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의 뒷북행정, 단체장의 무개념 발언
vs 교사는 민원 받이, 군인은 무차별 동원
청춘은 뒷북수습에 노출·무리한 역할 수행
폭우와 장맛비, 폭우로 불쾌지수가 높았던 7월 중순. 이보다 더 짜증났던 일은 변하지 않은 행정당국의 무사안일과 보통시민의 희생이 반복됐다는 점이다. 일주일 사이에 터져나온 각종 사건사고는 대통령의 외국 방문 사실마저 흐릿한 과거로 만들어버렸다.그토록 당선시켜달라고 했던 위정자들은 ‘사고에 구체적인 책임은 없다’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기관들은 ‘서로 신고를 했네, 받지 못했네’ 등의 네탓공방에 한창이다. 교육현장의 병폐에 노출된 것으로 보이는 젊은 교사, 세련되지 못한 정책 결정으로 현장에 동원된 젊은 해병대원은 숨졌다.
◆ “현장 굳이 찾을 필요없어·괜한 트집”
"내가 현장에 갔어도 바뀔 건 없어"
20일 충북도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은 김영환 충북지사가 한 말이다. 김 지사는 “임시제방이 붕괴되는 상황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충북도 최고책임자로서 현장에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괴산댐 붕괴가 더 긴박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24명의 사상자를 낸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건을 둔 발언이었다. 김 지사는 앞서 지난 4월 제천 산불 당시 술자리 참석 논란이 일자 "진화 현장 가는 게 옳은 것은 아니다"고 하기도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거침없는 발언으로 논란을 야기했다. 홍 시장은 지난 15일 전국적인 폭우 와중에 대구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지만 당당했다. 그는 비판여론에 “괜히 쓸데없이 트집 하나 잡았다고 벌떼처럼 덤빈다고 내가 거기에 기죽고 잘못했다고 할 사람이냐”고 반문했다. 뒤늦게 사과는 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그의 모습에 여당인 국민의힘은 징계 절차를 개시했다.
그런가 하면 군부대 지휘라인의 무능은 생명을 앗아가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입대 4개월차 해병대 채수근 상병(추서)은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로프도 연결하지 채 거센 하천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해병대원 39명이 9명씩 인간 띠를 만들어 수중 수색작업에 나섰다가 채 상병이 희생된 것이다. 사실상 군 지휘부가 인명구조와 군사작전의 기본인 지형지물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위험지대’에 장병을 밀어넣은 것이다. 수중수색 경험을 지니지 않았던 포병대대 장병을 동원하는 ‘묻지 마 작전’의 피해자는 오롯이 젊은 청춘의 몫이었다.
◆ 사지로 내몰린 해병대원·교권 추락한 현장의 교사
27년 동안 소방관으로 재직중인 채 상병의 부친은 “구명조끼도 왜 안 입혔느냐, 기본도 안 지켰다”고 오열했다. 결혼 10년만에 시험관 시술로 얻은 외아들의 비명횡사에 채 상병의 부친은 입술을 꽉 다문 채 주저앉기를 반복하는 아내를 부축했다. 해병대의 무리수에는 지난해 태풍 힌남노 피해 당시 포항시에서 장갑차를 동원해 주민을 구하며 인정을 받은 ‘과거’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정부가 안전을 태만하게 한 채 젊은 군인을 동원하는 행태는 근본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서울 서초구에선 지난해 3월 임용된 초등학교 교사가 숨졌다. 동료들은 숨진 교사가 몇몇 학부모로부터 과도한 민원에 시달렸다는 정황이 있다고 했다. 지난달엔 양천구 소재 초등학교의 6학년 담임 교사가 교실에서 학생에게 폭행당하기도 했다. 학교 현장의 교권 추락에 교사들은 절망했을 것이다.
뒤늦게 숨진 교사를 향한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지만, 악성 민원에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는 교사들의 근무환경이 당장에 개선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교사들의 제보에 따르면 일부 학부모는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알아?” 등의 갑질도 거침없이 하고 있다. 학교 앞에서 이뤄지고 있는 시민들의 추모물결에 교사들은 “우리들은 악성 민원의 총알받이가 아니다”고 안타까워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정당한 생활지도 등에는 면책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교사의 사기가 떨어지고, 교권이 추락한 곳에서 정상적인 교육은 이뤄지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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