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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공간, 종아리만 잠겨도 탈출 어렵다”

입력 : 2023-07-19 07:08:45 수정 : 2023-07-19 07: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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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호우' 일단 터널 진입하면 대피 어려워

"자동차단기 등으로 진입 미리 막는 게 최선"
연합뉴스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오송지하차도 참사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3년 전 '부산 지하차도 참사'나 지난해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참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들 사고는 모두 쏟아지는 비에 순식간에 거대한 저수지로 돌변한 '지하공간'에서 일어난 닮은꼴 참사이다. 거의 매년 되풀이되면서도 여전히 막아내지 못해 안타까움을 산다.

 

전문가들은 지하공간은 한번 침수되기 시작하면 그 속도가 매우 빠르고, 대피 자체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아예 진입 자체를 차단할 수 있는 '선제적 진입 차단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

 

더불어 지하차도 등으로 차량 흐름이 향하지 않도록 신속한 교통 통제를 할 수 있는 관련 기관의 유기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부산 지하차도 참사'는 2020년 7월 23일 부산에 시간당 최대 81.6㎜의 집중 호우가 쏟아졌을 때 발생했다.

 

오후 8시 호우경보가 발령된 후 오후 8시 42분부터 오후 9시 42분까지 한 시간 동안 81.6㎜의 비가 쏟아졌다. 1910년 이후 동구 지역에 9번째로 많은 비가 내린 날이었다.

 

당시 많은 비가 쏟아졌지만, 상습 침수지역인 초량 지하차도는 통제되지 않았다.

 

지하차도 양방향 출입구에는 침수 상황을 관찰하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었다. 출입 통제를 알리는 문자 전광판도 양방향에 있었지만, 고장으로 인해 3년째 작동하지 않았다.

 

길이 165m, 폭 12m, 높이 3.5m에 이르는 지하차도는 도로를 타고 흐르던 빗물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불어났다.

 

침수된 지하차도를 지나던 차량 6대는 시동이 꺼지며 갇히게 됐고, 결국 3명이 숨지고 4명이 구조됐다.

 

당시 동구에는 초량 지하차도 침수에 대비한 매뉴얼이 있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공무원 11명이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모두 실형이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14년 8월 25일 부산 동래구 우장춘 지하차도에서도 폭우에 침수된 지하차도 안 차량에서 외할머니와 15세 손녀가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길이 244m, 높이 4.5m에 달하는 이 지하차도는 시간당 130㎜ 폭우로 인근 금정산에서 한꺼번에 빗물이 쏟아져 내려오자 배수 용량 초과로 순식간에 잠겼다.

 

지난해 9월 6일 태풍 '힌남노' 때 경북 포항 인덕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로 주민 7명이 사망한 사고 역시 '지하공간 참사'다.

 

힌남노로 당시 포항에는 0시부터 오전 7시까지 342㎜의 폭우가 쏟아졌다.

 

이날 아침 "지하주차장 내 차량을 이동 조치하라"는 관리사무실 안내방송을 듣고 차를 옮기러 갔던 주민들은 순식간에 주차장이 침수돼 탈출하지 못해 숨졌다.

 

침수된 지하 주차장은 길이 150m, 너비 35m, 높이 3.5m 규모였다. 폭우로 범람한 인근 하천에서 순식간에 물이 유입되면서 8분여 만에 주차장이 잠겼다.

 

2016년 10월 태풍 '차바' 때도 울산에서 시간당 100㎜ 넘게 퍼부은 빗물과 태화강에서 넘친 강물이 인근 주상복합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모이면서 차를 빼러 갔던 주민 1명이 목숨을 잃었다.

 

호우가 쏟아지면 배수가 되지 않은 빗물은 도로를 타고 저지대로 내려온다.

 

도로라는 넓은 공간에 퍼져 있던 빗물들이 웅덩이 형태의 저지대에 모이면 비교적 큰 공간이라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물이 찬다.

 

길이 100m를 넘는 지하차도가 20∼30분 만에 물이 가득 찰 수도 있고, 호우로 범람한 하천의 '홍수파' 등이 더해지면 오송지하차도 사고 때처럼 3분 만에 지하차도가 물로 가득 차기도 한다.

