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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도 나도 코흘리개 아이들을 동반하고 가야 했으니 그것을 과연 진짜 여행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접어두고 일단 목적지부터 정해야 했다. 우리는 제주에 가고 싶었다. 경주에도 가고 싶었다. 통영도 좋고 구례도 좋고 남해도 좋았다. 그러다가 그리스를 떠올렸고 이집트와 태국, 호주며 스위스며 이탈리아 등등 우리는 형편상 갈 수 없는 곳들까지 이곳저곳 죄다 읊어댔다. 하지만 난상토론 끝에 내린 결론은 어디든 좋다는 것이었다. 네가 정하면 무조건 따를게. 나는 친구에게 결정권을 넘겼다. 그가 호기롭게 외쳤다. 좋아, 그럼 춘천으로 가자.

춘천? 춘천은 친구와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닌 곳이었다. 게다가 둘 다 친정이 거기 있어 이래저래 갈 일이 잦았다. 그런데 그에게도 나에게도 고향이나 다름없는 그곳에 생뚱맞게 여행을 가자니, 뭐랄까 마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자신의 학교로 떠나는 격 아닌가. 그러나 결정권을 넘겼으므로 나는 군말 없이 동의했다. 어쨌든 춘천이 매력적인 여행지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 하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알고 보니 그렇게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춘천에 도착한 직후 친구는 말했다. 자, 일단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고 오자. 딱 네 시간만. 그는 현명했다. 돌봄 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가장 절실하지만 가장 어려운 조건이요, 그것이 가능한 유일한 여행지가 춘천이었던 것이다. 나아가 그에게는 더 큰 그림이 있었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익숙한 풍경, 그러니까 익숙한 건물과 익숙한 도로와 익숙한 간판들을 둘러보는가 싶더니 친구는 대뜸 제안했다. 이제부터 이곳을 이탈리아라고 생각하자. 음, 어디가 좋을까. 나폴리 어때?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그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친구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앞장서서 걸었다. 우리 구시가지 관광부터 할까? 어머, 저기 중앙역 뒤로 두오모가 보여!

친구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남춘천역 뒤로 커다란 교회 건물이 보였다. 아니, 세계 각국의 여행자로 붐비는 중앙역 앞 울퉁불퉁한 돌바닥 광장을 가로질러 고색창연한 대성당의 돔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아, 이곳은 나폴리였다. 나는 친구에게 고개를 돌렸다. 우리 점심은 피자를 먹자. 친구가 웃으며 대꾸했다. 당연히 그래야지. 후식은 젤라토? 나도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카푸치노도 한잔 하고. 그런 다음 우리는 눈앞의 나폴리 도심 속으로 나란히 발을 내디뎠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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