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위해서 목숨 바치면 천국서 영생”
서구·종교계 “침공 정당화 말라” 비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종교를 둘러싼 지속적인 갈등 속에서는 특히 한 인물이 끊임없이 주목받고 있다. 바로 러시아 정교회의 키릴 총대주교. 전쟁 발발 이후 노골적인 친푸틴 행보를 이어가며 양국 간 종교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본명이 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군댜예프인 키릴 총대주교는 소련 붕괴 이후로는 처음으로 2009년 러시아 정교회 수장에 선출돼 15년 가까이 1억명이 넘는 러시아 신자들을 이끌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러시아 정교회는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의 정책 방향에 적극 동조하며 국가주의 색채가 극심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는 아예 키릴 총대주교가 푸틴 대통령의 대표적 측근 중 한 명으로 분류될 정도다.
특히 키릴 총대주교는 전쟁 발발 이후 노골적인 러시아 지지 발언으로 종교인으로서의 중립을 기대하던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전쟁 발발 한 달 만인 지난해 3월 “러시아는 안보를 지키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무력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며 “전쟁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투쟁에 들어섰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사실상 ‘성전’에 비유한 것이다. 예비군 약 30만명을 소집한 부분동원령이 발동됐던 지난 9월에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천국에서 영광과 영생을 누린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설교하기도 했다.
서구언론 등은 키릴 총대주교가 쏟아낸 이 같은 전쟁 지지 발언들이 “우크라이나와 민간인을 향한 푸틴의 공격과 자국민 동원을 정당화하는 레토릭(수사학)”이라며 비판하는 중이다. 이런 키릴 총대주교의 행태를 두고 종교계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가톨릭교회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5월 “푸틴의 복사(服事) 노릇을 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아예 키릴 총대주교를 제재 명단에 올린 국가도 있다. 지난 4월 체코는 키릴 총대주교를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한 혐의로 제재했다. 당초 유럽연합(EU) 차원의 대러 제재에 포함하는 방안이 논의됐으나 일부 회원국의 반대로 무산되자 체코 정부가 단독 행동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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