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프롬스 데뷔 앞두고 롯데콘서트홀 공연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주가를 높이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34)는 소통과 공감을 중요한 삶의 가치로 삼는다. 그에게 바이올린은 그런 가치를 전하는 아주 귀한 도구다. 추구하는 음악에 대해서도 딱히 정의할 수 없지만 할아버지가 지어준 순우리말 이름처럼 “봄의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참 기쁠 것 같다”고 했다. “봄의 소리는 가장 고통스러운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피어나는 당당하면서도 힘찬, 희망에 가득 찬 소리”라고 하면서다.
김봄소리는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소프라노 박혜상에 이어 한국인으로서는 세 번째로 2021년 세계적 클래식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DG)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콩쿠르 사냥꾼’에서 스타 연주자로 우뚝 선 것이다. 앞서 그는 제62회(2013년) ARD(독일 공영방송)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부문 1위 없는 2위’를 비롯해 차이콥스키·퀸 엘리자베스·장 시벨리우스·하노버 요아힘·몬트리올·비에냐프스키 콩쿠르 등 세계 주요 음악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콩쿠르 사냥꾼’이란 별명이 생겼다.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그는 4일 세계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이 별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한때는 그 별명이 쑥스러웠다”면서도 “이젠 세계 무대에 서는 날을 꿈꾸며 간절한 열정으로 고군분투하던 시절과 초심을 떠올리게 하는 별명”이라고 말했다. 이어 후배 연주자들에게 콩쿠르 출천을 권하고 싶은지에 대해선 “콩쿠르에는 많은 장단점이 있지만 단시간 내에 많은 레퍼토리를 소화하는 훈련과 무대경험을 쌓고 싶다면 콩쿠르 도전을 통해 조금이라도 연주자의 삶을 체험해보는 게 낫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세계 주요 무대에서 러브콜이 많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에도 주요 활동 무대인 유럽을 넘어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뉴욕필하모닉과 협연하며 5만명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올해도 세계 최대 클래식 음악 축제인 BBC 프롬스를 비롯해 파리오케스트라 데뷔 등을 앞두고 있다. BBC프롬스 데뷔와 관련, 그는 “런던 최대의 음악 축제인 만큼 다양하고 많은 청중들을 만나고 호흡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렌다”고 했다.

그전에 오는 1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네덜란드의 명문 악단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한국 관객을 만난다. 이번 공연에선 10년 전 독일 ARD 콩쿠르 결선에서 처음 선보인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김봄소리는 콩쿠르 이후에도 여러 무대에서 이 곡을 즐겨 연주했다. “ARD 결선은 제가 많이 배운 무대였습니다.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이 들려준 브람스 협주곡 연주는 제게 큰 충격이었고, 독일 음악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브람스의 구조적인 음악을 어떤 사운드와 방식으로 연주하는지 좀 더 깊게 알아가는 계기가 됐어요. 그때부터 브람스 음악에 더 빠져들었고, 특히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이 가진 ‘교향곡’적인 면이 그의 깊은 음악세계를 이해하고 그 음악을 풀어내는 데 중요한 열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출신의 동갑내기 지휘자 라하브 샤니가 이끄는 로테르담 필하모닉과 브람스의 곡을 연주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2020/21시즌 주빈 메타에 이어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라하브 샤니는 야니크 네제 세갱의 뒤를 이어 2018년 9월 로테르담 필하모닉(1918년 창단) 역사상 가장 젊은 상임 지휘자로 임기를 시작했다. 김봄소리는 “샤니는 음악에 대한 구조적인 이해가 아주 깊은, 진중하고 무게감이 있는 연주를 하는 지휘자”라며 “그와 함께 브람스 협주곡을 연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이 곡을 이번 투어에 제안했다”고 소개했다.

김봄소리는 한때 바둑에도 푹 빠졌다. 초등학교 때는 급수를 높이기 위해 바둑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고 한다. 바둑과 음악의 속성이 많이 닮아서였을까. “바둑 한판을 보면 바둑 기사의 기풍(碁風)과 성격,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고 하잖아요.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작곡가의 작품이나 연주자의 음반을 들으면 그 작곡가와 연주자 개인의 삶을 엿볼 수 있어요. 달리 말하면 자기 자신을 음악 안에서 절대로 숨기거나 위장할 수 없죠.”
김봄소리는 “시간이 지날 수록 삶에서의 소소한 것들이 주는 기쁨과 영감이 생각보다 우리 삶에 큰 위로와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강해진다”며 “그런 의미에서 제가 음악을 함으로써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가치와 역할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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