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장관에 이어 내무장관까지 취임 50일을 못 넘기고 사퇴하면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됐다.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19일(현지시간)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장관은 개인 이메일로 동료 의원에 공문서를 보내 규정을 위반했다며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공문서는 이민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유출 시 큰 파장을 미칠 수 있었다”며 “저는 실수를 했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한다”고 했다. 트러스 총리는 “당신이 내린 결정을 존중한다”며 즉각 사표를 수리했다.
보수당 의원들은 브레이버먼이 총리에 대한 반감으로 직을 내려놨다고 보고 있다. 그가 내세운 사임 이유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한 보수당 의원은 “공문서 규정 위반은 매우 사소한 문제”라며 “사임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브레이버먼은 사임하면서 감세안으로 실책을 범한 트러스 총리를 향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우리는 명백하게 격동의 시기를 겪고 있고, 저는 이 정부의 방향에 대해 염려를 표한다”고 했다.
지난 14일 쿼지 콰텡 전 재무장관이 재임 38일 만에 경질되고 5일 뒤 또 다른 각료가 사퇴하자 트러스 총리의 입지는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 콰텡 전 장관과 마찬가지로 브레이버먼 역시 보수당 당대표 경선 당시 트러스 총리를 지지했던 인물이다.
브레이버먼의 후임으로는 보수당 당대표 경선에서 트러스를 지지하지 않은 그랜트 섑스 전 교통장관이 내정됐다.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에 이어 총리의 라이벌인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을 지지했던 인물이 후임이 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총리가 반대파를 내각에 앉혀 당내 기반을 넓히려 한다고 분석한다.
섑스 전 장관은 이틀 전 팟캐스트에 출연해 트러스 총리의 퇴진을 관측하기도 했다. 해당 팟캐스트에서 그는 “트러스 총리는 암흑 속에서 바늘구멍에 실을 꿰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며 총리가 코너에 내몰렸다고 밝혔다. 이날 섑스 전 장관 브레이버먼의 사퇴에 관한 언급은 거부한 채 “막중한 역할을 하게 돼 영광”이라고 했다.
브레이버먼 내무장관이 사임한 이 날 하원에서 진행된 셰일가스 채굴을 위한 수압파쇄공법(fracking·프래킹) 금지법안 표결에서는 소동이 일었다. 보수당 원내총무가 법안 표결을 트러스 총리에 대한 신임 투표로 규정하면서 금지법안에 찬성하거나 기권하면 출당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금지법안은 부결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몸싸움 의혹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영국 하원은 회의장을 반으로 갈라 찬성은 오른편, 반대는 왼편에 서도록 하는데 부결을 위해 왼편으로 강압적으로 몰고 간 의원들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애나 맥모린 노동당 하원의원은 트위터에서 “눈물을 흘리며 끌려가는 보수당 의원을 봤다”며 혼란스러운 상황을 설명했다. 한 보수당 의원은 이 사건에 대해 “망신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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