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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청년들을 위한 한 끼… 죽을 때까지 하라면 기꺼이 따를 것” [나의 삶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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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5-10 07:00:00 수정 : 2023-05-10 04: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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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밥상 문간’ 사장 이문수 신부

3000원짜리 김치찌개의 힘
스페인에서 인연 맺은 故 카를로스 수사
40년간 주방 지키며 ‘순명’… 닮고 싶어져
2015년 청년의 아사 뉴스 접하고 고민
2년 뒤 단품 메뉴로 정릉에 식당 열어

청년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
5년여간 25만명 다녀가… 절반이 젊은층
“저도 베푸는 삶 살겠다” 글 남기고 가
힘들다 해도 포기 말고 용기 가졌으면
여건된다면 문간 100곳 이상 확장할 것

지난 4일 찾아간 서울 성북구 정릉동 정릉시장 초입의 식당 ‘청년밥상 문간’. 키가 낮고 오래된 2층 건물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나온다. 천주교 글라렛선교수도회가 운영하는 식당은 청년을 위한 3000원짜리 김치찌개로 유명하다. 출입문 옆 게시판에는 손님들의 방문 소감이 적힌 메모지가 가득했다. ‘이것은 밥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이었습니다’, ‘감동받고 갑니다. 저도 베푸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따뜻한 한 끼, 무언의 묵직한 위안 얻고 갑니다‘, ‘청년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주셔서 감사해요’….

청년 등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손님들에게 이곳의 한 끼는 특별한 듯하다. 단순히 저렴한 김치찌개가 아니라 요즘 맛보기도, 값을 따지기도 힘든 인정과 사랑, 감동이 식탁에 차려진 기분이 들 수도 있다. 청년밥상 문간(이하 문간) 사장인 글라렛선교수도회 소속 이문수(49) 가브리엘 신부는 손님 소감으로 채워진 게시판을 ‘에너지 존’이라고 불렀다. 식당 운영이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마주한 응원글에 위안과 힘을 얻는다고 하면서다. 그는 2017년 12월 문간을 여는 데 산파 역할을 하고 운영까지 도맡았다.

이문수 신부가 지난 4일 ’청년밥상 문간’ 식당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문스토랑(문간+레스토랑)’ 팻말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지금은 주야간 홀 담당 아르바이트생이 한 명씩 있어 이 신부는 식당보다 주로 옆 북카페에서 업무를 본다. 남제현 선임기자

물리학자나 로봇을 만드는 공학자를 꿈꾸다 만화가 지망생이 되고자 했던 청년은 어쩌다 하느님의 종이자 김치찌개집 사장이 됐을까.

이 신부는 이를 숙명처럼 여겼다. 수도회가 ‘죽을 때까지 당신이 문간을 맡아 운영해라’고 하면 기꺼이 따르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인생 롤모델’도 스페인 히혼에 위치한 글라렛선교수도회 공동체에서 주방을 담당한 고(故) 카를로스 수사란다. 이 신부는 10여년 전 스페인 유학시절 고인과 인연을 맺었다. 카를로스 수사는 스물세 살에 주방 소임을 맡아 40여년 동안 매일 수도회 내 10여명의 삼시 세끼를 책임지다 하늘로 갔다. “그 작은 공동체의 주방에서 40년 넘게 같은 노동을 반복하면서도 (항상) 아이처럼 웃으셨어요. 카를로스 수사는 위에서 시켜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닮기 위해 순명(順命)한 것입니다. 그는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예수님을 닮은 한 명이었어요.”

