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정부의 반도체 정책이 갈팡질팡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새해 첫날 인천공항 반도체 수출현장에서 반도체 세제지원과 관련해 “(세액공제율이) 두 자릿수는 돼야 하지 않겠냐.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에 대한 투자세액공제를 높여야겠다”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번 주 중 보름도 채 되지 않아 수정안을 발표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연말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에 대해 세제 지원을 추가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가 늦게라도 세제개선에 나선 건 그나마 다행이다.
세액공제 혼선은 기재부의 이기주의와 야당의 무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애초 국민의힘은 대기업의 세액공제율 20%(중견기업 25%, 중소기업 30%)를 제안했는데 더불어민주당은 재벌 감세라는 이유로 10%를 주장했다. 기재부는 한술 더 떠 법인세수가 2조7000억원 줄어들 것을 우려해 8%를 제시했는데 어이없게도 이 안이 지난달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오죽하면 여당안을 발의했던 양향자 의원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사망선고”라고 토로했을까. “반도체가 국가안보자산이자 우리 산업의 핵심 기술”이라며 파격적 지원을 약속했던 윤 대통령의 발언도 빈말이 되고 말았다.
경쟁국들은 세제·예산·금융수단을 동원해 반도체 산업을 전방위로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세액공제비율 25%와 자국 내 시설 건립에 대한 520억달러 보조금 지급 등을 담은 법안을 작년 7월 말 통과시켰다. 중국도 반도체 기업의 공정수준에 따라 법인세를 50∼100% 깎아주고 2025년까지 1조위안을 지원한다. 대만은 세액공제율을 종전 15%에서 25%로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고 일본·유럽연합(EU) 역시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한국 반도체업계에 혹독한 한파가 몰아친 지 오래다. 세계시장 점유율이 경쟁국에 밀리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도 악화일로다. 이러다 반도체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반도체는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며 한국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10%대 세율로는 턱도 없다. 정부는 산업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세액공제율을 20%대로 높여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 중장기 국가경영 차원에서 반도체뿐 아니라 전기차와 배터리 등 주력산업 부흥에 총력을 다해야 할 때다. 야당도 한국 반도체의 현실을 직시해 부자 감세라는 미몽에서 깨어나기 바란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