 

일부 지하차도는 일반 도로보다 배수 시설이 취약하게 설계되는 등 구조적 문제도 있다.

 

2019년 감사원의 '대도시권 지하차도 안전 관리 실태점검' 자료를 보면 감사원이 설계도를 확보한 전국 81개 지하차도 중 절반이 넘는 44곳의 배수 설계 기준이 일반 도로 기준보다 낮았다.

 

일반 도로는 '50년 빈도로 일어나는 호우'(시간당 78.7㎜)에 대비해 만들어져 있는데, 지하차도 44곳은 '10년∼30년 빈도 호우'(20년 빈도는 68㎜, 30년 빈도 72.7㎜)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지하차도에 빗물이 흘러 들어가는 것이 보이면 시민들은 아예 진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상대적으로 밝은 바깥에서 어두운 지하차도 내부는 잘 보이지 않아 물이 고였는지 판단하기 어려운데, 내부가 웅덩이 형태여서 중심에 물이 고여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학수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연구관은 "보통 타이어 높이가 60㎝ 정도 되는데 타이어의 3분의 2만 잠겨도 차량 시동이 꺼질 가능성이 높다"며 "만약 타이어 높이까지 침수되면 앉아있는 운전자의 허리까지 물이 찰 수 있는데, 이 상태에서는 수압 때문에 문을 열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사로로 흘러들어오는 물을 거슬러 탈출하기도 매우 어렵다.

 

김 연구관은 "경사로를 따라 들어오는 유속이 매우 빠르기 때문에 발목과 종아리 사이까지만 물이 차도 난간이나 지지대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몸을 빼내기 어렵다"며 "밀폐된 공간에 갇히면 대피할 수 있는 동선을 찾아낼 확률도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실험 자료에 따르면 난간이 없는 계단에서 종아리까지 물이 차오른 45㎝ 수심에, 내려오는 물의 유속이 초속 6.48m 정도가 되면 성인 남성도 대피하기 어렵다고 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여성은 계단 수심이 35㎝, 유속이 초속 5.41m만 돼도 탈출이 어렵다.

 

지하공간에 물이 50㎝ 이상 차면 성인 남성도 출입문을 열지 못했다. 여성은 40㎝만 물이 차도 문을 열지 못했다.

 

이렇듯 일단 침수가 시작되면 지하공간에서는 탈출이 어렵기 때문에 최선의 예방 대책은 '선제적 진입 차단 시스템'이다.

 

비상시 인력에 의존하지 않고 지하차도의 진입을 원천적으로 자동 차단하는 '자동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물이 일정 이상 차오르기 전에 자동 차단기가 내려와 진입을 원천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관련 기관이 유기적으로 교통을 통제해 지하차도 등으로의 차량 흐름을 막는 협업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오송지하차도 참사의 경우 침수 두 시간 전인 오전 6시 34분 금강호수통제소가 흥덕구에 주변 통제와 대피를 할 것을 경고했지만, 정작 지하차도의 관리주체인 충북도에는 연락하지 않았다.

 

소방당국도 사고 40여분 전 청주시에 "제방 둑이 무너져 미호감이 범람하고 있다"고 알렸지만, 청주시는 바로 조치하지 않았다.

 

관계기관의 협업 부재가 참사가 발생한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동규 동아대학교 대학원 재난관리학과 교수는 "여러 기관이 공동 대응해야 할 사안에 있어 정보 공유도 잘 안되고, 상황 파악이 안 돼 우왕좌왕하는 것은 재난 현장에서 관측되는 공통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관계기관이 침수 지역에 대한 객관적 데이터를 공유하고 긴급 상황에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전과 관련된 시설에는 예산을 적극적으로 투입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산 지하차도 참사 직후 행정안전부는 유사 사고를 막기 위해 자동 차단시설 구축, 원격 차단, 지하차도 통제상황 실시간 공유, 상황전파 시스템 구축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일선 지자체에서는 예산 등의 문제로 도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교수는 "안전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각 지자체는 복지 등 바로 체감되는 곳으로 예산을 투입하려고 해 우선순위에서 늘 밀린다"며 "재해 예방사업이 우선순위가 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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