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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戰 속 역대급 호황 맞은 美 석유 업계… 생산 한계 ‘딜레마’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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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26 10:00:00 수정 : 2023-03-29 1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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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에너지시장서 위상 강화 미지수

유럽, 전쟁 발발 후 러産 에너지 제한
獨·佛·伊 등 美 원유수입량 크게 늘어

2023년 원유 생산량 역대 최고 예상 불구
셰일 석유 유정 점차 고갈… 채산성 악화
기업들, 향후 수요감소 우려 투자 꺼려

美, 이대론 석유 순수출국 위상 흔들
안정된 수입 루트 다시 찾아야 할 판
바이든, 결국 알래스카 유전 탐사 허가
저탄소 정책과 엇박자… 정치적 타격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미국 주도권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셰일 석유가 국제 원유시장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한 ‘셰일혁명’ 속 미국이 이미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으로 올라선 상황에서 핵심 경쟁자 중 하나인 러시아가 전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석유 수요의 상당 부분이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향하고, 자연스럽게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미국의 위상은 더 강화될 것이라 예상됐다.

1년 뒤 예상은 절반만 맞았다. 실제로 전쟁 여파 속 미국 석유 업계는 역대급 호황이다. 하지만, 이 호황이 에너지 시장에서 미국의 위상 강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생산량이 늘어난 수요를 맞추는 데에 한계에 이른 탓이다.

사진=AP연합뉴스

◆역대급 호황, 하지만 한계 이른 생산능력

미국은 전쟁 여파 속 유럽 국가들이 원유와 천연가스 등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제한하자 이 반대급부를 마음껏 누리는 중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시장조사업체 케이플러를 인용해 지난해 2월부터 1년간 미국에서 유럽으로 수출된 원유량이 전년 동기 대비 38%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의 미국 원유 수입량이 크게 늘었고 스페인의 경우 수입 규모가 88%나 증가했다.

유럽 국가는 미국산 천연가스 수입량도 2배 늘렸다. 인접 지역인 러시아·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여파 속 전장에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미국이 안정된 석유 수입 루트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런 수요 증가 속 미국은 석유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덕분에 2023년 역대 최고 원유 생산량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지난 1월 예상한 올해 미국 일평균 원유 생산량은 1234만배럴에 달했다. 지난해 일평균 1188만배럴보다 4% 증가한 수치다.

미국 원유 생산량은 2019년 일평균 1232만배럴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2020년 초 전 세계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2020년과 2021년은 각각 일평균 1132만배럴과 1125만배럴로 생산량이 줄었다. 그러다, 지난해 다시 생산 증가세로 분위기가 돌아섰고, 올해 마침내 역대 최대 생산량을 또 한 번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작 초대형 이익을 거두고 있는 미국 석유업계도, 이를 지켜보는 미국 정부도 호황에 어울리는 희망찬 분위기를 찾을 수 없다. 전쟁이 장기화해 당분간 계속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음에도 오히려 다급한 분위기다. 미국의 석유 생산능력이 점점 한계에 이르렀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 탓이다.

특히, 2010년대 미국 석유 생산을 주도했던 셰일 석유의 생산 동향이 심상치 않다. WSJ는 지난 8일 미국에서 생산량이 많고 경제성이 높은 고품질의 셰일 석유 유정이 점차 고갈되면서 셰일 석유 생산량 증가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기업데이터 분석업체 플로 파트너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최대 셰일 유전지대인 텍사스·뉴멕시코주 일대 퍼미언 분지의 델라웨어 지역에서 상위 10% 고품질 유정의 원유 생산량은 2017년 대비 평균 15%나 줄었다.

또 다른 분석업체 노비 랩스의 분석에 따르면 평균적인 셰일 유정의 지난해 생산량은 전년 대비 6% 감소했다. 코로나19 확산기가 지나며 미국 전체 석유 생산량은 이전 수준을 회복했지만 셰일 부문 생산량 증가 속도는 전성기였던 2017∼2019년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역대급 호황에도 셰일 석유 생산이 지지부진한 것은 높은 생산비용과 노동력 부족 탓이다. 셰일 석유는 수압파쇄 공법으로 엄청난 양의 물과 모래를 소비해 생산비용이 일반 원유의 수배에 이르는데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급등하는 물가 속 생산비용도 함께 올랐다. 유정을 시추하는 데 드는 비용도 갈수록 비싸졌다.

