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최초 보험범죄 박사학위
“범죄 수법 해마다 지능화·대범화
복잡한 과정·더딘 협조 수사 난항
하루빨리 수사체계 구축 필요”
“보험범죄로 연간 10조원이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방지할 대책이 절실합니다.”
보험범죄 수사에서 국내 최고 베테랑으로 꼽히는 윤명성 경무관은 27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보험업·의료업계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문화 안착이 긴요하고, 수사·조사 분야 전문인력 양성이 시급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경무관은 실손의료보험 사기, 불법 사무장 병원, 조폭 고의 교통사고 보험사기, 사회 초년생 모집 고의 교통사고 등 보험범죄가 심각하게 지능화·대범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가령 소비자 사이엔 ‘보험사의 돈은 눈먼 돈’이고 보험금을 타지 않으면 그동안 낸 보험료가 아깝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이를 악용하려는 일부 의사와 도덕적 해이에 빠진 일부 보험설계사 등의 공모 범죄 규모는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보험범죄 피해액은 고스란히 보험가입자의 부담으로 돌아오기에 보험사기는 국민을 대상으로 한 중대범죄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더했다.
27일 충남 천안시 리각미술관에서 인터뷰에 응한 윤 경무관은 인터뷰 내내 보험범죄 수사 1인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먼저 이력이 이를 설명했다. 그는 경찰관 최초로 보험범죄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그때가 2012년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광주·전남경찰청 근무시절인 2017∼18년 관계기관과 보험사기 합동 특별단속을 통해 1000여명의 보험범죄 사범을 검거하며 경종을 울렸다.
윤 경무관은 “보험범죄는 건강보험재정을 약화시키고 개인보험료 부담을 증가시키는 ‘소리없는 대재앙’”이라며 하루라도 빨리 관련 수사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경찰수사연수원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원내에 보험범죄연구센터를 개소했다. 보험범죄수사교육과정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보험범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그가 전한 수사사례에서 즉각 확인된다. 일례로 사무장 병원의 139억원 편취 보험사기 사례는 이랬다. 한방병원 사무장 A씨와 B씨는 병원을 개설할 수 없는 비의료인이었다. 그럼에도 의사 C씨를 고용해 C씨 명의로 2013년 10월∼2017년 4월 한방병원을 운영했다. 두 사람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비 명목으로 30억여원을 편취하고, 38개 보험사로부터 환자들의 민영보험금(실손보험금) 등 명목으로 108억5000여만원을 청구했다. ‘나이롱환자’를 동원한 요양급여와 보험금 청구 집단 사기극이었다.
이 집단 사기극은 그의 보험범죄 수사에 걸려들었다. 물론 수사 과정은 쉽지 않았다. 보험범죄를 밝히기 위해서는 병원·보험사·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여러 기관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그는 “복잡한 과정 때문에 수사에 더 어려움을 겪는데, 심평원의 더딘 업무 협조가 특히 안타까운 점이었다”고 말했다.
가급적 이른 시일에 심평원 판정을 확보해야 보험범죄 사기 수사가 진척을 볼 수 있다. 윤 경무관에 따르면, 병원 장기입원의 경우에도 입원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심평원의 판정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이 1∼2년씩 걸린다는 점이다. 대형 사건이라면 2년 넘게도 소요된다. 그는 “심지어는 심평원에서 회신이 없는 경우도 있다”며 “그 사이 수사관이 바뀌고 사건이 유야무야되기도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심사평가를 하는 위원 대다수가 의사인데, 이들이 의료계를 비호하는 업무처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윤 경무관은 지난해 한국보험범죄연구원과 한국보험범죄학회를 창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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