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내 삶의 중심은 예술” ... 아직도 ‘작가다운 작가’ 꿈꾼다 [나의 삶 나의 길]

, 나의 삶 나의 길 , 세계뉴스룸

입력 : 2023-03-26 09:00:42 수정 : 2023-03-26 09:00:3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세계 100대 컬렉터’ 김창일 (주)아라리오 회장
어릴적 엉뚱한 몽상가
학교선 열등생… 무리서 소외도
쓰임 다한 버려진 오브제 애착
생명·영혼 불어넣는 작업 즐겨

성공한 사업가는 ‘부캐’
예술하기 위해 열심히 돈벌어
사업 구상해둔 메모도 드로잉
식당·미술관 모두 오감과 연결

당신은 꿈이 있습니까?
그리고 또 그리고… 배운적 없어
작업실에서 하루 절반 이상 보내
창작열 사라지면 작가생명도 끝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눈이 확 뜨이고 입이 쩍 벌어진다. 대학 강의실 크기만 한 두 개의 큰 공간과 그 반 넓이의 방 하나, 그리고 회의실로 짐작되는 뒤편과 관장실, 건물의 한 개 층 모두를 완성 단계에 이른 작품들과 소품들이 가득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괴물’이나 ‘거인’의 작업 공간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무렵 그 작품들 사이로 그가 나타났다. 온통 물감투성이인 작업복 차림의 그는 칠순을 넘긴 나이답지 않게 야무진 어깨와 당당한 걸음으로 다가오면서 안경 너머로 아이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씨 킴과 그의 작품은 따로 분리될 수 없다. 그는 알까. 자신이 이미 작품이 되고 있다는 것을. 서상배 선임기자

(주)아라리오의 김창일(72) 회장이다. 아니 ‘씨 킴(CI KIM)’이란 예명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국내 화단의 중견 작가다. 

 

그는 동시에 두어 개 작품을 그리거나 만들어 낸다. 영감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마구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란다. 날마다 예닐곱 시간을 작업실에서 보낸다. 작가로 활동을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그가 생명을 부여한 작품은 1만 점이 넘는다. 1년에 600여 편씩 그리거나 만들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작품리스트는 실로 방대하다. 소재와 작업방식, 외형 또한 다양하다. 넘치는 아이디어를 곧장 실행에 옮기는 그의 에너지 때문일 것이다. 전시회를 열 때마다 회화, 조각, 드로잉, 레디메이드 오브제 등 다양한 장르의 신작들을 선보이는 이유다.  

 

그는 천안종합버스터미널과 신세계백화점 천안아산점, CGV 천안터미널점, 레스토랑과 카페 등 각종 식음료점을 운영하는 기업인이다. 서울과 천안, 제주, 중국 상하이에 여러 갤러리와 미술관을 둔 갤러리스트이자, 국내외 유명 작가 작품 4000여 점을 보유한 ‘세계 100대 컬렉터’이기도 하다. 제주 탑동의 버려진 폐건물을 개조해 미술관 등 문화타운을 형성한 뒤로는 ‘동네 재생의 마법사’라는 별칭까지 따라붙었다. 

 

이쯤 되면 편안하게 여생을 즐길 법도 한데, 그는 왜 굳이 고행처럼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빚어내며 설치미술을 하는 걸까.

 

그가 가진 특유의 ‘꿈과 성공에 대한 긍정적 확신’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사업가로 살아오는 동안 지속해온 신념이기도 하다. 그는 성공한 사업가라는 사실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여전히 ‘작가다운 작가’를 꿈꾼다. 스스로 하나씩 배우고 깨우쳐 가면서 그 과정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다진다. 그의 그림 속 나비가 되려는 애벌레는 씨 킴 자신이다. 그가 작품 속에 자주 사용하는 ‘당신은 꿈이 있습니까?’는 타인에 대한 메시지이자 ‘나는 꿈이 있습니다’를 되새기기 위한 자기 암시다.  

 

씨 킴은 “배낭에 탐욕을 넣으면 높은 산을 오를 수 없다”며 “예술가는 사후에야 제대로 평가 받기 때문에 항상 순수함으로 임해야 한다”고 말한다. 

“1999년 어느 날 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어요. 그날 이후 3년 동안 ‘원’을 그렸습니다.”

 

미술은 그에게 운명처럼 찾아왔다. 원처럼 어려운 것은 없다. 서예에서도 원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긴다. 스스로 기본기를 단단히 익혀나가는 방법이다. 미술에 순응하기 위해 원에서 시작했다. 

 

“혼자서 실험하고 깨닫기를 반복했죠. 누구한테 배운 적이 없습니다.”  

 

잠자리에 들어도 그리고 싶은 주제가 끊임없이 떠올랐는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란다.

 

자신 앞으로 배달되는 우편물, 잡지, 카탈로그 등을 보는 순간에도 그리거나 만들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씨 킴의 특징은 버려진 오브제의 활용이다. 그는 사용한 일상용품을 가져다 작품에 다시 쓴다. 어린 시절 무리와 떨어져 혼자 시간을 보낸 그는 쓰임이 다해 본래의 자리에서 소외되는 물건들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그들에게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는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   

 

“왜 요리할 때 벽을 보고 할까, 세면대 높이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참새와 십자매는 왜 서로 어울려 놀지 않을까, 어릴 때 늘 엉뚱한 생각을 했어요. 학교에선 열등생 취급을 받았고, 젊은 시절 꽤 방황했습니다. 지금도 종종 엉뚱한 생각을 ….” 

