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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콘 공장 멈추고 항만 마비… 주유소 ‘기름 대란’ 본격화

입력 : 2022-11-30 06:00:00 수정 : 2022-11-30 1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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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엿새째 총파업… 산업계 피해 누적

컨테이너 반출입량 49% 수준
시멘트업계 누적 손실 821억
건설현장 508곳도 차질 빚어

완성차업계선 개별 탁송까지
수도권 거점 주유소 재고 부족
경찰, 운송 방해 등 15명 입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총파업이 29일로 엿새째를 맞은 가운데 산업계 전반의 물류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정부가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고, 화물연대가 이에 맞서 삭발투쟁으로 대응 수위를 끌어올리는 등 갈등의 골은 한층 깊어졌다.

정부가 엿새째 총파업을 이어가며 집단 운송을 거부하고 있는 시멘트업계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가운데 29일 오전 경기 화성시의 한 레미콘 공장에 차량들이 멈춰서 있다. 뉴스1

29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화물연대 조합원 7700명이 전국 18개 지역 175곳에서 집회를 이어갔다. 전체 조합원(2만2000명 추산)의 35% 수준이다. 이들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각 지역별로 총력투쟁 결의대회 등을 소집해 내부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지도부의 릴레이 삭발로 투쟁을 이어나갔다.

 

이날 오전 10시 기준 전국 12개 항만의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1만8145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대)로, 평시(10월 평균 3만6655TEU)의 49% 수준이다. 특히 광양항은 지난 25일부터 사실상 컨테이너 반출입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울산항은 전날과 이날 반출입량이 각각 8TEU, 55TEU에 그치는 등 항만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

 

전국 곳곳에서는 레미콘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등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강원도레미콘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화물연대 파업으로 현재 지역 132개 레미콘 공장 중 35곳이 가동을 멈춘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공장들도 시멘트 보유량이 거의 소진되면서 가동 중단 우려가 큰 상황이다.

 

철원군과 홍천군에서는 지난 25일부터 레미콘 공장 가동이 중단됐으며 춘천시와 고성군, 양양군에서도 28일 보유 시멘트가 모두 소진됐다. 강원도에 따르면 이번 화물연대 파업으로 도내 시멘트 하루 출하량은 7만5000t에서 4만t으로 파업 전 대비 46% 급감했다.

화물연대 파업 엿새째인 29일 광양항 입구가 집회 중인 화물연대 조합원들과 이들이 세워둔 화물차로 가로막혀 컨테이너가 반출되지 못하고 그대로 쌓여 있다. 연합뉴스

시멘트 출하가 막히자, 레미콘 공장의 손실도 커지고 있다.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총파업 여파로 전국 레미콘 공장의 가동률이 지난 25일부터 20% 안팎에 머물며 레미콘업계의 손해액이 일 평균 617억원씩 늘어나고 있다. 레미콘 수급 여파가 건설업계로 고스란히 전이되면서 전국 912개 건설현장 중 절반이 넘는 508곳에서 레미콘 타설이 중단됐다.

 

경북 포항지역은 물류 운송 차질에 피해가 크다. 하루 8000여t의 철강 제품을 생산하는 현대제철 포항공장은 화물연대 파업 이후 철강 화물을 출하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동국제강, 세아제강도 출고가 진행되지 않아 철강 제품이 공장 내에 쌓여가고 있다.

 

기아 광주 오토랜드 공장의 경우 생산한 완성차를 매일 하루 2000여 대씩 임시번호판을 달거나 임시운행허가증을 발급받아 인근 적치장으로 한 대씩 옮기는 개별 탁송을 하고 있다. 탁송 업무를 위해 하루에 500∼700명이 동원되는데, 이들 일당은 평균 15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이 장기화할수록 완성차업계의 손실이 누적되는 구조다.

‘기름 대란’ 본격화 화물연대 총파업이 엿새째로 돌입한 가운데 29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 품절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화물연대 총파업이 길어지면서 판매량이 많고 저장고가 부족한 일부 주유소에 기름 수송 차량이 오지 않는 ‘기름 대란’이 본격화하고 있다. 뉴스1

정유업계의 피해도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수도권 주요 거점의 주유소에서 재고 부족으로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군 탱크로리(유조차) 등을 활용한 긴급 수송작업이 한창이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전국 탱크로리(유조차) 종사자의 70% 이상이 화물연대에 가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도권은 가입률이 90%에 달해서 회전율이 빠른 수도권 주유소의 피해가 더 컸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곳곳에서 물리적 충돌도 잇따르고 있다. 경찰청은 화물연대 파업 이후 비조합원 운송 방해 등 9건의 각종 불법행위를 적발하고 조합원 15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화물연대 조합원 A씨 등 3명은 이날 부산 강서구 부산신항 앞에서 운행 중인 트레일러 앞 유리창에 라이터를 던지는 등 운송을 방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명령서 송달 다음날까지 업무 복귀해야

 

국토교통부는 29일 화물연대 총파업과 관련해 시멘트업계 운송 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관련 안건이 의결된 데 따른 후속조치다. 다만 명령서 송달의 절차적 복잡성 등으로 단기간에 운송 정상화가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화물연대 총파업과 관련한 업무개시명령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관련 부서에서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운수사 200여곳과 운수종사자 2500명(추산)을 대상으로 이날부터 업무개시명령이 순차적으로 송부됐다. 정부는 송부 작업을 위해 국토부와 지자체 공무원, 경찰 등으로 구성된 76개 조사팀을 꾸려 현장조사에 나섰다.

 

명령을 송달받은 사업자나 종사자는 그 다음날까지 운송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30일 이하의 운행정지와 자격정지(2차) 등의 행정 처분을 받게 된다.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국토부는 그간 화물 기사들의 연락처와 주소를 상당수 확보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행정절차법상 (본인 송달이 아니어도) 다양한 방법으로 업무개시명령 전달이 가능하다”며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의 경우 본인 동의가 필요하지만, 고용자나 동거 가족을 통한 제3자 송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원칙적으로 명령서 직접 전달이 원칙이지만, 관보 등 인터넷 게시를 통한 공시 송달도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 최대 2주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이번 업무개시명령 발동 조치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서 금지한 ‘강제노동’에 해당한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업무개시명령은 국제협약에 위배된다”며 “파업에 대한 제재로 행해지는 강제근로는 ILO가 정한 기본원칙과 핵심 협약(29호·105호)에서 분명하게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ILO 핵심 협약은 ILO가 채택한 189개 협약 가운데 기본적인 노동권에 해당하는 8개 협약이다. 이 중 105호는 정치적 입장 표명과 파업 참가에 대한 처벌로 강제 근무를 시킬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업무개시명령은 파업 참가에 대한 제재와 노동 규율의 수단 항목을 위반한다는 게 노동계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와 재계는 현행법상 화물차주는 사용자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해당해 화물연대를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화물연대는 ILO 협약 등을 근거로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명령 무효 가처분 신청 등을 고려하고 있다. 결국 가처분 신청 결과가 나오고, 명령서 송달에 따른 법적 효력 등이 달성되는 시점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앞서 8일간 지속됐던 화물연대의 지난 6월 파업의 피해액이 2조원(정부 추산)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실효적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세준 기자, 춘천=박명원 기자, 이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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