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1000만원 재난적 의료비
투병 시달린 환자들 덜 힘들게
고가의 신약 보험 적용됐으면
분명히 대장을 수술했는데 대장암이 아니라 림프종이라고 하면 의아하지 않겠는가? 물론 대장 상피세포가 아니라 림프구가 암이 된 소수의 경우에 한해서다. 림프종은 손발톱, 머리카락을 제외하고는 모든 곳에 생길 수 있는 병이다. 피부도 그중 하나다. 비교적 가벼운 경우는 광선 치료 또는 단기간의 방사선 치료로 잘 조절된다. 그러나 전신에 걸쳐 발생하는 심한 경우도 있다. 가렵고 진물이 나기도 한다. 우리 몸의 국경이 뚫리는 셈이다. 각종 세균이 상처가 난 피부를 통해 침투한다. 그 삶이 오죽하겠는가.
피부 림프종 환자들은 여름에도 긴 소매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쓴다. 벌겋게 성이 난 채 두꺼워진 피부 아래 혈관은 숨어버린다. 여러 번 찔려야 하는 환자에게는 혈액 검사도, 주사제 치료도 고역이다. 진단도 쉽지 않다. 림프종은 조직검사를 통해서만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 암세포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 정확한 진단을 위해 여러 차례 조직검사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선이나 아토피로 알고 수년간 지내다가 뒤늦게 진단받는 경우도 아주 많다.
불행 중 다행히도 대부분의 B세포 림프종은 절제 또는 방사선 치료로 완치에 가까운 결과를 보인다. 피부 T세포 림프종의 대부분은 균상식육종이다. 질환의 이름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식육종이라니. 그러나 다행히도 70% 정도의 환자는 피부 연고 또는 광선 치료 등으로 잘 조절이 된다. 항암제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30%는 여느 불응성 림프종과 경과가 다르지 않다.
피부 림프종은 유독 항암제에 대한 반응이 떨어진다. 림프절이나 다른 장기에 발생한 림프종 종괴는 적어도 일시적일지언정 항암제 치료를 하면 고개를 숙인다. 그런데 피부 림프종은 항암제를 만나도 뻣뻣하다. 환자는 부작용으로 고생하는데 병은 끄떡없으니 최악이다.
피부는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저 미용상 중요한 신체의 일부일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 몸의 내부를 보호하는 중요한 방어막이다. 만화영화에서 적으로부터 기지를 보호하는 투명 방패막과 같다. 그 방패막이 뚫리면 기지는 심한 손상을 입고 슈퍼히어로가 나타나 적을 무찌르지만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늘 승리하지 못한다.
몸뿐 아니라 마음도 아프다. 수년간 이곳저곳을 헤맨 환자는 날이 서 있다. 50대 중년 여성 환자는 지쳤다. 이 의사는 내 병을 고칠 수 있을까? 속 시원하지 않은 의사의 답변에 짜증이 난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며 진단에만 몇 년이 걸렸고 이런저런 치료를 했는데도 병이 좋아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를까라는 기대로 진료실에 들어섰지만 원했던 대답이 아니다. 치료를 시도해 볼 수는 있지만 어떤 환자는 좋아지고 나머지는 아니란다. 더군다나 좋아져도 많은 경우 다시 악화한다고 한다.
이제 갓 스무살이 된 앳된 환자는 모친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기대어 진료실로 들어온다. 말 그대로 중증환자다. 두꺼워진 피부, 손바닥은 갈라져 아프고 진물이 난다. 수저질도 어렵다. 모친의 도움이 없이는 생활과 생존이 어렵다. 병원에 와서는 채혈을 위해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선생님, 좋아질 수 있어요? 환자의 눈에는 또 눈물이 고인다.
몇 년 전 신약이 나와서 다행히 이런 환자의 상당수는 도움을 받는다. 앞의 중년 여성 환자는 이 주사를 한 차례 맞고 3주 후에 내원했을 때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진물이 더 이상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필자도 안도한다. 한 방에 1000만원 치료가 안 들으면 안 되지. (다행히 보험이 되어 본인부담금은 50만원 정도다) 그런데 스무살 환자는 그 치료도 안 들었다. 어쩔 수 없이 효과도 별로 없는 구식 항암제를 맞으며 조혈모세포이식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신약이 있기는 하다. 문제는 앞의 약과 달리 보험이 안 된다. 아무리 하나밖에 없는 딸이지만 어찌 기약도 없이 한 방에 1000만원에 가까운 치료비용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모든 신약이 너무 비싸다. 개발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고 자본주의는 이익을 원한다. 건강보험료는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다. 병도 많고 신약도 많은데 걱정이다. 소수의 환자를 위해 이런 질환에 대한 신약은 보험이 되면 좋겠다.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걱정이지만 속수무책인 진료현장의 의사는 환자 걱정이 더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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