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4일 동거녀·택시기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검찰 송치된 이기영(31·구속)이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 등 희대의 연쇄살인범들의 특성을 복합적으로 지녔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기영을 유영철,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들과 비슷한 유형으로 보느냐’는 진행자의 말에 “제가 볼 때 (유영철, 강호순에 더해) 정남규까지 포함해서 그 세 가지 유형이 다 ‘짬뽕’된 그런 타입”이라고 답했다.
사형을 선고 받은 연쇄살인범들인 유영철·강호순·(故)정남규 등은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은 바 있다. 경찰은 지난주 이기영을 대상으로 사이코패스 성향 검사를 진행했으며 조만간 결과를 발표할 거로 보인다.
다만 이 교수는 이기영에 대해 앞선 연쇄살인범들에 비해 “훨씬 더 인스턴트(즉흥적)하고, 치밀하지는 못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기영을 즉흥적이라고 본 이유는 이성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기영은) 결혼을 한 적은 있으나 오래 가지 못했고 그 이후에는 거의 대부분 도우미 여성들을 접촉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런 (이성) 관계에 대해서 전혀 제대로 형성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이런 것들이 전 연쇄 살인범죄하고는 또 다른 특징”이라고 말했다.
전날 경찰이 이기영의 주거지에서 발견된 혈흔 등에서 3명의 다른 여성들의 DNA를 확인했다고 밝힌 데 대해선 “현재 생존이 확인되면서 잠깐 사귀었던 여성, 현재 여자친구, 이기영의 어머니가 잠깐 방문한 적도 있다. 그런 개연성 상 혈흔에서 나온 나머지 한 여성의 DNA도 맞는 임자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다행히 같은 결말을 맞이하면 두 명만 살해된 것으로 결론이 날 수 있고, 그랬으면 좋겠다”면서도 “둔기가 (이기영) 집 안에 있었다는 점에서 지금 나머지 하나 남은 여성 혈흔의 임자는 꼭 확인돼야 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이기영이 동거녀 시신을 처음에 하천에 버렸다고 주장했다가 전날 ‘강가에 묻었다’라며 진술을 번복한 부분에 대해선 “(앞으로는) 진술을 더 이상 바꿀 여지가 없어 보인다”고 추측했다.
이 교수는 “(이기영이) 오늘 아마 검찰로 송치 되면 상당히 절박한 심정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지금 그러한 주요 범행 사실에 대해서 번복했다가는 본인에게 굉장히 불리하게 나중에 재판받을 수 있다”면서 “이런 생각을 이제부터는 확실하게 할 것으로 보여서 지금 현재 얘기하는 시신 매장 장소는 정확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추가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에 대해선 “그럴 수 있다. (이기영의) 동거녀가 사망한 이후 살해한 택시기사의 신용카드를 절취할 때까지 기간이 길었다”면서 “이기영의 씀씀이로 추정해 보면 생활비에 쪼들렸을 것”이라고 봤다.
이 교수는 “그러니까 또 다른 희생자를 염두에 두고 경찰도 DNA가 현출될 수 있는 모든 집안의 물건들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기영은 지난해 8월 파주시 집에서 집주인이자 동거인이었던 50대 여성 A씨를 살해해 시신을 유기하고, 12월20일에는 음주운전을 하다 접촉사고가 난 택시 기사 60대 남성 B씨에게 합의금을 준다며 집으로 데려와 둔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옷장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앞서 경찰의 신상공개 결정으로 얼굴(사진)이 공개된 이기영은 4일 검찰 송치 과정에서 취재진 포토라인 앞에 섰다. 그는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고 두 손목에 포승줄이 묶인 채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패딩 점퍼의 모자를 눌러쓴 데다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 여전히 얼굴 전체는 공개되지 않았다. 두 눈을 뜨고 있는 모습만이 공동취재 카메라에 담겼다.
이기영은 ‘피해자 유가족에게 할 말 없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무엇이 죄송하냐”는 추가 질문에는 “살인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취재진이 “추가 피해자는 없느냐”고 묻자, 그는 “없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경기 일산 동부경찰서는 앞서 파주시에 있는 이기영의 집(동거녀 A씨 소유)에서 발견된 혈흔·머리카락 등에서 남성 1명·여성 3명의 DNA가 나왔다는 결과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회신받았다고 전날 밝혔다. 다만 경찰은 아직까지 추가 범죄 정황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같은 날 이기영은 동거녀 A씨 시신 유기 장소에 관한 진술을 번복해 수사에 혼선을 줬다. 앞서 그는 지난해 8월 동거녀를 살해한 뒤 시신을 캠핑용 루프백에 담아 하천에 버렸다고 진술했으나, 이번에는 강 주변에 땅을 파 매장했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은 아직 A씨의 시신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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