씨는 “최근이 금리가 높다 보니 부담이 많이 된다”며 “점심과 저녁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출퇴근은 자전거로 한 지 2달이 됐다”고 말했다. 원하지 않았던 무지출 챌린지를 하게 된 셈이다.
21일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에 따르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54.2%가 ‘무지출 챌린지’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돈을 쓰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반을 넘겼다는 뜻이다. 실제로 응답자들은 무지출 챌린지를 긍정하는 이유 1위로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 있어서(65.6%)’를 꼽았다.
또 전체 응답자 76.6%는 무지출 챌린지까지는 아니지만 절약하려는 사람이 많아진 느낌이라고 답했다. 앞으로도 물가 인상이 계속되면 무지출 챌린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다는 응답(20대 66%, 30대 58.8%, 40대 64.4%, 50대 67.2%)이 많았다. 소비 전반에서 지출을 줄이려는 태도가 한동안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씨나 이씨의 사례처럼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하는 사람 중 많은 이들이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우리나라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5.2%로 올려 잡았는데, 이는 외환위기가 불어닥쳤던 1998년 7.5% 이후 24년 만의 가장 높은 물가 상승률이다. 여기에 경제 성장률은 올해보다 내년에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외식비용과 주거비, 생활용품 구입비 등 생활비 중 가장 부담을 느끼는 생활비 항목은 무엇일까. 연령대별로 부담을 느끼는 생활비 항목은 달랐다. 우선 20대의 경우 점심 등 식사비에 가장 큰 부담(36.4%)을 느꼈다. 30대(38.4%)와 40대(36.8%)는 외식비용, 40대(44%)는 보험과 의료비에서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흥미롭게도 지출을 아끼는 방법으로 사무실 출근을 한다는 사람이 많았다. 설문에서 전체 응답자의 절반(50%)은 전기료 부담 등으로 사무실 업무를 더 선호한다고 답했다. 향후 고물가가 지속한다면 직장인들의 재택근무 선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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