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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연금개혁, 하원 건너뛰고 ‘강행’… 스페인은 노동계 지지 얻어 ‘합의’ [佛·스페인 ‘연금개혁 드라이브’]

입력 : 2023-03-17 19:00:00 수정 : 2023-03-17 22: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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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표결 우회 택한 佛
정년 62세→64세 연장이 핵심
하원 이탈표 감지되자 ‘특단책’
野, 정부 불신임 투표로 맞대응

노정 합의 이룬 스페인
납부 늘리고 연대 할당제 도입
양대 노조 “역사적 계획” 환영
보수 야권·재계 반발 변수 남아

‘개혁 드라이브’ 尹정부에 교훈

한쪽은 대통령이 여론과 의회의 반발을 감수하고 추진하는 리더십을, 한쪽은 노동계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공법을 펼쳤다. 연금개혁 입법화 문턱에 다다른 프랑스와 스페인 얘기다. 세부 방향성은 다르지만 이들 국가와 마찬가지로 연금개혁을 추진 중인 윤석열정부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평가다.

 

16일(현지시간) 일간 르몽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프랑스 상원을 통과한 연금개혁 법안이 오후 하원 표결만 남은 상태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는 의회 절차를 생략할 수 있는 헌법 특별조항을 이용해 입법을 밀어붙이기로 했다. 중도우파 성향 범여권 250석과 연금개혁에 우호적인 우파 공화당 61석을 합치면 하원 577석의 과반을 이루지만, 이탈표가 23표 이상 나와 법안이 부결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강공책을 택한 것이다.

野의원에 야유받는 佛총리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앞)가 16일(현지시간) 하원 의사당인 부르봉궁에서 정년을 62세에서 2년 연장하는 내용의 연금개혁 법안을 하원 표결 없이 헌법 특별조항을 발동해 처리하겠다고 밝히자 좌파 사회당 등 야당 의원들이 ‘64세는 안 된다’고 적힌 종이를 들고 야유를 보내고 있다. 파리=로이터연합뉴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와 세 차례 대책 회의를 가진 뒤 ‘긴급한 상황이라고 판단됐을 때 각료 회의를 통과한 법안을 총리 책임으로 의회 투표 없이 통과시킬 수 있다’는 헌법 제49조 3항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각료들에게 “내 관심은 표결로 가는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개혁이 좌절될 때의) 재정적·경제적 위험이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며 “국가의 미래를 가지고 장난을 칠 수는 없다”고 말했다.

 

1차 집권기엔 여론의 거센 항의에 밀려 연금개혁을 접었지만, 이번에는 ‘정치적 정당성 결여’와 ‘민주주의 퇴보’ 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입법을 밀어붙여 연금재정 건전화의 기틀을 잡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늘리는 연금개혁법 강행에 야권은 강하게 반발했다. 보른 총리가 하원에 나와 정부 방침을 설명하려 하자 의장석 왼편 야당 의원들은 ‘64세는 안 된다’고 적힌 종이를 들어 보이며 야유를 보냈다. 일부는 “퇴진하라”고 외쳤다. 극좌 성향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당 의원들은 ‘압제자에 맞서 무기를 들라’는 내용의 국가 라마르세예즈를 소리 높여 불러 총리 발언을 방해하기도 했다.

 

여당 르네상스(RE) 내에서조차 “실망과 분노 사이를 오가고 있다. 우리는 투표했어야 했다”(에리크 보토렐 의원)는 반응이 나왔다.

 

보른 총리는 정부가 지난 1월 하원에 제출한 원안이 아니라 이후 두 달간 여러 정당이 함께 만든 수정안을 채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날 상·하원 공동위원회가 도출한 수정안에는 정년을 2030년까지 64세로 연장하고, 연금 100% 수령에 필요한 기여 기간을 기존 42년에서 2027년까지 43년으로 늘린다는 정부 원안이 반영됐다. 여기에 일을 일찍 시작한 노동자는 조기 은퇴를 할 수 있고, 일하는 엄마들에게는 최대 5% 연금 보너스를 지급한다는 공화당 제안이 추가됐다.

