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외로움·가난과 싸우며
2평 미만 공간에 ‘다닥다닥’
한파에 툭하면 수도 터지고
겨울엔 제대로 씻는 것 포기
여름철보다 더 힘겨운 나날
매년 겨울이면 약 20㎝ 높이의 가파른 층계가 꽁꽁 얼어붙는 ‘얼음 계단’으로 유명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한 건물. 올해도 최근 찾아든 한파에 하수도가 터지면서 4층 짜리 계단과 난간이 모두 얼어붙었다. 지난 1일 찾은 이곳은 기온에 따라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하는 통에 질퍽한 물기와 제설제로 뒤엉켜 있었다. 얼음계단에 넘어져 다친 사람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60대 주민 A씨는 “미끄럽기는 엄청 미끄러웠다”면서도 “여기는 다치는 것보다 죽는 사람이 많다. 올 겨울에만 2∼3명이 방에서 혼자 죽었다더라”고 답했다.
최강 한파에 더해 3년을 훌쩍 넘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국제적 위기로 악화된 경제난, 가스비 폭탄 등이 겹치면서 쪽방촌·판자촌 등에 사는 주거 취약계층은 더욱 힘든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취재진은 최근 한파 전후로 서울 시내 여러 빈민가를 돌며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직접 둘러본 결과 예상했던 그림도 펼쳐졌지만, 상상하지 못했던 그 이상의 현실도 교차했다.
2평 미만(1평=3.3㎡) 쪽방에 사는 사람들은 계단에 미끄러지는 것이나 가난에 대한 것보다 ‘죽음’을 더 많이 이야기했다. 거리에 연말연시 분위기를 즐기러 모여든 사람들과 대조되면서 커지는 외로움과 함께 시린 날이 이어지는 한겨울이 되면 죽음은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온다. 대부분 밥 대신 술만 먹다가 위가 안 좋아져 사망하는데, 마지막 모습이 발견되는 건 옆방 사람이 문을 열어볼 때다. 이날 취재 도중에도 한 60대 남성 주민이 생명이 위급한 상태로 발견돼 119 구급대가 출동했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 용중지구대 경찰 관계자는 “하루에만 2∼3건씩 쪽방촌으로 출동을 한다. 변사 사건도 많이 보고 듣는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만난 B씨는 “가난한 것보다 외로운 것이 더 힘들고, 그걸 잊으려 밤낮으로 술을 먹게 된다”며 “쪽방촌 주민 중에는 ‘술귀신’ 들려 병원으로 실려간 사람이 많다. 대부분 병원에서 사망해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 역시 혼자 방에서 술을 먹다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는데, “이렇게 계속 살다가 죽은 사람들 많이 본다”는 구급대원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술을 끊은 지 4년이 됐다.
보건복지부가 추산한 전국 쪽방촌 주민은 2021년 기준으로 5448명이다. 서울뿐 아니라 인천·대전·대구·부산 등 전국 각지에 쪽방촌이 있다. 복지부의 ‘2022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 고독사가 여성 고독사보다 4배 이상 되고, 50∼60대가 가장 많았다. 1인 남성 고령 가구 위주로 구성된 쪽방촌 주민의 고독사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난방비 걱정도 사치인 사람들
얼음 계단으로 악명 높은 동자동의 쪽방은 인근 쪽방들 가운데에서도 시설이 가장 낙후되고 위험해 월세가 훨씬 낮다. 보통 30만∼40만원에 형성된 월세보다 낮은 19만원을 받는다. 이곳 주민들은 “다 수급비로 방세를 내는 처지이지만, 그나마 더 저렴한 방으로 들어가 아낀 돈으로 술을 더 사먹겠다는 사람들이 여기로 온다”고 말했다.
난방비 급등 이슈도 쪽방촌에서는 딴 나라 이야기다. 20만원도 안 되는 저렴한 월세는 애초에 난방을 제공하지 않는 조건이다. A씨는 “사정이 나은 사람은 전기장판을 깔고, 아니면 대부분 침낭을 쓴다”며 “이불만으로 겨울 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8년째 동자동의 다른 쪽방에 거주 중인 정지영(63)씨도 “난방비 얘기 많이 하는데, 방값(월 30만원)에 전기료, 가스비가 포함되어 있어 우리는 부담이 늘어나진 않았다”고 말했다. 동자동사랑방에서 만난 한 주민은 “쪽방에는 도시가스가 설치된 건물이 거의 없고 대개 전기판넬 온수기를 쓴다”며 “그조차 없는 방에 산다면 개인 방한장비만으로 겨울을 나야 한다”고 전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어떤 쪽방도 온수를 틀어주는 곳은 없다. 겨울 동안은 사실상 제대로 씻는 것을 포기하고, 정 못 견딜 때나 목욕탕을 다녀온다. 김석곤(49)씨는 “쪽방살이는 여름보다 겨울이 더 힘들다. 더위는 피할 장소가 많지만 쪽방 세면실에는 따뜻한 물이 안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달 하순 영하 17도씩 내려간 극심한 한파 때 공용 화장실과 공동세면실이 동파돼 쓸 수 없게 된 곳들도 많다. 이 때문에 동자동 쪽방 인근에 서울경찰청이 설치한 차량 이동식 화장실을 지난달 28일 볼 수 있었지만, 세면기 물이 나오지 않고 변기 물도 내려가지 않는 상태였다. 취재진이 다녀간 이틀 뒤 이 차량 화장실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서울시가 3칸 짜리 간이 화장실 설치를 시작했다.
