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기와 핵·미사일을 앞세운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에 맞선 군의 대응이 본격화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18일 제156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개최, 9800억원 규모의 중고도무인정찰기(MUAV) 양산계획안을 심의·의결했다. 연내 계약을 맺고 2028년까지 양산을 진행한다.
북한의 미사일과 무인기 위협에 맞서려면 북한 내륙 지역에 있는 북한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탐지하는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먼 거리에서도 휴전선 이북 깊숙한 지역을 정찰할 수 있는 장비가 필수다.
국내 개발·양산해 실전배치할 중고도무인정찰기는 북한이 최근 공개한 ‘북한판 리퍼’ ‘북한판 글로벌호크’보다 우수한 성능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
공군이 운용중인 미국산 글로벌호크 고고도무인정찰기와 더불어 북한 내륙을 감시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20년 만에 실전배치 눈앞…우여곡절 겪어
1991년 걸프전에서 미군이 무인정찰기를 투입, 이라크군을 격파한 것을 지켜본 한국군은 2000년 RQ-101 군단급 무인정찰기 체계를 개발, 실전배치했다.
RQ-101은 육군 군단의 ‘눈’ 역할을 잘 수행했지만, 활동반경이 좁았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핵심인 감시정찰능력 강화와 북한 내륙지역 감시를 위해선 우수한 무인정찰기가 필요했다.
이에 군 당국은 2006년 중고도무인정찰기 사업을 추진, 2008년부터 개발이 시작됐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사업을 주도하고, 대한항공(체계개발), 한화시스템(전자광학장비), LIG넥스원(합성개구레이더 및 지상통제체계 등)이 참여했다.
기술적 기반 조성과 개발 가능성 등을 확인하고자 우선 탐색개발을 진행, 2010년에 시제품을 만드는 등 개발작업이 이뤄졌다. 공군은 중고도무인정찰기 체계개발이 완료되면 미국산 글로벌호크를 도입, 감시정찰능력을 대폭 끌어올리려 했다.
이같은 구상은 천안함 피격·연평도 포격전 직후 위기에 직면했다.
2011년 초 군 당국은 ‘국방개혁 307 계획’에 따라 “글로벌호크와 중복된다”는 이유로 중고도무인정찰기 체계개발 중단을 결정했다. 대신 탐색개발을 1년 연장, 전자광학장비와 합성개구레이더 등을 시제기에 장착하기로 했다.
하지만 1800여억원이 지출된 상황에서 매몰 비용 문제, 국내 기술 개발 필요성 등에 밀려 중고도무인정찰기 사업은 재개되어 체계개발 단계로 접어들었다. 2017년 하반기에 개발이 완료되어야 했지만, 기술적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21년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비행체와 지상체간 통신 오류로 개발이 14개월 지연됐다. 2018년에는 날개 착빙으로 9개월이 늦어졌다. 이후에는 대기 자료장치 오류 등 개발 오류가 계속 발생, 지난해에야 개발이 끝났다.
통신 오류를 비롯한 기술적 오류는 개발과정에서 대부분 해결됐다. 다만 착빙 문제는 추후 성능개량 사업 때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예정이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지금도 용액을 쓰는 방빙체계가 있지만 100% 충족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있어서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라며 “전기를 쓰는 방법도 있고, 방빙 체계가 없는 기종도 세계적으로 생각보다 많다”고 설명했다.
양산이 이뤄지면 충북 충주기지의 공군 제39정찰비행단에 배치될 예정이다. 지난 2020년 창설된 제39정찰비행단은 중고도무인정찰기와 RF-16, 금강/백두 정찰기, 글로벌호크를 함께 운용해 한반도를 24시간 감시한다.
RQ-105로 알려진 중고도무인정찰기는 길이 13m, 전폭 25m, 전고 3m의 대형 무인기다. 1200마력 터보프롭 엔진을 쓴다. 비행체 2~4대와 지상통제 및 지원장비로 체계가 구성된다.
13㎞ 고도에서 24시간 이상 비행하면서 전자광학장비(EO/IR), 합성개구레이더(SAR)로 최대 100㎞ 떨어진 지역을 정찰할 능력을 갖췄다. 서울 중심부에서 개성을 포함한 황해도 남부 지역의 북한군 동향을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다.
전자광학장비는 멀리 떨어진 표적에 대한 고해상도 가시광선 및 적외선 영상을 획득, 압축전송을 한다. 지상통제장비는 무인기를 통제하면서 영상정보를 분석하고 상급부대로 전송한다.
