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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냐 '암살'이냐… 노벨상 시인 네루다 사인 미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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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9-24 20:11:43 수정 : 2023-09-24 20: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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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 50주기 맞아 BBC 집중 조명
사망 당시 전립선암으로 투병 중
칠레 피노체트 쿠데타 직후 타계
"망명 막으려 軍이 독살해" 의혹

“모든 꽃을 꺾을 수는 있어도,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칠레 출신의 시인이자 외교관 겸 정치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스페인어는 물론 모든 언어권을 통틀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란 찬사를 들으며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고인의 정확한 사인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올해가 고인의 50주기인데다 칠레 군사정권에 의한 독살설을 제기한 고인의 운전기사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데 따른 것이다.

칠레 출신의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파블로 네루다의 생전 모습. BBC 홈페이지

23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칠레 시인의 사인’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날은 1973년 9월 23일 6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네루다의 50주기 기일에 해당한다.

 

BBC에 따르면 젊어서 외교관이 된 네루다는 스페인에서 영사로 일하던 시절 스페인 내전(1936∼1939)을 겪으며 공산주의에 빠져들었다. 국민의 민주적 선거로 뽑힌 사회주의 정권이 프랑코 장군이 일으킨 군사반란으로 무너지는 모습에 분노한 그는 스페인 공화파 인사들의 해외 망명을 적극 돕는 한편 스스로 공산당에 가입해 열심히 활동했다.

 

이후 외교관을 그만두고 귀국한 네루다는 공산당 소속으로 상원의원에 당선되는 등 정계에 투신했다. 권위주의 정권의 탄압에 부득이 조국을 떠나 아르헨티나, 멕시코,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를 전전하며 망명객 신세를 경험하기도 했다. 다만 이 시기 시인으로서 네루다의 명성은 더욱 확고해져 1971년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분명한 것은 노벨상을 받을 당시 고인은 이미 전립선암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는 점이다. 이후 1973년 9월 11일 칠레에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민간 정부가 무너졌다. 그로부터 정확히 12일 지난 9월 23일 네루다는 병원에서 숨졌다.

 

공식 사인은 암으로 발표되었다. 그런데 네루다의 지인들이 “사망 전날까지도 조만간 떠날 멕시코 여행 일정에 관해 얘기했다”고 증언하면서 의혹이 불거졌다. 공산당원 출신이자 소련(현 러시아)이 수여하는 스탈린 평화상을 받기도 한 네루다를 눈엣가시로 여긴 피노체트 군사정권이 그를 암살했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칠레 대통령의 장군 시절 모습. 1973년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그는 이듬해인 1974년 대통령에 취임해 1990년까지 칠레를 철권 통치했다. 퇴임 후 군사반란과 인권탄압 등 혐의로 기소됐으나 형사처벌이 이뤄지기 전인 2006년 사망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고인의 부인 등 유족은 이같은 의혹을 전면 부정했다. 그런데 2011년 과거 고인의 운전기사로 일한 마누엘 아라야가 “네루다가 멕시코로 망명해 피노체트 정권 반대 운동을 이끌 계획이란 사실을 파악한 칠레 정부가 병원에서 독극물 주사를 통해 고인을 살해했다”고 주장하며 논란은 완전히 새 국면을 맞았다.

 

칠레 검찰은 네루다의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고자 2013년 고인의 유해를 발굴한 뒤 법의학자들한테 조사를 의뢰했다. 캐나다와 덴마크의 권위있는 학자들이 참여한 부검에선 ‘네루다가 암으로 사망하지 않은 것은 틀림없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다만 독살로 인정할 만한 확실한 증거 또한 발견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10년간 네루다의 사망 원인은 미궁에 빠져 있는 상태다.

 

그러는 사이 독살설을 처음 제기한 아라야도 올해 6월 7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네루다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풀기가 더 어려워진 셈이다. 그는 사망 직전 BBC와의 인터뷰에서 “네루다는 암살당한 것이 분명하다”며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말해왔고 죽을 때까지 그렇게 말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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