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슈뢰더, 정치생명 걸고 단행
尹대통령 국가 미래 위해 결단해야
야당도 총선용 정쟁으로 이용 안 돼
국민연금 개혁은 어렵고 인기 없는 정책이다. 역대 정권들이 시간만 끌면서 ‘폭탄 돌리기’를 해 온 걸 봐도 그렇다. 1988년 국민연금 제도 도입 이후 개혁은 두 차례뿐이었다. 김대중정부 때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연금 받는 나이를 60세에서 65세로 올렸다. 노무현정부 때는 ‘국민연금 폐지’ 촛불시위까지 벌어졌지만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총대를 메고 소득대체율을 40%로 낮췄다. 그럼에도 보험료율(9%)은 25년째 제자리다.
이후 정부들은 연금개혁을 외면했다. 그나마 박근혜정부는 2015년에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공무원연금 개혁을 이뤄냈다. 문재인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2018년 기금 소진 시점이 2057년으로 3년 앞당겨진 전망이 나오자 복지부는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대신 보험료율 13% 인상 등 네 가지 개혁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며 재검토를 지시했고 결국 무산됐다. 그 대가는 후임 정부와 국민들이 치르고 있다.
연금개혁을 한 국가들은 지도자의 결단이 있었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이대로 가면 나라가 거덜난다”며 강력한 연금개혁을 추진했다. 그 여파로 2005년 총선에서 패배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은 것이다. 프랑스는 지난 1일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연장하고, 연금 납입 기한을 늘린 연금개혁안 시행에 들어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격렬한 반대 시위와 지지율 하락에도 밀어붙인 결과다.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욕먹으며 앞장서는 사람이 진정한 정치 지도자다.
최근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보험료를 더 내고 같은 금액을 받되 더 늦게 받는’ 개혁 밑그림을 내놨다. 보험료율을 2025년부터 5~15년간 매년 올려 12~18%로 높이고, 연금 개시 연령도 66~68세로 늦추자는 것이다. 여기에 기금 운용 수익률을 0.5∼1%포인트 올리면 연금 고갈 시기가 최대 2093년까지 연장되는 시나리오다.
위원회가 개선안을 18가지나 나열하고, 소득대체율은 언급하지 않아 ‘반쪽짜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자고 주장하던 위원 2명이 공청회 하루 전날 사퇴하는 곡절도 겪었다. 재정안정과 소득보장의 간극을 좁히지 못해서다. 내로라하는 전문가 집단마저 이렇게 툭 던져놓고 반목하면 개혁 동력을 어디서 찾을지 걱정이다.
연금개혁의 시급성은 프랑스·독일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험료율 평균은 18.3%로, 우리의 두 배가 넘는다. 이대로 개혁을 회피한다면 국민연금 기금은 2055년 고갈된다. 그 이후 세대는 최고 34.9%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이런 부담을 미래 세대가 감당할 수 있을까. 기성 세대에 대한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 사회·세대 갈등은 극에 달할 것이다.
연금개혁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국가의 생존 과제다. 보험료는 두 배 더 내고 3년 더 늦게 받으라는 개혁안에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욕을 먹더라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복지부 장관이 전면에 나서 갈등을 조정하고 국민을 설득할 때가 됐다. 정부는 10월 말까지 국회에 최종 개혁안을 내야 한다. 여론을 수렴하고 치열하게 고민한 뒤 단일 개혁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입법 문제라는 점에서 거대 야당의 책임도 크다. 총선을 7개월 앞두고 득표에 도움이 안 되는 연금개혁 법안을 더불어민주당이 처리해 줄 가능성은 작다. 야당은 벌써 “개혁안의 소득보장이 약하다”며 총선용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국민의 노후가 걸린 연금개혁을 정쟁으로 이용하는 건 미래 세대에 죄를 짓는 무책임한 처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금개혁은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올해를 그냥 넘기면 내년에는 총선이 있어 개혁 동력이 떨어진다. 임기 후반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윤 대통령은 슈뢰더 전 총리, 마크롱 대통령처럼 국가와 미래 세대를 위해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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