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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개발에 밀려 사라지는 전통시장… “다시 웃음꽃 필까” [이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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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2-17 16:42:33 수정 : 2022-12-17 2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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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변화 맞춰 적극 ‘변신’ 절실

14년새 200곳 문 닫아… 1400곳 명백 유지
시장 점포 수 2만개 가까이 줄어 매출 ‘뚝’
동네 슈퍼 등도 부진… 골목상권마저 위축

대형마트·SSM 세 확장하며 역할 대체
온라인 장보기 등 유통구조 변화도 한몫
온·오프 연결고리 만들어 활성화 나서야

정부, 시장 상인 등 디지털 역량 강화 지원
공동브랜드 내걸고… 24시간 비대면 판매
시장도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혁신’ 속도

시민 발길 잡은 대전 신도꼼지락시장

“단순 배송서비스로 살아남기 힘들어”
점포주들 협동조합 만들어 사업 시작
라이브커머스 통해 제품 소개·판매
벌써 1년… 점포들 매출액 ‘절반’ 육박

“아이구, 거 좀 더 줘봐유. 나 한두 번 봐유?” “이만큼이면 다른 사람보다 더 준겨. 팔면 팔수록 손해여.”

지난 4일 닷새마다 열리는 대전 유성오일장. 숙주 한 줌을 두고 실랑이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결국 손을 든 건 나물을 파는 이다. “하이고 줘야지 뭐, 여깄슈. 맛있게 무쳐 드슈.” 숙주가 들어 있는 봉지를 손으로 눌러가며 한 줌의 나물을 담는다. 손님을 밉지 않게 흘겨본다. 손님은 그제야 웃는다.

 

대전 유성오일장. 연합뉴스

1916년 10월15일 개장한 유성시장은 한 세기를 견뎌냈다. 1970년대 중반 정부가 대도시의 오일장을 폐지한 후에도 유성장은 꾸준히 오일장의 명맥을 이었다. 이곳도 곧 아파트에 자리를 내준다. 유성시장을 포함한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2026년이면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다. 대전 동구 가양시장은 최근 점포들이 거의 문을 닫으면서 개점휴업 상태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속 장돌뱅이 허생원의 삶이 시작되는 곳이 (강원) 봉평 오일장이듯, 전통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다. 삶이 있다. 그러나 시대에 밀리고 개발에 밀리면서, 전통시장은 위기에 놓였다.

◆전통시장 매년 15개 문 닫아… 골목상권도 위축

전국 전통시장은 지난 14년 동안 200개 넘게 줄었다. 해마다 15개 정도가 문을 닫는 셈이다. 10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전통시장 수는 1401개다. 14년 전인 2006년 1610개보다 209개(13%) 줄었다. 같은 기간 시·도별로 보면 경북이 191개에서 138개로 53개(28%) 줄어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이어 전남이 123개에서 90개로 33개(27%) 줄었고, 부산이 23개, 충남 20개, 경남 18개, 서울 17개, 경기 15개 등 순으로 전통시장이 문을 닫았다.

점포 수도 2만개 가까이 줄었다. 2006년 22만5725개에서 2020년 20만7145개로 1만8580개(8.2%) 줄었다. 시장 명맥은 유지하고 있지만 점포 수가 줄면서 전통시장 한 곳당 일평균 매출액 역시 감소했다. 일평균 매출액은 같은 기간 5787만원에서 5732만원으로 1.0% 줄었다.

전통시장이 잇따라 폐점하면서 골목상권도 위축되고 있다.

 

동네 슈퍼마켓과 전문소매점 등도 매출이 부진하긴 마찬가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9월 전문소매점의 소매판매액은 100조3000억원이다. 이는 2015년 같은 기간에 비해 1조5000억원(1.5%) 감소한 수치다.

반면 백화점과 대형마트 판매액은 같은 기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백화점의 소매판매액은 2015년 1∼9월 20조6000억원에서 올해 같은 기간 27조6000억원으로 7조원(34.1%) 증가했다. 편의점은 12조1000억원에서 23조2000억원으로 92.7% 늘어 거의 두 배로 껑충 뛰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온라인 쇼핑과 배달, TV홈쇼핑 등 무점포 소매의 소매판매액도 폭증했다. 2015년 33조9000억원에서 올해 87조2000억원으로 157.4%나 증가했다.

 

◆시대변화에 대응 못해… 온·오프 연결고리로 자생력 갖춰야

전통시장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대형 유통업체의 등장이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 편의점 등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전통시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온라인 장보기 등이 활성화하고 있는 것도 전통시장을 위협하는 요소다. 여기에 전통시장이 유통구조와 시대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면도 요인으로 꼽힌다.

시민들에게 외면당하며 시장은 활기를 잃는다. 점포가 빠지고, 서비스는 떨어지고, 문을 닫는 악순환에 놓여 있다.

 

전통시장 활력 제고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시작된 청년몰 폐업이 잇따른 게 대표적이다. 대전 동구 중앙시장 내 건물에 문을 연 청년구단은 2017년 17개 지원 점포 중 11곳이 폐업했고, 지난해 개점 4년 만에 결국 문을 닫았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청년몰 지원 점포 672개 중 283개(42%)가 문을 닫았다.

시설 노후화와 주차 불편, 위생 문제 등도 개선 요인이다. 대형마트 영업제한에도 전통시장을 찾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의 시설 현대화 사업으로 주차장을 갖춘 전통시장은 대폭 늘었다. 2006년 36.2%에서 2020년 82.8%로 증가했으나 공간이 협소하고 주차면수가 적은 것은 여전히 개선해야 할 과제다.