 

씨 킴은 버려진 마네킹을 주워 와 시멘트를 바르고 대화를 나누면서 새생명을 부여한다. 

인생의 전환점은 1979년. 경희대 경영학과를 나와 월 300만원을 내고 천안역 앞 적자 버스터미널을 관리하면서부터다. 그는 임대한 매점을 모두 직영 체제로 바꿔 1년 만에 억대 수익을 거뒀다. 마침내 1989년 250억원을 투자해 천안버스터미널 자리를 잡고 백화점, 영화관, 식음료점 등을 두루 갖춘 복합시설을 조성했다. 복합시설이라는 개념이 아직 국내에 들어오기 전 거머쥔 대성공이었다.

 

“투자할 땐 다들 무모하다고 했지만, 사실 예술 덕분에 이 같은 발상을 떠올릴 수 있었어요. 그 무렵 미술품 수집에 빠져들었는데, 서울 인사동에서 남농 허건, 청전 이상범 등의 작품을 사들였죠. 틈만 나면 미술품을 보러 해외로 나다녔고, 이 과정에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보는 눈이 트인 겁니다. 복합시설의 가능성을 본 것도 이때입니다.”

 

그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다 통하는 겁니다. 사업을 위해 메모해 둔 것도 드로잉이 되니깐요. 백화점, 레스토랑, 영화관 모두 오감과 연결됩니다.”

 

사업에서 번 돈 대부분을 미술 관련 일에 쏟아부은 계기다.

 

“제가 느끼는 아름다움을 시각(미술)뿐만 아니라 청각(영화나 음악) 미각(음식) 후각(커피향 등) 촉각(조각공원) 등 오감으로 전하고 싶었어요. 아라리오갤러리 건물을 매입한 것도, 바로 옆 건물에 고급 레스토랑과 커피숍을 입점시킨 것도, 제가 직접 작품 활동을 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입니다.”

 

사업을 통해 이익을 내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원하는 꿈을 위해서다. 장거리 여정을 위한 기름을 채우려는 것이다. 공짜 기름은 없잖은가. 

 

“저는 주식 투자를 해 본 적이 없어요. 노동으로 번 돈만이 자기 것이라고 믿습니다. 요령으로 번 돈은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에요. 나이가 들어가니 이 사회에서 배운 것을 돌려주고,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항상 되뇝니다. 지금보다 처지면 안 된다고. 돈보다는 그리거나 만드는 행동 자체가 행복을 느끼게 해줍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목이죠. 내가 가진 생각, 내가 쓰고 싶은 색깔…. 이것들이 다 내 것이구나, 깨달은 뒤로부터 비로소 비난과 견제를 신경 쓰지 않게 되었어요.”

 

제주도 해안에 떠밀려온 폐냉장고를 가져와 작품 소재로 활용한다.

그의 등장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있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데다, 성공한 자의 인정욕구에 따른 변신쯤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상처받았지만,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고 계보에도 속하지 않으며 홀로 성장해 거목이 되었다. 이제는 ‘씨 킴이 곧 장르다’라는 격찬까지 듣는다. 

 

“작가는 꾸준히 신작을 내놓아야 해요. 히트작 하나 나오면 왜 그것만 오래 물고 가는지, 비슷한 작품으로 우려먹는 습관을 버려야 해요. 톡톡 튀는 신작, 신작이 좋아야 구작에 대한 평가도 오르기 마련이죠. 구작을 자꾸 찍어내면 가치만 떨어질 뿐입니다. 창작열이 사라지면 작가의 생명은 끝나는 거예요. 예술가는 고통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술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것이니깐.”  

 

씨 킴은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주류들이 곱게 보지 않아서’가 원인이지만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고, 팔았을 경우 후유증이 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털어놓는다. 그의 비매원칙은 해외시장의 러브콜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때론 엄청난 가격을 제시하지만 모두 거절해왔다.

 

작품을 구상할 때가 가장 흥이 난다. 여행을 떠나려고 비행기 타러 갈 때 신나는 것처럼.

 

씨 킴이 자신의 조각품 ‘Life is Short, Art is Long’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예술은 품격을 부여합니다. 화장품 디자인이 대표적 예죠. 예술은 가장 높은 곳에 있어요. 내 생활의 중심은 예술입니다. 지향의 끝도 예술입니다. 모든 아날로그(사람)의 정점은 예술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악력기를 손에 쥐고 60회씩 주물러 댄다. 선을 그을 때 쭉 가야 하는데 떨리면 안 되므로. 

 

“명상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은 순수하고 단순해지기 위해섭니다. 어린이처럼. 그래야 내가 추구하는 세계에 도달할 수 있거든요.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한 계단씩 올라가면 마침내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는 제주도에 ‘숲속 미술관’을 지을 생각도 꺼내 보였다. 젊은 작가들에게 작업공간을 제공하고, 해외 지점도 더 키워서 한국 미술을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단순해요. 규칙적으로 살고, 일할 때 열심히 하면 됩니다. 배낭에 탐욕을 넣으면 높은 산을 오를 수 없어요.”

 

○김창일(씨 킴)은 누구?

△1951년 부산 태생 △경희대 경영학과 △단국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천안시외버스터미널 대표 △(주)아라리오산업 창립 △천안종합터미널 설립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 서울 제주 뉴욕 베이징 상하이 개관 △(주)아라리오 회장 △아트리뷰 선정 ‘세계예술계 영향력 인사 100인 △아트넷 선정 세계 톱100 컬렉터


천안=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