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전남 진도군의 한 마을회관. A씨는 남편과 함께 휴가차 이 동네를 찾았다 봉변을 당했다. 당시 A씨 남편과 함께 술을 먹고 있던 B씨는 갑자기 A씨 손을 잡아당겨 본인 성기에 올려놨다. 그러면서 B씨는 A씨에게 “남편 것보다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됐다. B씨에겐 동종 범죄 처벌 전력도 있었다. 하지만 B씨는 지난달 20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실형을 면했다. 재판부는 “동종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점,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한 점 등은 불리한 정상”이라면서도 “피해자를 위하여 일부 금원을 공탁한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제도인 ‘공탁’이 성범죄 재판에서 악용되고 있다.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몰라도 법원 소재지 공탁소에 돈을 맡길 수 있도록 법이 바뀐 뒤부터다. 온라인엔 “합의가 불가능하면 공탁 제도를 활용하면 된다”며 감경 방법을 공유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성범죄에 한해선 판결 시 공탁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양기대 의원은 지난 11일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성폭력 범죄의 경우 형사 공탁이 정상참작 감경에 해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같은 개정안이 나온 건 지난해 12월 개정 시행된 공탁법 때문이다. 형사공탁은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한 가해자가 법원에 공탁금을 맡겨 피해자가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인데, 원래 피해자의 이름과 주소 등을 알아야 가능했다. 이에 피해자가 합의를 원하지 않는 경우엔 가해자가 공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9일 개정 시행된 공탁법은 피해자의 인적 정보를 몰라도 가해자가 공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정보를 몰래 캐내는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취지였지만 공탁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해 형이 감경되는 사례가 계속 발생했다. 이에 개정된 공탁법이 ‘꼼수 감형’의 통로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양 의원은 개정안을 발의하며 “지난해 12월 9일부터 지난 6월 9일까지 성폭력 관련 판결에서 ‘피해자가 용서를 받지 못했다’는 점을 명시하면서도 공탁 사실을 감경사유로 적용한 판례가 215건”이라며 “제도 시행 전 6개월 동안은 이 같은 사례가 8건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양 의원은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는 공탁으로 피고인이 형의 감면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온라인에서도 성범죄 가해자가 됐을 때 형사공탁 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방법 공유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한 블로거는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거절한다면 공탁을 활용해 선처를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고, 또 다른 네티즌은 “공탁만으로 집행유예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질문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 6월 낸 논평에서 “기습 공탁과 무분별하게 공탁이 감경사유 인정되는 것을 경계한다”며 “피해자 의사에 반한 공탁, 범행을 부인하며 이루어지는 공탁이 감형사유로 인정되는 것은 사법 정의에 대한 신뢰를 하락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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