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엊그제 한 언론사 포럼에 참석,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동맹인 ‘칩4’에 대해 “배제할 필요가 없고, 참여해서 우리 이해를 충분히 반영해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다소 모호한 태도를 보여왔던 정부가 참여 의사를 내비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향후 반도체 공급망 구조를 감안하면 칩4 참여는 우리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불가피한 결정이다.
칩4 동맹은 설계에 강점을 지닌 미국과 생산력이 뛰어난 한국과 대만, 소재·부품·장비에 유리한 일본이 그 구성원이다. 자국의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동시에, 중국을 배제해 미국 주도로 새판을 짜겠다는 구상이다. 앞서 대만과 일본이 적극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우리는 확답을 미뤄왔다. 사드 사태 때처럼 화장품, 관광 등 반도체 이외의 산업에서도 ‘차이나 리스크’가 커질 것을 우려해서다. 지난해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1280억달러(약 167조원)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을 홍콩을 포함한 중국 시장에 수출했다. 중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지만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장비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칩4에 참여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반도체 장비 시장의 독과점 구조 등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반도체 장비의 국산화, 수입국 다변화를 꾀하긴 어렵다는 점이 고려됐다. 여기에 지난 10월 7일 미국 상무부가 중국을 상대로 한 신규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에 쓰이는 반도체 칩 수출을 제한하고 중국의 반도체 생산기업에 대해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를 사실상 금지한 것이다. 심지어 중국 내 생산시설을 소유한 한국 등 동맹국 기업에도 별도 심사를 하겠다고 압박했다. 신중을 기하던 정부가 칩4 참여로 기운 배경이다.
물론 중국발 리스크를 고려, 대책 마련을 소홀히 해선 안 될 것이다. 중국의 보복을 초래하지 않도록 다양한 채널로 설득하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현재 미국과 대만, 일본 모두 국가적 차원에서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거나 설비투자·연구개발(R&D)에 세제 지원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반도체 특별법 가운데 공장 인허가 관련 법안만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을 뿐, 핵심인 세제 지원 법안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언제까지 국익이 정치권 놀음에 발 묶여야 할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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