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다돼서 사실상 ‘프리랜서’로
독창적 아이디어·음악… 전성기 맞아
걸작 남기며 ‘교향곡의 아버지’로
원로배우 변희봉이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그는 오랜 시간 배우로 활동했지만, 그가 우리에게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렸던 건 2000년대 이후였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플란더스의 개(2000)’,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등을 함께하면서부터다. 그의 배우 인생은 60부터 전성기였던 것이다.
고전 시대에도 ‘인생은 60부터’를 몸소 실천한 작곡가가 있다. 바로 ‘교향곡의 아버지’로 유명한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1732∼1809)이다. 하이든은 오랜 시간을 에스테르하지 가문에 속해 있었다. 그곳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하며 작곡 생활을 이어나갔다. 프리랜서 작곡가가 아닌, 지금 시대로 하면 직장인에 가까웠다. 그런 덕분에 봉급을 받으며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온한 삶을 누렸다.
이때 탄생한 음악 중 하나가 ‘고별’ 교향곡이기도 하다. 직장인의 비애를 담았던 작품이다. 에스테르하지 가문은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있던 가문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음악가들이 그곳에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단원들이 휴가를 떠나지 못해 불만을 토로하는 일이 벌어졌다. 단원들은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했다. 이를 눈치 챈 하이든은 재치 있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에서 단원들이 한 사람씩 연주를 마치고 무대 뒤로 퇴장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이다. 마지막에는 두 명의 바이올린 연주자만 무대에 외로이 남는다. 후작은 하이든의 뜻을 알아채고 즉시 단원들에게 휴가를 주었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영위한 하이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던 중 하이든은 뜻밖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1790년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사망하면서 고용주가 바뀌었는데, 새로운 고용주는 음악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이든은 퇴직금과 함께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제 하이든은 사실상 프리랜서가 된 것이다. 그의 나이가 60에 가까워진 시점이었다. 이때부터 하이든의 음악은 더욱 과감해졌다. 이제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담은 음악들을 본격적으로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갈고닦았던 기술들을 종합하고 발전시켰다. 하이든이 작곡하는 음악은 더 이상 소수의 귀족들만을 위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의 규모도 커졌다. 직장에서 벗어난 하이든의 음악은 점차 대범해졌다.
그리고 때마침 하이든을 눈여겨본 영국의 공연기획자가 하이든에게 새로운 음악을 제안했고, 하이든은 런던의 관객들을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개시한다. 지금보다 한참이나 기대수명이 짧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하이든에게는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도전이었다. 하지만 하이든은 야심차게 런던으로 떠났고, 이 위대한 도전은 위대한 걸작들인 ‘런던 교향곡’ 시리즈로 남게 된다.
이때 작곡된 작품들 중 대표적인 것들이 95번 교향곡 ‘놀람’과 101번 교향곡 ‘시계’다. ‘놀람 교향곡’으로 불리는 94번은 2악장 연주 중 갑자기 큰소리를 내어 잠든 청중을 깨웠던 일화로 유명하다. 또 ‘시계 교향곡’의 2악장은 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를 음악으로 담았다. 작품의 번호는 모르지만 한 번쯤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음악들이다. 이처럼 하이든의 음악적 영감은 지칠 줄을 몰랐다. 나이 60을 넘어서 전성기를 맞이한 셈이다.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음악들을 자유롭게 실현해 나갔다.
또 이 시기 작곡된 작품 중 트럼펫 협주곡이 있다. 당시 인기가 많지 않았던 트럼펫을 활용해 협주곡을 만들었던 그 자체가 대단한 시도였다. 덕분에 트럼펫의 다양한 연주방법이 널리 알려지고, 오늘날은 하이든의 가장 유명한 협주곡으로 자리 잡았다. 작품의 제목만으론 어떤 음악인지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트럼펫 협주곡의 3악장은 우리 모두가 들어본 바로 그 음악이다. EBS ‘장학퀴즈’ 오프닝 음악에도 오랫동안 사용되었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게임의 참가자들의 아침 기상음악으로 사용되었다.
결국 하이든은 환갑 이후의 삶이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이 시기가 없었더라면 하이든은 ‘교향곡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이든의 인생은 60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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