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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인박사 흔적 따라가는 영암 구림마을 여행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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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26 15:17:49 수정 : 2023-03-26 15: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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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2200년 역사 영암 구림마을/매화 수줍게 핀 고택 담장 길 따라 걸으며 고즈넉한 봄 여행/왕인 박사 기리는 ‘영암왕인문화축제’ 30일∼4월 2일 구림마을 일대서 열려

구림마을 매화

고색창연한 고택의 돌담길. 불어오는 봄바람이 실어오는 짙은 매화향기. 울창한 솔숲 사이로 앉은 아름다운 누각과 정자들. 그리고 마을을 휘감아 도는 군서천 맑은 물을 한가로이 떠다니는 오리 떼까지. 월출산을 넉넉하게 품은 구림전통마을에 들어서자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른다.

구림마을 산책로

◆시간이 멈춘 구림전통마을 천천히 걸어볼까

 

화려한 곳도 특별한 곳도 없다. 걷다 보면 오로지 400여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는 고택뿐이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점프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차는 필요 없다. 타박타박 천천히 걸어도 한두 시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으니. 전남 영암군 군서면 구림로 구림전통마을은 2200년의 역사를 지닌 곳으로 전남 나주시 금안동, 전북 정읍시 무성리와 함께 호남 3대 명촌으로 꼽힌다.

서호정

마을 중심 서호정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마을 북쪽은 북송정, 동쪽은 동계, 남쪽 산 아래 지역은 고산 혹은 남송, 서쪽은 서호정이라 부른다. 낭주 최씨, 함양 박씨, 연주 현씨, 해주 최씨, 창녕 조씨, 선산 임씨 등이 집성촌을 이룬 마을길은 돌담이 아주 낮아 마당과 건물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담을 높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마을 사람들이 허물없이 지내는 것 같다. 실제 1565년(조선 명종 20년)부터 구림리 인근 20리 이내에 거주하는 마을 12곳이 자치규약인 대동계를 창설했는데 ‘영암 구림 대동계’ 문서가 지금도 남아 전해진다. 계원의 명단, 지켜야 할 규칙을 정리한 동헌, 계원들이 합의한 사항을 기록한 완의와 마을 교량보수, 도로 정비 등 마을 공동체 사업 내용까지 자세히 적혀 조선 후기 향촌의 조직과 운영을 살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육우당 한석봉 글씨

대동계 문서 건물 옆 육우당(六友堂)으로 들어서니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현판의 글씨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양사언, 김정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필로 꼽히는 한석봉의 글씨. 유명한 한석봉과 어머니의 ‘글쓰기와 떡 썰기 시합’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 바로 구림마을이다. 개성에서 태어난 한석봉은 스승을 따라 덕진면 영보리로 거처를 옮겼고 어머니는 학산면 독천시장에서 떡장사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군서천
회사정

오리 떼들이 헤엄치는 군서천에 놓인 남송정교를 건너면 울창한 솔숲 사이에 앉은 회사정을 만난다. 벽, 방, 난간 없이 기둥으로만 구성된 독특한 건물은 마을의 대동계 장소로 사용된 곳. 6·25전쟁 때 소실됐다 1985년에 복원됐다. 마을에 귀한 손님이 방문하거나 행사 때 이용됐고,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국사암

회사정을 지나 골목길로 다시 접어들면 야트막한 언덕 같은 바위를 만나는데 국사암(國師巖)이다. 승려 도선국사의 재미있는 탄생 설화가 전해는 곳이다. 신라 말 어느 겨울 낭주 최씨 집안 처녀가 시냇가에서 빨래하던 중 냇물에 떠내려오는 싱싱한 오이를 건져 먹었다. 그런데 그 후 처녀의 배가 점점 불러오더니 가을에 아들을 낳았고 이를 괴이하게 여긴 부모는 갓난아이를 숲 속 바위 아래 버렸다. 며칠이 지나 처녀가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가보니 비둘기 떼에 둘러싸인 아이가 건강하게 살아 있었고 아이를 데려와 문수사에 맡겼다. 그 아이가 훗날 풍수사상으로 유명해지는 도선국사다. 이후 바위는 국사암, 숲은 비둘기 구(鳩), 수풀 림(林)을 써서 ‘구림’으로 부르게 됐고 마을 이름으로 굳어졌다.

