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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파업에 원재료 수급난… 산업계 피해 가시화

입력 : 2022-12-02 06:00:00 수정 : 2022-12-02 03:3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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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업무개시명령 효과 나타나며
충북 출하량 50%대까지 ‘반짝 회복’
철도파업 예고돼 다시 피해 가능성

강원 레미콘공장 10곳 중 8곳 멈춰
道 내주 중 관급공사 중단 검토까지
조합원·비조합원 간 갈등 격화 양상도
정부, 765명에 업무개시명령서 발부

대통령실 총파업 예고에 강경 입장
저임금 노동자 처우 개선 외면하고
기득권 노조 ‘파업 무기화’ 인식 강해
일각 ‘정권퇴진 운동’ 연장 우려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와 정부가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면서 전국 산업 현장이 멈춰서고 피해가 눈덩이로 불어나고 있다. 파업 8일째인 1일 시멘트 공급이 막히면서 전국 레미콘 공장이 속속 가동을 중단했다. 철강·타이어·전자 업계 등도 물류 마비로 애를 태우고 있다. 다행히 정부 업무개시명령 이후 시멘트 출하량은 두 배 이상 올라섰다.

화물연대 총파업 8일째인 1일 레미콘 타설이 중단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 모습. 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는 파업이 시작된 지난달 24일부터 30일까지 7일간 시멘트·철강·자동차·정유 업종의 출하 차질 규모가 약 1조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고 이날 밝혔다. 각 업계에 따르면 시멘트 97만6000t(976억원), 철강 56만2600t(7313억원), 자동차 7707대(3192억원), 정유 25만9238㎘(4426억원)의 출하 차질이 빚어졌다.

시멘트를 공급받지 못한 레미콘 공장들은 속속 가동을 중단했다. 강원 지역 레미콘 공장은 10곳 중 8곳이 기계를 세웠고, 제주 지역은 사흘째 모든 레미콘 공장이 멈춰섰다. 이날 강원도레미콘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강원 지역 132개 레미콘 공장 중 106개(80.3%)가 가동을 중단했다. 충북레미콘공업조합은 회원사 62곳 중 시멘트 재고가 남은 5∼6곳을 빼고 전부 가동을 중단했다고 전했다. 제주 지역 레미콘 24개 제조사는 지난달 28일을 기해 모두 멈춰섰다. 전남 시멘트 업체 5곳은 출하를 못해 저장 공간이 없어져 생산을 중단했다.

연쇄적으로 건설 현장에서는 콘크리트 타설을 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강원 지역에서는 관공서가 발주한 7개 공사 현장이 파업 이후 일손을 놓아야 했다. 강원도는 파업이 계속되면 다음 주부터 관급 공사 대부분을 중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제주 지역은 지난달 29일 기준 공공 건설 현장 5곳이 공사를 중단했다. 파업이 장기화하면 제주 공공 건설 현장 29곳이 추가로 멈춰설 전망이다. 부산에서는 46곳 관급 공사 중 5곳의 일정이 틀어졌다.

다행히 시멘트 업계는 출하량을 다소 회복했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 발동의 효과가 일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날 전국의 시멘트 출하량은 4만5000t으로,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된 지난달 29일(2만1000t)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여전히 평시와 비교해선 25% 수준이다. 충북은 시멘트 출하량이 평소의 40∼50%까지 올라섰다. 강원 지역은 전날 평소 출하량의 57%가량을 내보낸 데 이어 이날에는 69% 선까지 회복했다. 다만 2일부터 예정된 철도노조 파업으로 다시 물류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받는 파업 대체인력 철도노조가 예고한 파업을 하루 앞둔 1일 서울 구로차량사업소 정비고에 입고된 수도권 전철 전동차량 안에서 국방부 소속 대체 근무자들이 사전 교육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출하량 증가는 조합원의 파업 중단보다는 비조합원의 현장 복귀율 증가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물연대와의 마찰을 두려워하는 비조합원을 위해 정부가 경찰력을 동원해 업무 현장을 보호하고 있는 것도 출하량 확대에 도움이 됐다.

 

국토부는 이날 오후 2시 기준 운송 거부 차주 765명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서를 발부했다. 전체 조사대상자(약 2500명)의 30% 수준이다. 주소지가 확보된 차주 316명에게는 직접 명령서를 우편 송달했다. 국토부는 현장조사를 거쳐 운수사 29개 사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서를 현장에서 교부했다. 이들 중 9개 사는 운송을 재개했거나 곧 재개할 예정이라고 국토부는 설명했다.

