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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하오(好好) 선생.’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의 별명이다. 그는 어떤 일이든 웃음을 잃지 않고 처리하면서, 누구에게나 ‘하오(좋다), 하오’를 연발했다. 이처럼 호방한 성격에다 음악과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1993년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만나 색소폰과 중국 전통악기에 박식한 지식을 과시했고 4년 뒤 하와이 방문 때는 ‘알로하오에’를 기타로 연주했다. 그의 웃음과 풍류 뒤에는 냉철한 현실인식과 권력의지가 숨겨져 있었다.

장쩌민은 1989년 톈안먼 사태를 계기 삼아 최고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당시 실권자였던 덩샤오핑은 톈안먼 시위를 옹호했던 자오쯔양 총서기를 몰아내고 무력진압을 지지했던 장 전 주석을 발탁했다. 상하이 당서기 시절 실용주의 노선으로 경제개발을 주도한 점도 후한 점수를 받았다. 장 전 주석은 집권기에 공산당이 노동자·농민뿐 아니라 지식인과 자본가의 이익까지 대표해야 한다는 3개 대표론을 표방하며 중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그는 권력욕의 화신이기도 했다. 장 전 주석은 2002년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직을 후진타오 전 주석에게 넘겨주면서도 군권을 2년 더 보유했다. 이도 모자라 후 전 주석의 경호실장과 비서실장에 심복을 앉혔다. 그 후에도 상하이방의 거두로 막후에서 상왕의 권력을 휘둘렀다. 후 전 주석의 후계를 놓고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권력투쟁을 벌일 때 시 주석을 후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시 주석이 집권 후 부패와의 전쟁을 명분 삼아 상하이방 세력을 대거 숙청했다. 과한 탐욕은 탈이 나는 법이다.

장 전 주석이 그제 사망했다. 시점이 미묘하다. 지금 중국 곳곳에서 제로 코로나 정책에 저항하는 반정부 시위인 ‘백색혁명’이 번지고 있다. 톈안먼 사태는 개혁성향의 후야오방 총서기 사망에서 촉발됐다. 장 전 주석의 사망이 백색혁명에 불을 지를지도 모를 일이다. 인터넷에서도 장 전 주석의 소탈한 인간미를 시 주석의 딱딱하고 권위적인 모습에 대비시켜며 “장쩌민 때는 말을 할 수 있던 시기”와 같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톈안먼 시위 탄압의 주역이 반정부 시위를 자극하고 있으니 이런 역설이 또 있을까 싶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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