◆의식주 걱정보다 더 힘든 외로움
동자동 쪽방촌에서 10년을 살고, 돈의동 쪽방촌으로 이주해 7년째 거주 중인 B씨는 가족과 왕래 없이 이번 설 연휴도 혼자 쪽방에서 보냈다. 식료품 후원이 자주 들어와 먹을 걱정은 잘 하지 않는다고 한 그는 “진짜 힘든 건 외부로부터 소외당했다는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B씨는 적적할 때면 유튜브와 종이 신문을 보며 세상과 연결되고픈 마음을 달래고 있다.
이날 만난 한 80대 시민은 “쪽방에 사는 건 아니고 여기 거주하는 치매 걸린 친구를 간병하러 매일 온다”며 “코로나 때 쪽방촌 사는 노인들이 여럿 죽었는데 내가 직접 보살핀 친구는 코로나에도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동갑내기인데 내가 죽으면 친구는 누가 돌보냐”며 “차라리 친구가 얼른 죽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쪽방촌 주민의 하루가 마냥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만 보는 것 또한 편견일 수 있다. 외로움을 술로 잊던 시절은 뒤로 하고,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거나 전문가 도움을 받아 삶의 의지를 키우는 B씨의 하루가 그랬다. 아침에 일어나 종각공원이나 탑골공원 등을 산책하고, 주민들과 수다를 떨다 교회를 가는 것이 그의 일과다. 돈의동주민협동회에 가입해 매달 예금을 넣고, 사업도 하고 있다.
오랜 우울증을 치료하러 다니는 병원에서 “밝은 옷을 입어야 좋다”고 한 말에 자신이 좋아하는 빨간색 옷을 늘 입는다고 한 B씨는 인터뷰 중에도 울리는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의 애플리케이션 알람을 수시로 확인했다. 그는 옷가지를 모두 당근마켓에서 산다고 한다.
역시 이곳 쪽방에 60년째 살고 있는 집 주인 C씨와 주민들은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쪽방 건물 2개를 소유하고, 한 곳에 자신이 살면서 다른 곳은 사람들에게 세를 주고 있는 C씨는 얼마 전 쪽방 주민들에게 떡국을 끓여줬다. B씨가 아프면 약을 가져다주고, 배고프다고 하면 라면을 끓여주기도 한다. 비록 열악한 시설에 힘든 건 변하지 않지만, 집 주인까지 함께하며 서로 의지할 공동체가 형성된 점은 긍정적이라고 이들은 입 모아 말했다. 주민들은 올해 84세인 C씨가 오래 살았으면 한다고 이야기했다.
◆화재 이후 처참한 현장 못 떠나는 이들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도 쪽방촌이나 판자촌 같은 빈민가다. 설 연휴 직전 화마에 휩싸여 하루아침에 터전이 없어진 강남구 구룡마을 주민들은 집들이 새까맣게 타버린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방문한 이곳은 화재 진원지로 추정되는 집을 중심으로 거대한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다. 불길을 피해 입고 있던 옷가지와 휴대전화 하나 달랑 챙겨나온 주민들은 그 상태로 영하의 추위를 견디는 실정이다.
구룡마을에 26년간 거주한 70대 주민 D씨는 자신의 집이 있던 자리를 가리키며 “다 타버려 남은 것이 없지만 놋쇠 그릇이나 세숫대야 같은 그래도 쓸 만한 것을 가져왔다”며 “이런 청둥오리 장식품 같은 걸 모아서 팔아 한 푼이라도 벌려고 한다”고 말했다. 아들과 둘이 사는데 둘 다 출근 중 화재가 나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집이 다 타버렸다는 이재민 E씨는 “지원받은 방한 용품 사이즈가 다 너무 커서 입을 수가 없다”며 “화재 현장 정리하고 천막을 지키느라 일도 못하고 있는데 지원금을 좀 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E씨는 방수페인트 칠하는 일을 하는데, 현재 일을 멈춘 상태다. 마을에서부터 임시 숙소까지 버스로 30분 걸리는 거리라 걸어다니기도 힘든 상황이다.
집이 불타지는 않았지만, 단열이 아예 안 돼 냉골이라고 한 주민 김모(77)씨는 밖으로 나와 고기를 구워먹고 있었다. 집 안이나 밖이나 온도 차이가 거의 없으니 “불이라도 피우고 고기를 먹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김씨는 말했다. 그는 “싱크대가 얼 정도로 엄청 추운 겨울이었다”고 떠올리며 “지원받는 연탄을 계속 피워 바닥은 뜨끈해도 집이 오래돼 웃풍이 너무 심하다”고 한탄했다. 집에 있는데도 냉장고 안에 있는듯 입김이 나오고, 손이 시려 이불 2개를 덮고 모자까지 쓰고 잔다고 한다. 화장실 동파에 대해 묻자 김씨는 “여기는 대부분 푸세식이라 화장실 안이 추운 것이 문제지 물이 얼거나 하는 걱정은 없다”고 답했다.
이들은 하나뿐인 보금자리를 포기할 수 없으니 잿더미 위에서라도 “집을 달라”며 농성하고 있다. 오전 7시30분 현장으로 왔다가 오후 5시30분쯤 임시 거처가 마련된 호텔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장기간 무단 거주하던 이들이 천막 농성을 통해 ‘분양권’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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