지난 1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한 시민이 수거되지 않은 채 거리에 쌓인 쓰레기 더미의 사진을 찍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연금 개혁에 맞서 노조 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파리=AFP연합뉴스

의회를 건너뛰기로 한 마크롱 대통령의 선택이 미래 세대를 위한 승부수나 뚝심으로 평가받을지 아니면 자충수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3분의 2가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가운데 나온 마크롱 정부의 이날 결정은 민심의 불바다에 기름을 부은 격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연금개혁을 둘러싼 2개월간의 대결을 통해 마크롱은 이미 신뢰할 만한 동맹이 적은, 약해지고 고립된 대통령이라는 점이 드러났다”며 “이제 그가 민주주의를 존중한다는 확신을 프랑스 시민들에게 심어주기는 당분간 난해해졌다”고 짚었다.

 

야권은 정부 불신임 투표 카드를 꺼내들었다. 불신임안이 1962년 이후 처음으로 가결되면 총리와 내각은 사퇴해야 하고 연금개혁 법안은 철회된다. 부결되면 법안은 바로 법률로 발효된다. 다만 공화당이 범여권과 연대할 전망이어서 불신임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평가다. 외신들은 “불신임 투표는 이르면 월요일(20일) 진행될 전망”이라고 했다.

 

거리에선 전운이 감돌았다. 당장 이날 의회 맞은편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약 1만명이 몰려들어 시위를 벌였다. 필리프 마르티네즈 노동총동맹(CGT) 사무총장은 정부의 법안 강행이 “국민에 대한 경멸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사용해 시위대 해산을 시도했다. 분노한 시위대는 해산한 뒤에도 인근 샹젤리제 거리를 돌아다니며 수거업체 파업으로 곳곳에 쌓인 쓰레기와 주차된 차량 등에 불을 붙였다. 전국적으로는 24개 도시에서 6만명이 시위에 나섰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은 파리 시위 참가자 258명을 포함해 전국에서 310명이 체포됐다고 RTL라디오에 밝혔다.

 

프랑스 주요 노조들은 오는 23일 제9차 연금개혁 반대 시위를 열기로 했다.

16일(현지시간) 프랑스 정부가 연금개혁 법안의 하원 표결을 건너뛰고 바로 입법할 수 있는 헌법 제49조 3항을 사용하기로 한 이후 서부 낭트에선 연금개혁 반대 시위 참가자들이 진압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낭트=AFP연합뉴스

◆노측 협조 얻어낸 산체스 정부

 

정치·사회적 혼돈에 빠진 프랑스와 달리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정부는 연금제도 개혁에 관한 노동계 지지를 무난하게 얻어냈다고 AP, DPA 통신이 전했다.

 

중도좌파 성향 사회민주당 정부가 이날 각료 회의에서 승인한 연금개혁안은 노동자의 연금 기여금 납부 기간을 25년에서 최대 29년으로 연장하고 고소득자 대상 ‘연대할당제’를 도입해 기여금 부담을 늘리는 내용이 뼈대를 이룬다. 고령화와 높은 청년실업률에 따른 연금재정 고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다. 프랑스와 달리 스페인 은퇴 연령은 65세로 유럽연합(EU) 평균 수준이어서 이 부분은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스페인 양대 노조인 노동자위원회(CCOO)와 노동자총연맹(UGT)은 이번 개혁안을 두고 “역사적 계획”이라고 환영했다. 우나이 소르도 CCOO 사무총장은 전날 “이번 개혁은 2048년까지 1000만∼1500만명 늘 것으로 예상되는 스페인 은퇴 인구의 연금을 보장하는 데 핵심이 될 것”이라며 “이는 사회복지 시스템의 근간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개혁안은 스페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회복기금을 추가로 지원하면서 EU가 내건 사회보장제도 개편 요구 조건에 부합한다고 DPA는 전했다. 페페 알바레스 UGT 사무총장은 “정부가 EU의 지지를 이끌어 낸 것에도 축하하고 싶다”고 말했다.

 

스페인 연금개혁안은 이제 의회 표결 절차만 남겨뒀다. 변수는 보수 야권과 재계의 반발이다. 개혁안에 고소득층과 기업의 사회보장 비용 부담을 늘리는 내용이 담겨 있어서다. 제1야당 국민당(PP)의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 대표는 “노동과 재능에 새로운 세금을 물리는 셈”이라며 연말 총선에서 승리하면 연금제도를 다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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