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사태로 억울한 죽음 상처 더해
장관, 섣부른 판단 혼란 책임져야
국가는 국민에 대한 의무 다하는가
배우 손석구가 분한 103사단 헌병대 대위 임지섭은 법정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증인석에 앉았다. 그는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총기를 난사한 병사에게 총탄을 맞은 한 병사가 구조헬기가 도착하기 전까지 1시간30분 정도 살아 있었다는 증언을 한다. 군이 숨겼던 내용이다. 그러고는 병사들 이름을 부르며 “그들이 같이 생활하다가 누가 누구를 죽이는 일이 발생했는데 나라가 아무런 책임이 없고, 증거가 없으며, 직접적인 원인이 없다고 말하면 그들은 무엇을 위해 군인이 된 것인가”라고 묻는다. 넷플릭스 드라마 D.P.(군무 이탈 체포조) 시즌2의 마지막 한 장면이다. ‘국가는 과연 국민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드라마가 던진 메시지다. 보다 보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대민지원작전 중 해병대원 한 명이 익사했다. 장갑차가 투입됐다가 바로 철수하고….”, “시계 확보도 안 되는 곳에서, 구명조끼도 없이 급류에 들어가라는 건 그냥 너 죽어라 하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도대체 지휘관이 어떤 생각에서 그 따위 지시를 했을까. 전투 중에 숨진 것도 아니고 정말 개죽음 아니냐….” 사고 사실을 전하는 지인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7월 중순 경북 예천군에서 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원의 죽음을 두고 다시 한 번 군의 책임을, 국가의 책임을 떠올리게 된다. 장례식 때 그 부모는 비통함을 삼킨 채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창졸지간 자식을 잃은 상처가 쉬 지워질 리 있겠나. 숨진 동료를 구하지 못해 괴로워하던 장병들 모습도 눈에 선하다. 이들 또한 죽는 날까지 트라우마에 시달릴 게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무색해질 정도다. 부하들 안전을 도외시하고 무모한 작전을 편 지휘관에겐 물을 게 끝이 없다.
그뿐인가. 이 사건은 군 초유의 항명사태로까지 번졌다.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이다. 지난달 30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해병대원 사망 경위를 수사한 보고서를 들고 이종섭 국방부 장관을 찾았다. 수사 결과 요약엔 ‘사단장 등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관 예정’이라고 돼 있었다. 장관은 결재란에 직접 서명했다. 그런데 다음날 돌연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하지만 박 수사단장은 이 장관이 해병대사령관을 통해 명령한 이첩 보류 지시는 정식 명령이 아니라며 보고서를 경찰에 이첩했다. 그러자 장관은 항명수괴죄를 적용해 보직해임했다.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하루아침에 결정을 뒤집은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의문을 가지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둘러댔다. 그런다고 장관의 지휘 책임이 없어지겠나.
해병대 사단장을 살리기 위해 대통령실이 개입해 외압을 행사했다는 얘기들이 나돈다. 대통령이 병사 한 명이 사망한 사건에 사단장까지 책임을 묻는 데 격노했고, 이에 장관이 지시를 번복했다는 보도들까지 줄을 잇는다. “아무렴 그렇지” 하며 무릎을 치는 국민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국방부 조사본부는 당초 사건 혐의자를 8명에서 2명으로 축소해 사건을 경찰로 넘겼다. 사단장과 여단장은 빠진 채다. 윗선은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사건을 봉합하려는 의도다. 개인 과실이라는 프레임에 가두고 진실은 묻어 두려는 군의 ‘못된’ 습성이 되풀이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덕택에 해병대원의 죽음은 잊혀지고 있다. 항명사태로 야기될 군 기강 해이 등 부작용이 더 크다는 주장과 함께. 심지어 병사의 죽음은 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까지 한다. 억울한 죽음에 상처가 더해지는 형국이다. 이 장관은 국회에서 지시 번복을 해명하는 과정에 “변명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이라는 말을 되뇌었다. 그러니 스스로 선택한 일인데도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감당할 의지조차 없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장관의 섣부른 판단이 부른 혼란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박 전 수사단장의 항명 여부와 별개다. 설사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개입했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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