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낮은 수가 탓에 지원 급감
보상체계 마련 등 근본 대책 시급
인천의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이 그제 의료진 부족으로 내년 2월 말까지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소아과 전공의 5명 중 4명이 4년 차로 전문의 자격시험을 앞두고 업무에서 빠져 2년 차 1명만 남았다고 한다. 전국 상급종합병원에서 의사가 모자라 입원 병동 운영을 중단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병원은 최근 몇 년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뽑지 못했고, 2023년도 전반기 전공의 1년 차 모집에도 지원자가 없었다. 가뜩이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데 소아 의료 공백까지 빚어지면 누가 아이를 낳으려 하겠는가.
문제는 소아과 전공의 부족이 이 병원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따르면, 내년 전반기 전공의 모집 정원이 199명인데 16.6%인 33명밖에 지원하지 않았다. 전국 기준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은 2019년 80%에서 2020년 74%, 2021년 38%, 2022년 27.5%로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저출산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쳐 환자가 크게 줄면서 ‘미래가 없는 전공’이란 인식이 퍼진 탓이라고 한다. 이미 전국 대학병원 중 소아 응급 진료가 가능한 곳은 36%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5년간 폐업 신고한 전국 소아과 의원이 660여개다. “소아과 도미노 붕괴가 현실이 됐다”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 대응은 허술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일 소아 전문 응급의료센터를 확충하고, 소아암 지방 거점병원 5곳을 신규 지정하는 필수의료 보완대책을 내놨다. 내년부터 2025년까지 중증 소아 환자를 치료하는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적자를 메꿔주는 방안도 마련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다음날 성명서를 내고 “소아청소년과의 현안을 개선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전혀 제시되지 못했다”고 반발했다. 가장 중요한 진료 인력난 해소와 의료 수가 현실화 대책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현장 목소리를 제대로 수렴하고 있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의료계는 소아과가 필수의료 중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전공의들의 지원 기피를 막으려면 정부와 관계기관이 나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의료현장에선 정부가 특정 규모 이상의 종합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의무 채용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전공의 임금 지원, 소아 환자 진료 가산금을 주는 식으로 보상체계도 도입해야 한다. 정부는 미적거리지 말고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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