카를로스 수사가 차려준 식사들에 비해 김치찌개 한 그릇이 빈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그분을 닮게 되길 소망한다는 이 신부에게 문간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성직자의 길을 택한 이유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고2 때 진로를 두고 아버지와 갈등이 심했다. 끝내 의지대로 이과를 선택했지만 아버지는 계속 반대했다. 맏아들이 판검사가 돼 출세하고 권력자가 되길 바라시며 법대를 가라고 고집한 것이다. 그러면서 공부를 소홀히 한 탓도 있지만 결국 어렵게 재수, 삼수까지 하다 그냥 점수대에 맞춰 1995년 서울의 한 대학에 들어갔다. 대신 만화가가 되려고 만화 동아리에도 가입했다. 그러다 이듬해 겨울방학 때 피정(일상에서 벗어나 묵상이나 기도로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에서 강렬한 영적 체험을 했다. 그 의미를 두고 오랫동안 기도하다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확신했다. 병역을 마친 후 1999년 수도원에 들어가 신학대학을 다니며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부모님이 순순히 허락했나.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가족들에게 신앙을 전한) 어머니는 찬성하고 아버지는 반대할 줄 알았는데 반대였다. 아버지는 내 선택을 존중한 반면 어머니는 그 후 2년간 나와 얘기 한마디 안 할 만큼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나중에 어머니 마음이 누그러진 뒤 이유를 물으니 ‘사제의 삶은 고난의 삶인데 내 아들이 그 길로 들어서는 게 싫었다’고 하더라. 아들이 신부가 된 모습을 봤으면 좋아하셨을 텐데 안타깝게도 신학대 졸업 직전에 돌아가셨다.”

―문간을 열게 된 계기는.

“2015년 여름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청년이 굶주리다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가 나왔다. 당시 만난 한 수녀님이 ‘독거 노인과 노숙인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듯 형편이 힘든 청년을 위한 식당을 글라렛선교수도회가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 얘길 수도회에 전했더니 ‘좋은 생각’이라면서 나에게 맡겼다. 그런데 돈도 아는 것도 없으니 막막했다. 막연하게 ‘고시원이 몰린 노량진에 차리면 되나’ 하면서 창업 설명회와 ‘장사 잘하는 법’ 등의 강의를 듣고 다녔다.”

이문수 신부가 지난 4일 사방이 확 트여 ‘청년밥상 문간’의 매력 포인트인 옥상에 올라 현재 위치에 식당을 정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정릉에 자리 잡게 된 과정은.

“되는 것도 없이 시간만 한참 흘렀다. (우여곡절을 겪고 여러 조력자와 논의하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편하게 찾아가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결론냈다. 그러던 차에 2017년 5월 한 수녀원이 운영하던 이 근처 카페에 들렀다가 비어 있는 지금 건물 2층을 발견했다. 부동산에 부탁해 둘러보니 사방이 확 트인 옥상까지 쓸 수 있어 마음에 꼭 들었다. 가까운 북한산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앞에는 정릉천이 흐르고. 사실 내가 청년들에게 뭘 해줄 능력이나 가진 게 없는 상황에서 ‘이 옥상이라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청년들이 답답할 때 옥상에 올라와 차 한 잔 마시든, 음악을 듣든, 가만있든 좋아할 것 같아서. 장소 자체가 주는 힘이랄까.”

이 신부는 이후 보증금과 월세, 인테리어 등 초기 창업비용 4000만원을 마련하고 주방장 구하기에 애를 먹은 뒤 그해 12월 문간을 열었다. 자금 사정상 2층 절반만 식당으로 하고, 나머지 공간은 청년들이 쉴 수 있는 북카페로 만들었다. 북카페에선 원하는 청년에게 고민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메뉴와 가격을 이렇게 정한 까닭은.

“내심 집밥 같은 가정식 백반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본이 없어 각각 주방(요리, 설거지 등)과 홀(서빙, 청소 등)을 맡는 주방장과 나 단둘이 운영해야 하는 처지라 단품 메뉴로 김치찌개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무료 제공도 생각했지만 ‘가난한 청년을 위한 무료 식당’으로 가면 청년들이 오히려 (자존심을 다쳐) 안 올 것 같았다. 경기도 부천의 한 목사님이 청소년을 위한 식당을 하면서 (식사비로) 3000원을 받는다고 들어 그 정도면 청년들도 부담이 없을 듯했다. 밥은 무한 리필이고, 라면·햄 등 사리 추가 시 1000원, 고기 추가 시 2000원을 더 받는다.”

―초창기 경영 실적은.

