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립대 한 교수가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두고 “위안부 가운데 다수가 생계를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교수는 지난해에도 일본군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1일 서울 경희대 철학과 졸업생 및 재학생 등에 따르면 이 대학 철학과 최모 교수는 지난 1학기 신입생들이 듣는 전공 수업 ‘서양철학의 기초’에서 이같이 말해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이날 졸업생 96명은 최 교수에게 ‘역사 왜곡 망언’을 철회하고 학과의 명예를 훼손한 것에 대한 공식 사과를 요구한다는 대자보를 교내에 붙였다.
1993년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의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고노담화’에서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인정한 만큼 최 교수의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에 대해 “교수 생활하는 동안 참이라고 믿지 않는 어떤 이야기도 학생들에게 한 적 없다”며 “강의한 내용은 참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모르고 있을까 걱정이 돼서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발언 철회는 벌써 다른 사람들이 연구한 것을 읽고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서서 대변하는 것이 어색해 취소한 것뿐”이라며 “발언이 참인지 아닌지는 철학과 구성원 모두를 모아놓고 토론하자”고 제안했다. 최 교수는 지난해 같은 수업에서도 일본군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이후 학생들의 반발이 일자 발언을 철회하기도 했다.
경희대는 최 교수의 발언이 통념과 다른 말이지만 무조건 징계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희대 관계자는 “지난해 학교가 해당 교수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발언을 철회하겠다고 해서 논란이 마무리됐었다”며 “국민 정서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거나 학생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이 있으면 민원을 넣을 순 있지만 학교 규정상 징계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판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학생들 사이에선 다양한 역사적 관점은 존중돼야 하지만, 최 교수가 위안부 문제에서 국가 폭력과 성폭력 담론을 지운다는 비판이 나왔다. 경희대 철학과 재학생 최우성(21)씨는 “(최 교수의 발언을) 단순히 역사 왜곡 문제로 치환할 순 없다”며 “성폭력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매춘이라는 형태만 부각해 여성 혐오적인 시각이라고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철학과 재학생 이모(21)씨는 “자발성이 있었냐는 점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논점으로 끌어와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반면 이 같은 논란이 학내 의견 표명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문제의 본질과 멀어지게 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문수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한양대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는데 대학 강의실에서 정치적 입장을 개진하는 것은 교수뿐만 아니라 학생에게도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극으로 치닫는 한국 좌우 대립의 투사로 변질됐다”며 “위안부 동원이 자발적이었냐 강제적이었냐를 따지는 것보다도 그 안에서 어떤 인권 유린이 발생했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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