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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각장에 철학을 담아… 日·유럽선 ‘친화시설’ 탈바꿈 [심층기획 - 폐기물 7000t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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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2-01 06:00:00 수정 : 2022-12-01 10: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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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나는 자원이다 - 4회 혐오를 넘어서

日 오사카 마이시마 소각장
인공섬 위치에도 주민들 건립 반발 커
‘우린 자연에 초대된 손님’ 모토 디자인
혐오시설 탈피… 환경 교육의 장 변모

英 런던 서더크 재활용센터
저층 건물에 곡선 지붕 얹어 지역화
센터 설립 통해 주민 고용 창출 효과
영화제 등 열고 폐기물 교육도 매진

우리는 하루 평균 6만t(생활계 폐기물 기준)의 쓰레기를 버린다. 5t 트럭에 하루치 쓰레기를 담아 일렬로 늘어놓으면 서울에서 충주까지 줄 세울 수 있는 양이다. 다시 쓰거나 태우거나 묻어서 꾸역꾸역 처리하고 있지만 어딘가 병목 현상이 생기면 곧바로 쓰레기산이 생긴다.

매립은 오랫동안 폐기물 처리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최근 30년간 비중을 꾸준히 줄였어도 여전히 하루 7000t(12%)이 매립지로 향한다. 그런데 2026년 수도권을 시작으로 2030년이면 쓰레기를 직매립할 수 없게 된다. 처음부터 쓰레기를 만들지 않거나 전량 재활용할 게 아니라면 결국 어딘가 자원회수시설(소각장)을 더 지어야 한다. 하지만 소각장은 대표적인 혐오 시설이다. <폐기물 7000t의 딜레마> 시리즈 마지막 이야기로 주민 반대를 넘어 지역사회에 녹아든 해외 자원회수시설 사례를 전한다.

일본 오사카 마이시마 소각장에 들어온 대형폐기물을 크레인이 들어 올리고 있다. 마이시마 소각장이 운영하는 견학 프로그램 참가자는 이런 모습을 포함한 폐기물 수거와 선별, 파쇄, 소각 등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자연에 초대된 손님’… 디자인에 철학을

“여긴 난간도 곧게 생기지 않았어요.”

지난 10월11일 오후 일본 오사카 마이시마 소각장 3층 옥외정원에서 우메모토 가쓰미 공장장이 2층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설치된 회색 철제 난간을 쓸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난간은 물결이라도 치는 듯 위아래로 울퉁불퉁했다.

난간만이 아니다. 이 난간이 설치된 통로도 목적지까지 한참을 에둘러 가도록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놓았다. 기자가 “굳이 이렇게 길까지 비효율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냐”고 물으니, 우메모토 공장장은 “훈데르트바서의 디자인 철학에 효율성은 1순위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마이시마 소각장을 디자인한 오스트리아 건축가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1928∼2000)는 자연에 직선이 있을 수 없다고 봤고, 건축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라나는 하나의 생명체가 돼야 한다고 믿었다. 자연스레 그가 디자인한 건축물은 직선이 최대한 지양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철학은 마이시마 소각장의 화려한 외관에서 절정에 이른 모습이었다. 알록달록한 벽면에, 놀이동산을 떠올리게 하는 마이시마 소각장은 고노하나구에서 소각장이 있는 인공섬으로 이어지는 다리 위 운전자, 승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고 있었다. 명실상부한 마이시마 인공섬의 ‘랜드마크’라 부를 만했다.

 

훈데르트바서의 철학은 단순히 이 시설의 겉모습에, 시각적으로만 구현된 게 전부가 아니었다. 방문객 대상으로 생활폐기물의 수거와 선별, 파쇄, 소각 등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설명하는 마이시마 소각장의 견학 프로그램이 ‘우리는 자연에 초대된 손님일 뿐’이라는 훈데르트바서의 철학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우메모토 공장장은 이렇게 말했다.

오스트리아 건축가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가 ‘건축물은 하나의 생명체와 같다’는 철학으로 디자인한 일본 오사카 마이시마 소각장. 알록달록한 외관 때문에 마치 놀이동산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훈데르트바서는 인간의 거의 모든 활동이 자연을 파괴하는 식으로 이뤄진다고 봤습니다. 쓰레기 배출도 결국 일종의 ‘파괴’라고 볼 때 우리 공장에서 이뤄지는 전 과정은 보는 이들에게 우리가 필연적으로 져야 할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하죠.”

실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 기준으로 마이시마 소각장의 견학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인원은 한해 1만8000여명에 이른다. 이 중 60% 정도가 일본인, 40%는 외국인이라고 했다. 이 지역 초등학생들은 의무적으로 환경교육을 이수하는데, 여기에 마이시마 소각장 견학이 포함돼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견학 프로그램을 중단했다가 지난해 7월부터 재개했다. 대신 하루 견학 인원을 기존 총 120명에서 절반으로 줄였다.

마이시마 소각장은 이렇게 폐기물 소각이라는 본연의 기능 외에 환경교육의 장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지역사회 안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모습이었다.

