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금융 취약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은행은 금융 취약성이 가계대출과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내집 마련을 위한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데다 자영업자 대출의 연체율이 올라갈 우려가 있다는 점이 취약 리스크(위험)로 지목됐다. 세계일보는 22일자 지면에서 이같은 소식을 다루었다. 지난해 출시한 청년희망적금에 가입했다가 중도에 해지한 사람이 7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소식도 전했다.
◆1분기 금융취약성지수 48.1…전분기 대비 소폭상승
2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하반기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금융취약성지수는 48.1로 잠정 집계돼 지난해 말(46.1)보다 소폭 상승했다.
금융취약성지수는 금융시스템 내 잠재 취약성을 식별하기 위한 지수로, 중장기적인 금융불안 요인을 보여주는 지표다. 외환위기 당시였던 1997년 2분기를 기준치(100)로 이에 가까울수록 금융 취약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올해 1분기 금융취약성지수는 2007년 1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의 장기 평균(39.4)보다 높다.
지표는 코로나19 불안감이 심화하던 2021년 2분기 59.4까지 치솟은 뒤 지난해 4분기까지 완화 국면을 보였다. 그러나 올해 1분기 들어 소폭 상승했다.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늘고 있다는 점이 불안 요소로 언급됐다. 올해 들어 긴축 기조(금리 상승) 완화 기대감이 커지고, 부동산 하락폭이 축소되면서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4월 기준 금융권 가계대출 규모는 전월 대비 2000억원 증가하면서 7개월 만에 증가세로 전환했다.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시중은행의 지난달 가계대출 잔액도 17개월 만에 늘어났다.
그간 금리 인상의 여파로 가계대출 연체율도 증가하고 있다. 전 금융권의 올해 1분기 가계대출 연체율은 0.83%로 전년 동기(0.56%) 대비 늘었다. 특히 주담대 연체율은 0.20%에서 0.31%로 같은 기간 1.5배 넘게 급증했다.
김인구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이번 보고서의 분석 대상 시기는 1분기까지로, 4월에 가계대출이 늘어난 것 등을 반영하면 2분기에는 (금융취약성지수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자영업자의 부채도 불안 요소다. 코로나19 충격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자영업자들이 대출빚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자영업자대출 잔액은 1033조7000억원으로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인 2019년 말보다는 50.9% 증가했다. 반면 소득은 2019년 말의 92.2% 수준에 그치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이 취약차주와 비은행권 위주로 증가하고 있어 전반적인 부채의 질도 악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향후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지연되고, 대출금리 부담이 유지될 경우 취약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연체 규모가 확대될 위험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은은 올해 말 취약차주의 연체위험률이 18.5%로 전년 말(14.4%)보다 4%포인트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에는 오는 9월 종료되는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에 대한 상환 유예조치 종료에 따른 영향은 고려되지 않았다. 상환유예 조치를 이용한 자영업자가 거치기간 1년 후 최대 60개월 분할상환을 이용할 수 있어 원리금 상환기간이 충분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은은 “취약차주의 채무 재조정을 촉진하고, 중장기적으로 자영업자 부채구조를 단기에서 장기로, 일시 상환에서 분할상환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연체 위험 대출이) 전체 자영업자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금융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을 떨어뜨릴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이날 한은은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이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등 글로벌 은행 불안에도 대체로 안정된 모습을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도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시각이다.
◆청년희망적금 중도해지자 70만명 육박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이 21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청년희망적금 운영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청년희망적금의 중도 해지자 수는 68만4878명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2월 첫 출시 당시 가입자가 289만5546명이므로 중도 해지율은 23.7%다. 금감원은 중도해지율이 지난해 6월 6.7%에서 12월 16.6%, 올해 3월 21.1%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납입 금액대별 해지 현황을 살펴보면 10만원 미만 납입자의 중도 해지율이 49.2%로 가장 높았다. 가입자 19만2750명 중 9만4806명이 해지했다. 이어 10만원 이상∼20만원 미만 48.1%, 20만원 이상∼30만원 미만 43.9%, 30만원 이상∼40만원 미만 40.3% 순이었다. 납입 한도인 50만원을 꽉 채운 신청자들의 중도 해지율은 14.8%였다. 납입 여력이 되는 신청자들이 납입 기간에 생긴 변수에도 대처가 용이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년희망적금은 문재인정부가 지난해 출시한 정책금융상품으로 총급여 3600만원 이하 만 19∼34세 청년의 자산 형성을 돕고자 하는 목적으로 설계됐다. 만기 2년 동안 매달 50만원 한도로 납입할 경우 정부 지원금(저축 장려금)까지 합쳐 연 10% 안팎의 금리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
높은 금리 수준에 출시 초기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이 먹통이 될 정도로 가입 신청이 폭주하는 등 큰 관심을 모았지만 1년여 만에 해지자 수가 늘었다. 고물가·고금리 현상에다, 정부 지원금이 만기 때 한꺼번에 지급되는 구조인 것도 중도 해지율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금융 당국은 청년희망적금과 비슷한 정책 목표 아래 최근 출시한 청년도약계좌의 중도 해지 방지 방안을 두고 추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까지 출시 5일째인 청년도약계좌의 누적 가입 신청자는 총 39만4000명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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