“식당이 지속가능하려면 후원금에 의존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계산해보니 임대료와 식재료비, 인건비 등 운영비를 맞추려면 하루에 30만원은 벌어야 했다. 손님이 최소 1일 100명은 와야 한다는 얘긴데 첫날부터 시원찮았다. 이웃 식당들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간판을 작게 달고 홍보도 안 한 데다 추운 겨울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주말 이틀 합쳐 고작 20만원 정도 벌었다. 그런데 월요일 낮부터 인근 대학생이 우르르 왔다. 무슨 영문인지 알아보니 전날 왔던 대학생 손님이 ‘맛있는 김치찌개를 3000원에 파는 곳이 있다’고 온라인 게시판에 올렸더라. 자꾸 입소문이 퍼져 하루에 170명 안팎이 와 50만원가량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점장(주방장)님과 나는 쉴 틈이 없어 파김치가 됐지만.(웃음)”

문간은 방학 기간에 파리 날리는 날도 많았지만 일부 자원봉사자와 후원자의 도움에다 시간이 갈수록 매출도 적자를 면하게 되면서 2019년 들어 주방 보조와 홀 담당 아르바이트도 한 명씩 두게 됐다. 2020년 4월에는 ‘청년문간 사회적 협동조합’이 설립돼 이 신부 개인 사업자 명의가 아니라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이곳의 지난 5년여간 누적 손님은 약 25만명인데 절반이 청년이라고 한다.

―이화여대점(서대문구 대현동), 낙성대점(관악구 봉천동), 제주점(제주시 이도이동)까지 늘렸던데.

“우리(수도회)가 요식업을 꿈꾼 것도 아니고 준비도 안 된 상태라 식당을 늘릴 계획이 전혀 없었다. 많은 분이 호응해주고 이런 식당이 많아져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러다 2021년 3월 내부 워크숍을 열어 ‘여건이 된다면’이란 단서를 달아 늘리기로 결정했다. 청년들은 아무리 밥값이 싸다고 멀리 떨어진 곳까지 찾아가지 않으니 소박한 식당이라도 여러 군데 두는 게 더 많은 청년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판단에 조건부 결정을 한 거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게 분기점이 됐다고.

“그렇다. 워크숍에서 ‘여건이 되면 늘리자’고 했는데 얼마 후 출연 섭외 제안이 와 소름 돋았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 다음날인 4월 22일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시청자들이 각지에서 보낸 쌀과 식료품 등 기부 물품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손님은 대기번호가 꽉 찰 만큼 밀어닥쳤다. 놀랍게도 유재석씨가 5000만원을 기부하는 등 협동조합 후원 계좌에도 후원금이 줄을 이었다.”
 

―고물가 등 가격 인상 압박감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지금 김치찌개 한 그릇 원가만 6000원이 넘을 정도다. 다행히 후원자들 덕분에 적자 상태는 아니다. 현재 2000명가량이 정기(매달) 후원하는데 적게는 1000원에서 많게는 200만원까지 한다. 비정기적 후원자와 일부러 찾아오셔서 기부금 조로 밥값을 후하게 내고 가는 분들, 기업 후원도 감사하다. (기억나는 후원 사례 중 하나로) 초창기 힘든 시절에 지인이 데리고 온 열 살배기 아들이 꽉 찬 돼지 저금통을 주고 갔다. ‘내가 더 잘해야 된다’고 각성하게 하면서 힘을 북돋워 준 순간이다.”

―문간 외에 2019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청년희망로드’ 등 다양한 청년 지원 프로그램도 하던데.

“내 목적은 청년들을 만나고 싶은 건데 사실 식당에선 만나기 어려워 희망로드나 ‘세대공감 잇다’, ‘2030 청년영화제’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자기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사는 것 같은 청년들에게 지금껏 살아온 것과 다른 삶의 자리를 잠깐이라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시야가 넓어지고, 자기 나름의 행복한 길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도록.”

―이 시대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누구든 삶에 고통이 없을 수 없고, 고통이 있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다. 사라지지 않는 고통을 없애려 엄청난 에너지를 쏟기보다 행복을 위해 에너지를 쓰는 게 낫다. (높은 취업 문턱 등) 청년들이 사는 데 힘든 세상이지만 포기하지 말고 희망과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이들 경험이 성직에도 영향을 주는가. 또 개인적 바람이라면.

“세상 안에 들어와 다양한 사람의 삶과 의견을 접하면서 이 시대의 성직자와 종교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등 굉장한 자극이 된다. 하느님이 원하고 여건이 된다면 문간을 전국에 100곳 이상 확장하고, 청년들을 계속 만나면서 함께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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