전문가들은 전통시장 자생과 활성화를 위해선 시대 변화에 맞게 적극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원석연 경성대 교수(융합학부)는 “결국은 사람이 와야 한다”며 “현재는 살 물건을 온라인에서 확인하고 오프라인으로 넘어가는 시대인데 전통시장을 온라인에서 만날 수가 없다. 접근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 교수는 “소비자에게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선 시대 변화에 맞게 온라인·오프라인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전통시장 상인들이 일부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정부도 전통시장만의 데이터를 쌓을 수 있도록 플랫폼 등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감하고 톡톡튀는 아이디어… 특유의 문화를 팔다

정부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각종 정책을 지원하고 있다. 점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스마트마켓 육성, 교육 및 컨설팅, 오프라인에 특화된 경험요소와 스마트기기 결합과 같은 디지털 역량 강화 등이다.

그러나 전통시장 종사자의 80%가 50대 이상으로 온라인 판로 개척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전국 곳곳에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과감한 혁신으로 체질개선을 넘어 자생력을 갖추는 전통시장이 늘고 있다.

서울 암사종합시장은 디지털 기반의 고객관리에 나섰다. 배송·홍보·고객관리 지원센터를 구축해 시대 흐름에 발맞추며 활기를 되찾고 있다. 서울 수유전통시장은 메타버스 시범 운영으로 시민들의 관심을 환기하는 한편 비교우위 상품 개발로 특징 있는 전통시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서울 포방터시장은 24시간 비대면 판매를 강점으로 매출을 높이고 있다. 협동조합 공동브랜드를 만들어 상품 질 등에 대한 시민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대전 신도꼼지락시장은 신선한 상품을 판매한다는 전통시장 특징을 담아 밀키트 상품을 개발해 판로를 확장하고 있다. 상인회장이 직접 주 2회 라이브커머스를 진행하면서 소비자와 소통하는 것 역시 신도꼼지락시장만의 강점이다. 원 교수는 “전통시장은 상품의 판매와 구매라는 경제적 거래 기능뿐 아니라 지역경제 기반, 문화 중심 역할 등 여러 가지 비경제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며 “단순 지원금이 아닌 전통시장의 지리적 위치, 역사 등 특성을 담은 콘텐츠의 판매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데이터 등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통시장 싱싱한 재료로 ‘밀키트 사업’ 통했다

 

꼼지락. ‘천천히 좀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모양’이라는 순우리말이다. ‘크진 않지만 조금씩 움직이면서 큰 움직임’을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야말로 대전 동구 신도꼼지락시장의 모습이다. 신도꼼지락시장은 점포수가 70여개로 대전에서도 소형시장이다. 올해로 30년이 됐다. 그러나 시장 이름처럼 조금씩 전통시장과 지역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신도꼼지락시장은 전국 전통시장 상인회에서 매월 벤치마킹을 하러 견학오는 유명 시장이 됐다. 최근엔 카카오맵의 ‘우리동네 단골시장’ 전국 10곳에 충청권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신도꼼지락시장의 무기는 신선하고 싱싱한 재료로 만드는 ‘밀키트’다.

 

전통시장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발길을 잡기 위해 백호진(53) 상인회장과 몇몇 상인들이 머리를 맞대 고민한 결과다. 코로나19로 상황이 더 열악해지자 직접 시민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밀키트’ 사업이었다.

백호진 신도꼼지락시장상인회장이 라이브커머스를 진행하는 사무실에서 직접 만든 밀키트를 들고 환히 웃고 있다. 강은선 기자

백 회장은 “전통시장이 배송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온라인 배송서비스 접근성이 너무 떨어졌다”며 “단순한 배송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판단해 여러 안을 검토한 결과 밀키트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백 회장은 지난해 초 밀키트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시장 내 6개 점포주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재료는 시장에서 다 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소스였다. 백 회장은 조합원들과 직접 소스를 만들기 위해 대형마트 밀키트 상품을 맛보고 분석했다.

 

지난해 7월 처음 밀키트 사업을 시작했고 11월부터 본격 판매에 들어갔다. 판매 1년이 된 현재 신도꼼지락시장의 밀키트는 시장 상인들 매출액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백 회장은 “밀키트 사업은 일부 상인만을 위한 게 아닌 신도꼼지락시장 자생을 위한 것”이라며 “밀키트에 들어가는 야채, 고기 등은 시장 내 대부분 점포가 다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령 동태탕에 들어가는 채소인 무, 고추, 양파 등을 한 점포에서 사지 않고 야채 점포 여러 곳에서 하나씩 구매한다. 점포주들이 고르게 수익을 내고 시장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다. 이렇다 보니 밀키트 1개가 팔리면 시장 내 5∼6개 점포가 수익을 얻게 된다. 밀키트 상품은 7종류를 판매하고 있지만 메뉴는 더 확대할 계획이다.

 

밀키트 사업을 하면서 시장 내 점포들의 매출은 30∼40% 정도 높아졌다.

 

판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정보 제공과 배송이다.

 

매주 2회 상인회 사무실에서 진행하는 라이브커머스에서 백 회장은 직접 밀키트를 소개하고 조리해서 맛본다. TV홈쇼핑처럼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배송은 백 회장이 가장 꼼꼼히 신경 쓰는 부분이다. 반품이 들어오지 않으려면 제품 상태는 물론 포장 역시 소비자의 기대치에 맞추는 게 중요하다.

 

백 회장은 “처음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반품이 들어오는데 답이 없더라”면서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도록 포장을 깐깐하게 하고 있고, 환경적으로 포장·배송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도꼼지락시장의 밀키트가 전국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최근엔 입점 플랫폼도 확장하고 있다.

 

“전통시장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곳이에요. 좋은 상품과 서비스로 온·오프 시장 강자로 자리매김하겠습니다.”


대전=강은선 기자 groo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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