왕인박사유적지 영월관과 월출산
영월관 목련과 월출산 문필봉

◆4년 만에 열리는 영암왕인문화축제 가볼까

 

구림전통마을은 영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왕인박사의 유적으로 가득한 곳이다. 왕인박사는 서기 405년 일본 천황의 초청으로 구림전통마을의 상대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아스카문화의 초석을 다졌다. 일본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에 따르면 그는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들고 가 일본 태자의 스승이 돼 백제문화의 진수를 전파했다고 전해진다.

왕인박사상

마을 동쪽 문필봉 기슭에 왕인박사의 발자취를 복원한 왕인박사유적지가 조성돼 있는데 일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왕인 묘, 성천, 왕인 석상 등으로 꾸며졌다. 왕인박사기념관인 영월관 주변엔 청초한 목련이 활짝 피어 여행자를 반긴다. 영월관 뒤로는 문필봉을 비롯한 월출산의 산줄기가 이어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왕인박사상을 지나 유적지 정문인 백제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일본에서 헌정한 왕인정화비가 세워져 있고 맞은편에 전시관이 있다.

왕인박사유적지

문 하나를 더 들어가면 왕인 사당이다. 왕인박사가 마셨다고 전해지는 성천이 있고 탄생지 성기동 옆에는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왕인묘에는 영정과 위패가 봉안돼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문산재와 양사재는 왕인이 공부하고 후진을 양성한 곳으로, 월출산 서쪽 산 중턱에 터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했다. 책굴은 왕인이 학문을 수련할 때 쓰던 석굴. 성기동 서쪽에 있는 돌정고개는 박사가 일본으로 떠날 때 동료, 문하생들과의 작별한 곳이다. 해 질 무렵 유적지에서 왕인석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오르면 서해안 최고의 노을도 만난다.

구림마을 산책로 260년 수령 팽나무 두 그루

이런 왕인박사를 기리는 2023 영암왕인문화축제가 30일부터 4월 2일까지 군서면 왕인박사유적지와 상대포 역사공원, 구림마을 일원에서 4년 만에 다시 열린다. 올해 축제는 ‘K컬처의 시작, 왕인의 빛’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대표 행사는 ‘K레전드, 왕인의 귀환’ 퍼레이드. 1600년 전 일본으로 건너가는 왕인박사를 재현하던 ‘왕인박사 일본 가오!’를 왕인이 현대로 귀환해 영암의 미래를 선언하는 새로운 콘셉트로 한층 업그레이드했다. 왕인박사가 일본에 전파한 천자문·문자 콘텐츠 관련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된다.

구림마을 담벼락
구림마을 산책로

왕인박사유적지와 구림마을 일원에는 왕인의 소통·상생 정신을 ‘빛’으로 구현한 이색적인 포토존이 조성된다. 또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하는 구림마을 달빛야행, 플로깅 역사투어 왕인산보, 기(氣)찬 영암 관광투어 등 참여형 프로그램도 여행자들을 기다린다. 어린이 직업체험 테마파크 키자니아 in 영암, 모두의 놀이터! 왕인 천자문 월드, 북카페 왕인의 숲 등 아이들이 좋아할 프로그램과 가족단위 관광객을 위한 영암 문화 체험, 봄꽃 사진관 등도 즐길 수 있다. 이와 함께 왕인박사 춘향제, 국립공원 월출산 생태탐방원 영암 유치기원 음악회 등 문화공연행사도 펼쳐져 벚꽃과 함께 신나는 봄을 만끽할 수 있다.


영암=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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