물류 차질로 다른 산업의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 포항 현대제철, 세아제강, 동국제강 등은 지금까지 6만7000t의 제품을 출하하지 못했다. 포항철강공단은 출하하지 못한 제품을 야적하는 공간이 줄어들고 있어 파업 장기화 땐 공장이 멈춰설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대제철 당진공장도 제품 출하에 차질을 빚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 석유화학·철강 업체가 입주한 여수국가산업단지와 광양제철소 피해도 불어나고 있다. 긴급 물량은 화물연대와 협의해 일부 운송하고 있지만, 하루 운송량이 파업 이전 대비 8 수준까지 급감했다. 냉장고와 에어컨을 주로 생산하는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은 원·부재료 반입은 정상적으로 이뤄지나 수출용 컨테이너 차량이 멈춰서면서 수출 제품 출하를 전면 중단했다.

금호타이어는 제품을 출하할 길이 막히면서 7일까지 생산량을 조정한다. 광주공장은 하루 생산량을 3만3000본에서 2만본으로, 곡성공장은 3만2000본에서 2만7000본으로 각각 줄인다. 이 회사는 원·부재료의 반입이 전면 중단돼 재고 물량이 점차 바닥을 드러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다수가 식품 업종인 경북 중소기업들도 유통기한내 납품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주 지역 감귤 역시 컨테이너 반출이 막히면서 미주와 러시아 등으로의 수출 물량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주요 물류 거점에서는 적막함이 이어졌다. 경기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의 전날 하루 반출입량은 파업 전 수요일 평균 물량의 12.6%에 머물렀다. 평택·당진항도 유통 흐름이 거의 멈춰섰다. 파업 1주일 동안 반출입량이 사실상 ‘0’에 가까운 전남 광양항은 급기야 긴급 물량을 옮기기 위해 간담회를 열고 대책을 마련했다. 광양항은 하루 평균 4625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를 반출입해왔으나 파업 일주일간 총 159TEU를 수송하는 데 그쳤다.

 

1일 오후 인천시 중구 삼표시멘트 인천사업소 앞에서 화물연대 노조원이 피켓을 들고 경찰관과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노총 정치투쟁’에 엄정 대응

 

대통령실이 오는 6일 총파업 투쟁을 예고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 대해 ‘강대강’ 전면전 기조로 대응하고 있다. 이번 파업이 노동 조건 개선보다는 ‘정치적 투쟁’ 성격이 강하다고 보고, 엄정 대응을 통해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시멘트 분야에 이어 유조차(탱크로리)에도 추가 명령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파업 발단이 된 안전운임제에 대해서도 당초 정부 측 타협안이었던 ‘3년 연장안’을 철회하고 사실상 폐지하는 초강수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일 통화에서 “보통의 노조는 근로자의 근무 여건이나 복리 증진을 위해 사측과 교섭하는데 국민 경제를 볼모로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주고자 하는 이번 파업은 (법에서 보장한) 노동조합 파업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확대 대상으로 제안한 업종을 보면 기본적으로 소득이 보장되는 곳들이 많고, 처우와 환경이 열악한 업종은 오히려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조합원 수가 많고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이 큰 업종은 화물연대가 제시한 안전운임제 확대 대상에 포함돼 있는 반면, 소득 수준이 열악함에도 조합원 수가 적은 곳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함께 화물연대 요구사항인 ‘적용 품목 확대’는 불가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다른 관계자는 “품목을 확대하겠다는 건 지금처럼 물류를 멈추고 국가 경제를 위기로 몰아가면서 정부를 억제할 수 있는 무기를 더 갖겠다는 것”이라며 “정권 퇴진 운동 밑자락을 깔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파업 8일째인 1일 오후 광주 광산구 하남산단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앞에서 화물연대 총력투쟁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윤 대통령이 화물연대 총파업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개선하겠다”고 한 발언과 맥을 함께한다. 소득 수준이 비교적 높고 조직화한 기득권 노조가 거듭된 파업으로 영향력을 키우면서 노동계 안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경제가 어려워졌을 때 가장 피해 보는 사람은 조직화된 소수가 아니라 비조직화된, 더 열악한 근로 환경에서 근무하는 다수 노동자”라며 “그분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고 그런 관점에서 (노동시장) 이중 구조와 노사 법치주의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은 민주노총의 6일 총파업 예고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화물연대에 타협안으로 제시했던 ‘3년 연장안’을 철회할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안전운임제의 효과에 대한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며 근본적 재검토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시멘트 분야 이외에도 피해가 극심한 다른 업종에 대한 추가 명령도 초읽기 상태다. 대통령실은 매일 업종별 피해 현황을 집계한 뒤 발동 요건 충족 여부를 살피고 있다.

 

박연수 화물연대본부 정책기획실장은 이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주최한 긴급토론회에서 “정부가 ‘국가 경제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에 업무 복귀를 명령했다’고 하지만 그동안 정부는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화물 노동자들이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사회적 안전망과 제도 도입을 거부해왔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선 대통령실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려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이를 막는 경찰 간 물리적 충돌도 발생했다.


송은아·박세준·이현미·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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