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재난 중 다중시설 화재 ‘최다’
폭염은 年 35.67명 인명피해 치명적
정부, 안일 대응… 33%만 “안전 신뢰”
서울硏, 2016년 ‘압사’ 신종재난 분류
‘이태원 압사 참사’ 결국 예고된 인재
“기후변화·신기술… 새로운 위협될 것”

‘안전 지키기는 숨을 쉬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평소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그제야 중요성을 깨닫는다는 의미이다.
한국 사회는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겪은 뒤, 8년 만에 서울 한복판인 이태원에서 158명의 소중한 생명을 다시 떠나보냈다. 각종 재난은 앞으로 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의 삶을 위협할 것이다. 2022년이 우리 사회가 옅어지던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한 해였다면, 2023년은 안전의 고삐를 다시 한 번 바짝 죄는 한 해가 돼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치면 다행이다. 현재의 재난에 대응하고, 미래 재난을 사전에 대비하는 것은 우리가 숨을 쉬며 살아갈 필수 조건이다.
◆늘어나는 재난… 일상이 위험하다
1일 2020년 행정안전부 재해연보, 재난연감에 따르면 사회재난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사회재난 발생 건수는 2015년 7건, 2016년 12건, 2017년 16건, 2018년 20건, 2019년 28건으로 증가했다. 2020년 25건으로 소폭 감소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인명 피해가 전년(212명)보다 5배(1091명)가량 크게 치솟았다.

산불재난과 다중밀집시설 대형화재, 해양선박사고, 사업장 대규모 인적사고, 가축질병 등이 거의 매년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0년간(2011∼2020년) 발생한 건수를 살펴보면 다중밀집시설 대형화재가 36건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산불재난 23건, 해양선박사고 19건, 가축질병 14건 순이었다.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낸 사회재난은 다중밀집시설 대형화재로, 832명이 다치거나 사망했다. 가축질병은 5083억원의 재산 피해를 내며 국민을 괴롭혔다.
각종 생활안전사고 인명 피해 수치도 제자리걸음이다. 행안부 2022년 지역안전지수를 살펴보면 생활안전 사망자수는 2019년 3356명, 2020년 3425명, 2021년 3424명이었다. 익사·익수, 유독성 물질(휘발·화학·독성물질 등), 중독, 추락 등으로 인한 사망이 꾸준히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역별로는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인천과 제주가 생활안전이 가장 취약(5등급)한 것으로 분류됐다. 제주는 범죄 분야에서도 5등급의 불명예를 안았다. 부산은 범죄와 화재, 전남은 교통사고와 화재, 강원은 자살과 감염병에서 가장 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외 서울은 감염병, 광주는 교통사고, 대전은 자살 분야에서 안전 허점을 드러냈다.
사회재난과 함께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도 만만치 않다. 자연재해 피해액은 2018년 1412억8400만원, 2019년 2162억2600만원, 2020년 1조3181억7700만원으로 늘었다. 반복되는 호우와 태풍, 대설이 주요 원인이었으며, 2018년부터 피해 현황이 집계된 폭염은 연평균 35.67명의 인명 피해를 내 치명적인 자연재해로 분석됐다.
◆“안전 신뢰” 10명 중 3명뿐… 불신 키운 정부·지자체
늘어나는 재난 속에 국민의 안전 불안은 여전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낀 국민은 10명 중 3명(33.3%)이었다. 2년 전 조사 때보다 1.5%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안전해졌다고 느끼거나, 미래에 안전해질 것이란 전망은 큰 폭으로 줄었다. 5년 전과 비교해 사회가 안전해졌다고 답한 비율은 32.3%로, 2년 전 38.8%에 비해 6.5%포인트 줄었다. 5년 후 사회가 안전해질 것이라고 보는 국민 비율도 32.6%로, 2년 전 39.1%보다 6.5%포인트 감소했다. 반대로 5년 후 사회가 더 위험해질 것이라고 보는 국민은 5명 중 1명(21.5%)꼴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가 8월 수해와 10월 이태원 참사 이전인 5월에 진행됐다는 점에서 국민이 느끼는 실질적인 안전 체감도는 훨씬 더 낮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낮은 안전 체감도는 재난마다 되풀이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안일한 대응도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가장 큰 불안 요인으로 ‘인재’를 꼽은 국민이 28.8%로, 2년 전 25.1%에 비해 상승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역을 두고 있는 서울시는 지난해 행안부 지역안전지수에서 생활안전 1등급으로 분류됐다. 관할 지자체인 용산구도 2등급을 받아 기초지자체 중 상위권이었다. 그럼에도 ‘주최자가 없는 축제’라는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없었고, 그나마 마련된 각종 안전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국민의 문화와 교육,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사회에 요구하는 안전 기대치는 늘어난다”며 “반면 정부와 지자체가 보여주는 모습이 국민의 안전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면서 비관적인 인식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태원 참사도 예견된 재난… 미래 재난은
전문가들은 향후 재난이 더 다양한 형태로 우리 일상을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래 재난 유형을 사전에 예측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게 참사를 반복하지 않을 필수 조건이다.

이태원 참사 역시 수년 전부터 예고됐던 재난이었음이 뒤늦게 드러났다. 서울연구원은 2016년 발표한 ‘신종 대형 도시재난 전망과 정책방향’ 보고서에서 압사를 신종 사회재난 유형으로 분류했다. 보고서는 “압사 사고는 공연 시설, 체육 시설, 대형 쇼핑 시설, 지하철역, 각종 행사장·집회장 등 한정된 공간에 많은 사람이 밀집한 장소에서 혼잡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며 “최근 문화축제, 공연, 경기, 집회 등이 많이 늘어남에 따라 압사 사고의 발생 잠재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보고서는 ‘서울에서 장래 관심을 두어야 할 신종 또는 대형 도시재난’으로 시간당 100㎜ 이상 집중호우, 정보 시스템 마비 또는 사이버 피해 등을 꼽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서울에 시간당 120㎜가 넘는 비가 내렸고, 10월엔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먹통 사태가 발생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2021년 발표한 ‘미래안전이슈 18호’에서는 미래 위험성이 높은 재난으로 자연재난은 풍수해와 폭염, 사회재난은 감염병과 미세먼지, 산업재해를 꼽았다. 유례없는 태풍과 폭염, 미세먼지, 코로나19보다 강력한 감염병이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급격한 4차 산업혁명과 산업 현장 인력 고령화 등으로 심각한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성을 경고한 부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성일 르네방재정책연구원장(전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은 “기후변화에 의한 재난은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 확실하다. 드론, 전기차 등 수많은 신기술도 검증되기 전까지는 새로운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대도시의 경우 현재 도로와 각종 시설이 지하에 설치되고 있는데, 당장 화재나 폭발, 화학물질 누출이 발생하면 상상할 수 없는 초대형 재난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 원장은 그러면서 “안전 컨트롤타워인 행안부가 다른 부처에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안전 대책을 직접 점검하고 챙겨야 한다”며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현재까진 그런 조직이 마땅치 않아 보여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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