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시민단체·벨라루스 운동가와 공동 수상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러시아 인권단체 ‘메모리알’의 얀 라친스키 의장이 “러시아 정부로부터 ‘수상을 거절하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메모리알은 소련 시절부터 정권에 의한 인권탄압을 낱낱이 기록하는 일을 해왔으며, 지난해 러시아 정부에 의해 강제로 폐쇄됐다.
라친스키는 10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뒷이야기를 소개한 뒤 “당연하게도 우리 메모리알은 그런 권고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노벨위원회는 메모리알과 더불어 벨라루스 인권운동가 알레스 비알리아츠키(수감 중), 우크라이나 시민단체 시민자유센터(CCL)를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벨라루스는 러시아를 지지하고 나선 가운데 지리적·역사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이 세 나라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를 촉구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사실 노벨위원회의 발표 직후 ‘러시아는 침략자, 벨라루스는 그 동조자이고 우크라이나는 피해자인데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은 모양새가 좀 이상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라친스키는 “러시아 당국도 ‘우크라이나 시민단체와 함께 상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이유를 들어 수상 거부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어 “노벨위원회의 결정은 놀라운 일이었다”며 “시민사회는 국경에 의해 갈라진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며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정보당국에 의해 ‘요주의 인물’로 찍힌 라친스키는 “나와 동료들의 안전에 대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메모리얼의 작업은 여전히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러시아에서는 아무도 신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며 “이와 관련해 국가에 분명히 책임을 묻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든 이 구렁텅이에서 벗어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한 라친스키 의장은 수상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미친 범죄’로 규정하며 러시아 정부, 그리고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그는 “크레믈궁이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옛 소련권 국가들의 역사와 국가로서의 지위, 독립을 폄훼하면서 침략 전쟁을 이념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우크라이나 측 수상자인 CCL 올렉산드라 마트비추크 대표는 메모리알, 그리고 라친스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러시아 국적자인 라친스키와 함께 언론 인터뷰를 하는 것은 단호히 거절했다. 두 나라가 전쟁 중이고 서로 ‘적’(敵)란 점을 의식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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