이 소각장은 오사카·야오·마쓰바라·모리구치 등 4개 시에서 한 해 배출되는 생활폐기물 약 98만t(2000년 기준) 중 25% 수준인 약 24만t을 처리한다. 4개 시가 공동으로 설립한 오사카광역환경시설조합이 운영하는 소각 시설 6곳 중 가장 큰 규모다. 실제 기자가 찾은 날에도 거의 10분의 한 대꼴로 폐기물 수거 차량이 소각장에 들어서는 모습이었다. 우메모토 공장장은 “하루에 적게는 500대, 많게는 1000대까지 들어오는 날도 있다”며 “쓰레기 양으로 따지면 하루에 평균 700t 정도가 여기로 모인다”고 말했다.

현재는 지역사회 내에서 나름의 역할을 인정받은 상태지만, 마이시마 소각장은 폐기물 처리 규모가 상당히 크게 설계된 만큼 1997년 착공 전까지 지역 주민의 반발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주거 지역과 떨어진 마이시마 인공섬에 자리 잡기로 했지만 바다 건너 불과 2∼3㎞ 떨어진 고노하나구 중심으로 공사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유해성 등에 대한 주민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수차례 설명회가 진행됐고, 지역사회의 세부적인 요구 수용도 이뤄졌다. 그 결과 고노하나구 내 편의시설 건설, 수거 차량 이동 경로와 고노하나구 내 주거 지역 간 이격 등 조치가 이뤄졌다. 2001년 완공 직후에는 독특한 외관이 주목받으면서 “공사비가 너무 과도하다”는 비판이 지역 정치권 중심으로 쏟아지기도 했다. 마이시마 소각장 사업비는 총 609억엔(한화 약 5843억원)이다.

“아직까지도 마이시마 소각장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어요. 훈데르트바서의 철학을 시설 안팎으로 구현했기 때문에 그나마 지역사회의 소각 시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지금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다고 봐요. 앞으로도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배출할 수밖에 없는 쓰레기 문제에 대해 지역사회에 활발히 상기시킬 수 있도록 소각장의 외부 공개나 견학 프로그램 운영을 적극 해나갈 예정입니다.”(우메모토 공장장)

영국 런던 서더크에 있는 서더크 재활용센터 전경.

◆대형 폐기물 센터 런던 한복판에 자리하기까지

마이시마 소각장이 눈에 띄는 화려한 외관으로 주민에게 다가갔다면, 반대로 영국 런던의 베올리아 서더크 재활용센터는 낮은 포복 자세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재활용센터가 있는 서더크는 런던의 가운데에 있다. 서울로 치면 중구나 용산구쯤 된다. 주위에는 상업 시설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주택, 아파트도 많다. 가장 가까운 주거지가 바로 100m 남짓 거리에 있다. 재활용 시설이 들어서기에 결코 좋은 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지역사회에 은근히 스며드는 전략을 취했다.

“연중 쉬지 않고 런던에서 버려지는 쓰레기의 5분의 1을 중심가에 들여오려다 보니 눈에 거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녹색을 띤 저층 건물에 곡선의 지붕을 얹어 테니스장을 떠올리게 한 것도 주민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죠.”

마틴 커투어 베올리아 영국 대외협력이사가 설명했다. 지척에는 재활용센터에서 골라내고 남은 폐기물을 태우는 자원회수시설 ‘셀칩(SELCHP)’도 있지만, 폐기물 처리 시설이 있는지 모르는 주민도 있다고 했다.

지역에 배어든 건 건물 디자인만이 아니다. 서더크 재활용센터의 직원 360명 중 3분의 1은 지역 주민이다. 엔지니어, 오퍼레이터, 영업직원, 운전자 등 일하는 분야는 다양하다.

영국 런던 서더크에 있는 서더크 재활용센터. 스포츠센터를 연상케 하는 저층 녹색 건물로 지어 튀지 않도록 했다.

“센터 설립 절차가 시작된 2008년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던 때예요. 그래서 이 센터가 들어오게 되면 짓는 동안 건설인력뿐 아니라 짓고 나서 운영에 필요한 일자리가 얼마나 늘어나는지 설명하고 설득했죠. 지금까지 10년 넘게 일하는 주민도 꽤 많습니다.”

지금도 뮤직 페스티벌, 영화제, 전시회 등을 통해 주민들에게 센터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 교육도 중요한 위치를 담당한다. 처음부터 현장 교육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일반인도 안전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설계에 반영했다.

런던은 주민의 30% 이상이 이민자일 정도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 보니 쓰레기를 버리는 문화도 제각각인데 부모들 중에는 영어가 서툰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을 교육해 이 아이들이 집에 가서 부모님께 배운 걸 전달하도록 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네덜란드의 AEB암스테르담은 주거지와 최소 2㎞ 이상 떨어져 있어 주민 민원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목표 완공 시점 6년 전부터 지역사회와 소통을 시작했다. 넉넉히 시간을 둔 건 모든 당사자가 시설의 필요성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결론을 맺기 위해 서두른다’는 이미지를 주지 않으려는 것도 컸다.

런던 서더크 재활용센터도 투명하고 충분한 소통을 강조했다.

“직접적이고 솔직한 방식으로 모든 걸 설명하는 게 중요합니다. 주민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해선 숨김없이 모든 걸 공개하겠다는 자세가 중요하죠. 우리가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을 이어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커투어 이사)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마이시마·런던·암스테르담=김승환·윤지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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