에너지 컨설팅기업 라이스태드 에너지에 따르면 2019년 730만달러였던 유정당 평균 시추 가격은 올해 900만달러(약 111억원)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라이스태드 에너지는 지난해 처음으로 신규 유정에서 생산되는 셰일 석유가 줄어들기 시작했다고도 밝혔다. 셰일 유정은 일반 유정과 달리 1~2년 시추 후에는 생산량이 크게 줄어 끊임없이 새로운 유정을 찾아 개발해야만 한다. 그러나, 신규 유정의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셰일 석유의 채산성도 악화하는 중이다.

◆투자 꺼리는 석유 기업, 속 타는 미 정부

더 큰 문제는 석유 기업들이 생산량 증대를 위한 투자조차 꺼리고 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4일 미국의 26개 석유 기업들의 지난해 배당 총액이 1282억달러(166조원)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호황 속 대규모 이익을 거둔 덕분이긴 하지만 증가한 액수가 워낙 크다. 2018~2021년 4년 동안 이들 기업의 배당 총액은 400억~500억달러대를 유지했지만 이번에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이 배당 액수는 2012년 이래 10여년 만에 최고액이기도 하다. 시설 투자액도 2021년 577억달러에서 2022년 894억달러로 크게 늘었지만 배당액 증가 폭에는 미치지 못한다. 미국 석유업계가 전쟁 특수로 인한 이익의 상당 부분을 주주들을 위한 ‘돈 잔치’에 사용했다는 뜻이다.

석유 기업들이 이익 재투자에 나서지 않는 것은 화석연료 수요가 2030년쯤 정점에 오른 뒤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업계에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미 생산비용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석유 기업들이 생산 증대를 위한 재투자에 나설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

이는 미국 정부로서는 달가운 상황이 아니다.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미국은 10여년간의 생산량 폭발로 에너지 정책에서 한결 자유로워졌다. 셰일혁명 이전인 2008년까지만 해도 미국은 석유 수출량보다 수입량이 하루 평균 1200만배럴이나 많은 국가였고, 이런 수입 물량을 해소하기 위해 전 세계를 끊임없이 헤매고 다녔다. 심지어 중동 등 지역정치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했지만, 2019년 무려 70여년 만에 석유 순수출국으로 올라서며 이 굴레에서 해방됐다.

이런 영향 속 지정학적으로 불안한 중동에 대한 개입을 점점 줄여나가고 새로운 경쟁자인 중국 견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됐다. 만약 석유 생산에 대한 우려가 이대로 현실이 될 경우 미국은 다시 안정된 석유 수입 루트를 확보하기 위한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업계를 향한 압박에 나선 것도 이런 배경이 있어서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창 고유가가 기승이던 지난해 10월 석유 기업들을 향해 “전쟁 중에 올린 수익을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금에 사용해선 안 된다”면서 생산 확대를 위한 재투자를 요구했다. 심지어 이런 석유 기업들을 압박하기 위해 ‘횡재세’ 도입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석유 기업들은 이런 정부의 요구에도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강화하는 등 방침을 바꾸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 다시 글로벌 석유시장 주도권을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가 잡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라이언 랜스 코노코필립스 최고경영자(CEO)는 WSJ와 인터뷰에서 “세상이 1970~1980년대로 돌아가고 있다”며 “오펙이 조만간 세계에 미국보다 더 많은 원유를 공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결국, 바이든 행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 주권을 지키고 자국 유가 관리를 위해 알래스카 유전탐사를 허가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13일 유전 탐사기업 코노코필립스사의 ‘윌로 프로젝트’에 대해 일부 사업을 축소해서 계획을 인가한 것. 윌로 프로젝트는 알래스카 국립석유보호구역(NPR) 내에 유전을 개발해 약 80억달러(약 10조5000억원) 규모의 석유·가스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이 사업이 진행되면 30년간 약 6억배럴의 석유를 추가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코노코필립스사는 애초 이 지역에서 최대 5개의 원유 시추 부지 개발을 추진했으나 미 정부는 환경파괴 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이 중 3곳에 대해서만 승인을 내렸다.

그래도 이 결정은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가 꾸준히 주장해온 저탄소 국가로의 방향성과 배치되기에 정치적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AP통신은 윌로 프로젝트가 승인되기 전인 이달 1일 “바이든 대통령은 알래스카 의원들과 환경 단체,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2030년까지 지구 온난화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려는 바이든의 목표에 어긋난다고 말하는 의회의 많은 민주당 의원들과 대립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지만 결국 승인은 이루어지고 말았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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