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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처럼 한 달 새 예금 56조↑
유동성 흡수하는 ‘공공의 적’ 지탄
당국, 과도한 금리 인상자제 당부
서민 부담 경감안 적극 모색해야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됐다. 이듬해인 2009년 말 당시 국제적 명성을 떨치던 미 인터넷신문 허핑턴포스트에는 글로벌 경제혼란을 야기한 은행들의 무책임한 사과와 경영진의 보너스 잔치를 질타하는 칼럼이 실렸다. 구제금융에 대한 반성도 없이 고객의 돈을 제멋대로 주무르는 은행의 행태에 대해 금융 소비자들이 ‘계좌 옮기기(Move Your Money)’ 운동을 통해 본때를 보여주자는 것이다.

분노한 소비자들이 월가 점령과 함께 계좌 옮기기로 거대은행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2011년 11월5일을 ‘계좌 바꾸는 날’로 지정하면서 시민운동으로 확산했다. 2012년 말까지 미국인 1000만여명이 동참했고, 유럽으로까지 불길이 확산하면서 거대은행들을 긴장시켰다. 우리나라 역시 2015년 7월부터 고객의 거래선택권 확대차원에서 통합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주거래 은행의 계좌를 옮길 때 각종 자동이체 내역을 한꺼번에 바꿔주는 ‘계좌이동제’가 시행됐다.

김기동 논설위원

고금리 시대를 맞아 은행들이 우리 사회의 ‘공공의 적’으로 내몰리고 있다. 왜일까. 고금리를 틈탄 호황에 힘입어 이자놀이로 배만 불렸다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3분기까지 국내 은행의 이자 수익은 40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조9000억원 늘었다. 역대 최대 수준이다. 지난 5년간 5대 금융지주가 벌어들인 이자이익은 무려 182조1000억원이다.

가파른 금리상승 탓이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연 3.0%로, 올해 들어서만 2.0%포인트 올랐다. 중앙은행의 긴축 기조 속 기준금리 인상에 수신 경쟁 등으로 최근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연 5%대까지 올랐다. 세계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높다. 예금 금리가 높아지며 은행권이 시중의 유동성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면서 이른바 ‘역(逆) 머니무브’가 극에 달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 정기예금에만 56조2000억원이 몰렸다. 은행이 가만히 앉아서 수익을 낸다는 인식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급기야 금융위원회 등 당국이 금융권에 과도한 예금금리 인상 자제를 당부하고 나섰다.

마치 2012년 8월 상황과 유사하다. 당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6대 금융지주 회장단 간담회에서 “어려울 때 우산을 뺏지 말라”고 경고했다. ‘관치금융’ 논란에도 이런 말을 던진 이유는 자명하다. 그는 “경기·소득부진, 주택가격 하락에 따라 원리금 상환에 애로를 겪는 가계가 늘어나고 있다”며 “은행이 차입자의 경제여건 등을 세심하게 살펴 원리금을 안정적으로 갚을 수 있도록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19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은행이 땅 짚고 헤엄치는 식의 이자놀이에 빠져있는 사이 중소기업과 서민들은 물가인상·고환율에다 빚고통에 허덕인다.

은행이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임을 부인하진 않는다. 하지만 은행은 흔히 금융회사가 아닌 ‘금융기관’으로 불리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공적 기능을 담당한다는 의미에서다. 은행은 금융업 면허를 국가로부터 받는 공공재다. 외환위기 당시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160조원의 공적자금으로 은행·기업의 연쇄 도산을 막은 걸 잊어선 안 된다.

금융권에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경영이 화두다. 기업 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 투명 경영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하지만 말뿐이다. 외환위기를 겪은 후 주주 이익만 앞세운 경영에 치중한 나머지 정작 소비자와 실물경제를 위한 서비스는 도외시해온 건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여전히 시장에서 은행은 강자(强者)고 소비자는 약자(弱者)다. 가계의 안정과 은행의 건전성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다. 금리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계와 기업을 구제할 방안을 정부와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은행의 사회적 책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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