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에 찾은 울산 동구 서부동의 현대중공업 중앙아파트. 와인색 히잡을 쓴 여성이 인사를 건네며 지나갔다. 5층짜리 건물 한 동으로 된 아파트 입구에 설치된 안내판과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두는 곳에는 다리어(아프가니스탄의 공용어)로 쓰인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관리사무실로 사용되는 101호 거실 벽엔 압둘, 하키미와 같은 이름이 각 호실 번호와 함께 적혀 있었고, 방 한 칸엔 다문화센터가 마련돼 있었다. 울산 속 작은 아프가니스탄 같은 이 아파트는 지난해 2월 7일 울산에 온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이 터를 잡은 곳이다.
관리사무실의 한국인 반장은 “(특별기여자들이) 잘 적응해 우리가 생활하는 것과 다름없이 지내고 있다”며 “그동안 차를 가진 주민은 없었는데 이달 들어 세 집이 중고차를 구입해 가족나들이에 사용하더라”고 전했다.
탈레반에 아프간 정부가 넘어간 2021년 8월, 한국 정부의 ‘미라클 작전’으로 391명의 특별기여자가 한국에 입국했다. 특별기여자 중 28가구(150여명)는 울산으로 왔다. 이들의 가장 28명이 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의 12개 협력사에서 일하게 됐고, 현대중공업은 1985년에 지어져 임직원 사택으로 쓰던 중앙아파트(30평형대 30호)를 제공했다.
206호에 사는 하피즈 압둘(49)씨는 아내, 자녀 4명과 함께 왔다. 그는 선박엔진 업체인 지테크에서 전기 설비 일을 하고, 4명의 아들, 딸은 초·중·고등학교와 유치원을 다닌다.
하피즈씨는 아프간에서 15년간 간호사로 일했다. 탈출 직전엔 아프간 한국 협력 병원에서 7년간 근무했다. 그는 “직업이 너무 달라서 겪는 어려움은 있지만, 주변 사람들이 친절하고 잘 해줘서 차츰 적응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피즈씨 가족이 울산살이 1년동안 가장 어려움을 겪은 부분은 ‘음식’이다. 무슬림이어서 돼지고기를 먹지 못한다. 그는 “다행히 동구에 할랄푸드(무슬림에게 허용된 식품)를 파는 가게가 있다. 재료를 사서 집에서 요리를 해 먹기 때문에 이제는 괜찮다”며 “할랄푸드를 파는 음식점도 한 곳 있어 가끔 외식도 한다”고 전했다.
한국 생활에 맞춰 기도시간은 바뀌었다.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 5번 기도를 하는데, 하피즈씨는 새벽과 저녁엔 집에서 기도하고, 낮에는 점심시간의 5∼10분 정도만 기도에 쓴다. 그는 “한국문화에 맞춰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며 “한국인 직장동료와 서로의 집에 초대하면서 한국문화에 대해서도 서서히 알아가는 중이다”고 했다.
아이들은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다.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자녀 85명은 병설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각각 배정됐다. 지난해 4월엔 아프간 학생들의 학교 배정에 대해 기존 학생 학부모들이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울산시교육청에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옛 이야기다.
고등학생의 한국어 공부를 도왔던 최선자 한국어교원은 “우려했던 갈등은 없었고, 아이들끼리도 따돌림 없이 어우러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낮 12시면 하교하는 아프간과 달리 학교에 오랜 시간을 보내는 한국 학교생활을 힘들어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이젠 적응한 것 같더라”고 덧붙였다. 고3이었던 7명은 울산과학대에 합격했다.
엄마들의 생활은 여느 가정주부와 비슷하다. 남편과 아이들이 직장·학교에 가 있는 동안 한국어를 배우고, 대송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 한국인 친구를 둔 엄마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동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김재현 통번역지원사는 “처음엔 다리어로만 안내문을 붙였지만, 요즘은 한국어와 다리어를 같이 표기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며 “한국어 안내문만 사용하는 날이 곧 올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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