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로당 활동을 했다고 박정희 대통령까지 역사에서 지울 것인가.” “공과 평가는 역사에 맡기는 게 지혜로운 일이다.” 요즘 이런 말들이 나오는 걸 듣고 적잖이 놀랐다. 저잣거리 장삼이사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을 법한 생각일 뿐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말들에 놀란 건 발화자가 진보 성향 인사들이라서다.
우리 사회 이념의 극단화가 심각하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놓고 각각 건국자와 독재자로만 평가한다. 같은 편을 한없이 포용하면서도 반대편은 철저하게 증오한다. 정권 교체 때마다 공수를 바꾸어 같은 행태를 되풀이한다. 방송 정상화와 방송 장악이 마치 같은 단어인 양 소비되는 현실이다. 내로남불은 어느 한 진영의 문제만은 아니다.
4년여 전 전국 학교에서 교가 교체 붐이 일었다. 현제명·서정주·이광수·최남선 등 친일파로 낙인찍힌 인사들이 작사하거나 작곡한 교가가 폐기처분됐다. ‘어머니 마음’, ‘섬집 아기’ 같은 동요를 만든 이흥렬이 작곡한 광주일고 교가는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의 곡으로 바뀌었다.
광주광역시 출신 중국 음악가 정율성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정율성은 북한 조선인민군 행진곡과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을 작곡한 인물이다. 광주시의 역사공원 조성과 동요제 개최, 거리 지정 등이 알려지면서 비판 여론이 거셌다. 이에 강기정 광주시장은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논의하는 광주, 대한민국’을 화두로 꺼냈다. 하지만 북한에 충성한 이들까지 이런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육군사관학교 내 독립 영웅 5인 흉상 철거·이전 문제로 불거진 홍범도 장군 논란은 소련공산당 가입과 레닌 면담 등 활동이 문제된 듯하다. 문재인정부 역사관에 대한 보수 쪽의 반작용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독립운동을 향한 헌신을 좌우 이념으로 재단할 순 없다. 조국을 떠나 만주에서, 사할린에서 모진 삶을 살아야 하던 시절이다. 일제강점기 간도특설대 복무를 문제 삼아 백선엽 장군에게 ‘친일 딱지’를 붙이는 진보 쪽 행태와 다를 게 없다. 역사적 인물에게는 공과가 있기 마련이다. 좌우 진영 모두가 외눈박이에서 벗어나 공과를 제대로 평가하는 계기가 된다면 이번 논란은 의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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