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수능’ 기조… 킬러문항 포함
상위권 변별력 가르는 요소로 이용
與 “공교육 밖 출제로 사교육 내몰아”
李부총리 “적정 난이도 확보되도록
출제 시스템 점검 등 모든 지원할 것”
교육계 “당국 의지만으론 해결 못해”
정부가 소위 ‘킬러 문항’이라 불리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초고난도 문항’을 사교육비의 주범으로 꼽으면서 올해 수능 난이도와 출제 경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통령실까지 나서서 킬러 문항은 출제 배제하겠다고 밝힌 만큼 당장 9월 모의평가부터 초고난도 문항은 줄고 ‘준고난도 문항’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 “킬러 문항이 사교육 주범”
19일 교육계에 따르면 수능이 어려운 해에는 ‘불수능’, 쉬운 해에는 ‘물수능’으로 불린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다소 어렵게 출제되는 불수능 기조가 유지됐는데, 전반적으로 고난도 문제가 많이 출제되기보다 몇 개의 킬러 문항이 포함되는 식이었다. 킬러 문항이 상위권 학생의 변별력을 가르는 요소로 쓰인 것이다. 2023학년도 수능 국어에서는 ‘클라이버의 기초 대사량 연구’를 다룬 과학 지문(14∼17번)이 대표적인 킬러 문항으로 꼽혔다. 지문에 상용로그 등 과학 용어들이 많아 사전 지식 없이 풀기 어려웠을 것이란 평가다.
정부는 이렇게 ‘변별력을 위해 꼬아서 낸’ 킬러 문항이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몰고 있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학교 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 협의회’ 브리핑에서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벗어난 출제는 학생들을 처음부터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이고 윤석열정부의 공정과 상식에 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대학교수도 풀지 못할 정도로 배배 꼬는 문제들은 없어져야 한다. 그런 문제로 손쉽게 변별력을 확보해선 안 된다”며 “지금까지 교육부가 이 부분에 대해 지도·감독을 못 했다. 앞으론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시험서 킬러 문항 사라질 듯
정부가 킬러 문항에 칼을 빼 든 만큼 당장 9월6일 치러질 9월 모의평가에서도 킬러 문항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교육부는 이달 초 치러진 6월 모의평가에 ‘공교육 밖 출제 배제’란 정부 기조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대입 담당 국장을 대기발령했는데, 이날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도 6월 모의평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수능과 6월·9월 모의평가를 출제하는 평가원 원장 자리는 임기를 채우기 어려운 자리로 꼽힌다. 수능 출제오류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 원장이 사퇴로 책임져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능이 아닌 모의평가 결과 때문에 사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정부가 모의평가에서도 킬러 문항 배제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어서, 9월 모의평가는 킬러 문항 없는 시험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관건은 킬러 문항 없이 변별력을 확보해 물수능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역대 수능의 경우 물수능으로 평가받았던 수능은 불수능보다도 더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정부 역시 최근 수능 발언이 논란된 후 줄곧 “변별력은 필수요건”이라며 올해 수능은 물수능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 부총리는 킬러 문항을 배제한 변별력 확보 방법에 대해 “전문가와 여러 차례 논의했는데 가능하다고 본다”며 “적정 난이도가 확보되도록 출제 기법 고도화 시스템을 점검하는 등 교육부 수장으로서 모든 가능한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올해 시험은 초고난도 문항보다 약간 난도가 낮은 ‘준킬러’, ‘고난도’ 문항이 늘어나는 식으로 출제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교육계에선 특히 국어영역 독서 난도가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국어 비문학 분야를 예로 들며 과목 융합형 문제 출제를 배제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의당 송경원 정책위원은 “9월 모의평가와 수능에서 킬러 문항은 줄고 준킬러 문항은 늘 것으로 보인다”며 “국어 비문학이나 융합형 문항은 쉬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교육계에선 난이도 확보는 교육부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교육계에서 수능 난이도를 ‘신의 영역’이라고 하는 것도 적정 난이도를 맞추기 쉽지 않아서다. 시험 난이도에는 수험생 수준 등 여러 변수가 있다. 예를 들어 평가원은 2021학년도부터 2023학년도 수능까지 매번 비교적 평이하게 출제했다고 밝혔으나 실제 수험생 체감 난도는 높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 등으로 기초학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맞춤학습으로 공교육 강화한다는 정부 …실제 사교육 감소로 이어질지는 미지수
정부는 19일 사교육의 원인으로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꼽았다. 공교육을 믿지 못해 학원을 찾는 만큼 사교육을 줄이려면 공교육에 대한 신뢰 회복이 먼저라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런 내용의 ‘학교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19일 국민의힘과 교육부에 따르면 21일 교육부가 발표할 학교 경쟁력 강화방안에는 우선 맞춤교육을 위해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 국제고를 유지한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교육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태규 의원은 이날 브리핑에서 “학생 소질과 적성에 맞는 맞춤교육을 하며 지역의 자율적인 교육혁신을 통한 교육역량 강화를 지원할 것”이라며 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 방침을 밝혔다.
자사고와 외고·국제고 폐지는 문재인정부의 핵심정책이었다. 2020년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2025년부터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자사고 폐지를 내걸고 자사고 6곳에 지정 취소 결정을 내리면서 해당 학교들과 법적 다툼을 벌였다. 자사고에 입학해도 대입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지원자가 줄면서 운영난을 겪다가 스스로 자사고 지위를 포기하는 학교도 나타났다.
하지만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이후 분위기가 반전됐다. 윤석열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 이후 국정과제나 업무보고 등을 통해 자사고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 이번에 학교 경쟁력 강화 방안에 자사고 존치를 넣은 것은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관련 법적 절차를 본격적으로 밟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오승걸 교육부 책임교육정책실장은 “(자사고 취소) 법적 쟁송에서 학교가 승소하는 방향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에 소모적 논쟁이 지속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존 학교 지위를 유지해 주며 학생들의 다양한 교육 기회를 보장해 주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국회 교육위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자사고 등 존치는 현 정부의 공교육 경쟁력 강화와 맞닿아 있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자사고가 사교육비를 올리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2022년 초·중·고교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사고 지망 초등학생·중학생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61만4000원으로, 일반고 지망 학생(36만1000원)보다 70.1%(25만3000원) 많았다. 일부 자사고의 경우 교육과정이 수능 대비 중심으로 짜여 있는 등 현재 자사고가 상위권 학생들의 대입준비기관 역할만 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자사고 존치는 사교육비 경감정책과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 정책위원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교육비를 잡으려는데 학원비가 많이 들어가는 학교를 존치시킨 것”이라며 “자사고는 학생을 우선 선발할 수 있어 서열화도 조장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 경쟁력 강화 방안에는 학력진단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전임 정부에서 학력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학력이 저하된 만큼 학력진단을 강화하고 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학습 지원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다만 학력평가 강화는 ‘학생 줄 세우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 추진 시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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