합성개구레이더는 주·야간과 악천후에도 실시간으로 고해상도 영상정보를 수집하고 지상에서의 이동표적을 탐지한다. 무인기의 진동 등에도 흔들리지 않은 채 쵤영할 수 있고, 고정밀 제어 설계로 안테나를 정확하게 지향한다.
위성데이터링크 체계는 위성항법체계(GPS)를 겨냥한 북한의 전파방해를 저지하는 기능을 보유했다.
무인기 침투를 저지하는 안티 드론(anti-drone) 기술 중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 중 하나가 전파방해다. 이를 통해 무인기를 추락시키거나 포획한다.
중고도무인정찰기는 고가의 첨단 전략무기다. 기체에 저장된 정보를 확인하면 한국군이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북한이 알 수 있다.
특히 북한은 10여년 전부터 GPS 전파방해를 시도했으며, 관련 기술과 경험도 축적했다.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이유다.
중고도무인정찰기에 쓰이는 위성데이터링크는 무인기 통제용 순방향링크와 대용량 영상정보 전송을 위한 역방향링크를 사용한다. 이를 통해 무인기 통제 명령과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빠르게 송수신할 수 있다.
◆공격형 등 개발 가능성…“늦었다” 지적도
한국군이 새로 도입할 중고도무인정찰기는 공군의 감시정찰 능력 보강에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성능상으로는 글로벌호크가 더 우수하다. 하지만 글로벌호크는 가동률이 낮고 고장도 빈발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호크가 작전을 시작한 2021년 10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가동률은 59%에 그쳤고, 주요 고장도 70여건이나 발생했다. 4대 중 2대만 가동된 셈이다.
고장이 발생한 부분도 다양했다. 전자광학적외선 카메라와 데이터링크계통 신호처리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피아식별장비에 암호가 입력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지상으로 신호전송이 안되고, 전파고도계 작동 불량이 발생하기도 했다.
글로벌호크는 미국 노스롭그루먼이 제작한 장비다. 따라서 고장 대응 등에서 국산 장비보다 늦을 수밖에 없다.
반면 중고도무인정찰기는 국내에서 개발됐다. 정비와 후속군수지원이 외국 무기보다 쉽다. 글로벌호크의 고장으로 인한 공백을 어느 정도는 메울 수 있다.
RQ-105는 정찰 외에 공격용 버전도 개발될 전망이다.
과거에는 정찰용 무인기가 각광받았지만, 테러와의 전쟁 이후 공격 능력을 갖춘 무인기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었다.
미국이 운용중인 MQ-9 리퍼 무인공격기는 최근 대만도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튀르키예의 바이락타르 TB2 무인공격기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다수의 전차를 파괴, 도입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도 미사일 등 정밀유도무기를 장착한 무인공격기를 개발도상국에 판매하고 있다.
북한도 전승절(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리퍼 무인기와 매우 유사한 무인공격기를 공개했다. 사진과 영상에선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도 포함되어 있어 기본적인 성능과 안정성은 갖춘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도 RQ-105 양산이 이뤄지면 유도무기 등을 장착한 공격형 버전 생산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이 버전은 현재 MQ-105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MQ-105는 리퍼나 바이락타르 무인공격기처럼 다양한 종류의 정밀유도무기를 탑재해야 하므로 정찰장비 중 일부가 철거되고, 날개를 비롯한 기체 구조가 강화될 전망이다.
최근 방위사업청이 발간하는 사보에 미사일 4발을 장착한 무인공격기 상상도가 공개됐는데, 기체 형상이 중고도무인정찰기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일각에선 MQ-105의 기본적인 형상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중고도무인정찰기의 등장이 늦은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중국은 2018년 리퍼와 유사한 수준을 지닌 윙룽-2 무인공격기를 개발,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32시간을 체공할 수 있고, 480kg의 무장을 탑재한다. 지난해에는 미국산 그레이 이글 무인공격기와 비슷한 능력을 갖췄다고 알려진 윙룽-1E를 공개했다.
튀르키예는 지난 2010년 첫 비행을 한 안카(ANKA) 중고도 무인기를 시장에 제안하고 있다. 30시간을 비행할 수 있는 안카 무인기는 공격형인 안카-S로 진화했는데, 레이저 유도 폭탄 등을 장착한 채 24시간을 비행한다.
2017년 이후 튀르키예가 시리아 내 쿠르드 세력과 정부군을 공격할 때 투입되어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차드, 인도네시아 등 개발도상국에서도 구매했다.
국산 중고도무인정찰기가 세계 시장에 나오면 중국과 튀르키예, 미국 등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따라서 경쟁 기종과 차별화되는 요소를 적극 발굴, 해외의 잠재적 고객에게 제안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군과 방산업계의 대응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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