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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여자농구 남북전, 북한 응원단과 함께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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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9-29 21:55:31 수정 : 2023-09-29 21: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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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 이길꺼에요.”

 

2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농구 여자 조별리그 C조 2차전 우리나라와 북한의 경기를 보던 도중 한 북한 관객이 이렇게 말했다. 기자는 이날 경기를 북한 응원단 옆에서 함께 관람했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북한을 81-62로 물리쳤다.

 

북한 관중들이 2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열린 한국과 북한의 여자농구 경기에서 팀을 응원하고 있다. 항저우=정필재 기자

기자는 경기보다 응원단에 집중했다. 북한 70여명의 관중들은 힘차게 ‘조선’을 외치며 응원을 보냈다. 기자는 응원단을 통제하는 남성 옆으로 자연스럽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60대 초반 정도로 보였던 이 관중은 경기가 펼쳐지는 내내 앉지 않고 서 있었다. 목에는 망원경을 걸어 놓은 채로.

 

경기 시작 전 기자가 인사를 건네봤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오해할 정도로 대꾸가 없었다. 기자가 옆에서 ‘7번(박지수)가 잘하는 선수다, 13번(김단비)은 작년에 최우수선수(MVP)를 받은 선수다’라고 소개했지만 역시 아무런 반응은 없었다. 하지만 관중들은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슛이 빗나갈 땐 “아 왜 자꾸 안 들어가니”라는 탄식을 내뱉었고, 점수 차가 벌어질 땐 “조금만 더 힘내라”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조직적인 응원도 이어졌다. 좌석 제일 앞에서 있던 관객이 “‘용기를 내어라’ 갑니다”라고 외치면, 다같이 “용기를 내어라 조선 선수들”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같은 박자에 “이겨라, 이겨라, 조선 이겨라”라고 응원을 보내거나 “잘한다, 잘한다, 조선 잘한다”라는 응원으로 분위기를 달구기도 했다. 한국 선수들이 자유투를 던지려고 할 땐 ‘우, 우, 우’ 짧게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북한이 득점에 성공할 때마다 응원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공기를 요란하게 흔들며 박수를 쳤다. 이 때문에 뒷좌석 관객의 시야를 가린다는 항의가 들어왔다. 안내요원이 중국어와 영어로 이를 안내했지만 북한 관객들은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안내요원의 요청에 목에 망원경을 건 관중에게 “일어서면 뒷 분들이 안보이신대요”라고 전달했지만 그는 기자를 힐끗 째려볼 뿐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북한 응원단은 여전히 선수들의 득점이 터질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뒤에 앉은 중국 관중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참고 경기를 지켜봤다. 

 

망원경을 목에 건 관중이 기자의 질문에 응답한 건 2쿼터가 시작되기 직전이다. 북한이 13-11로 한국을 앞선 상황에서다. 기자가 ‘북측이 농구를 잘한다, 다른 종목도 잘하느냐’고 묻자 “우리는 모두 잘해요. 다 이길 거에요”라고 답했다. 어떤 종목을 사람들이 좋아하느냐는 질문에는 “다”라고 짧게 답한 뒤 “체육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소”라고 대꾸했다. 이후 이 관객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기자는 제일 앞줄에 앉은 젊은 여성 관객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걸었다. 이 여성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미간을 찌푸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3쿼터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려는 다른 북한 관객을 따라가 뒤에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이 관객은 교정기를 착용한 치아가 훤히 드러나도록 씨익 웃었지만 기자를 보더니 당황하며 얼굴을 가리고 자리를 피했다.

 

한 북한 관중이 2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열린 한국과 북한의 여자농구 경기 도중 스마트폰의 알람을 확인하고 있다. 항저우=정필재 기자

일부 북한 관중들 주머니엔 휴대전화로 보이는 묵직한 물건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이를 꺼내지 않았다. 망원경을 목에 건 관중만 때때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여기엔 ‘리명수’라는 이름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고, 한자로 된 알람도 눈에 들어왔다. 충전단자는 C타입이었다. 스마트 워치를 착용한 북한 관객은 보이지 않았지만 2000년대 초반 유행하던 블루투스 이어폰을 착용한 관객은 눈에 들어왔다.

 

4쿼터가 시작했을 때도 기자는 말을 걸었다. 대꾸가 없길래 존함이라도 알고 싶다고 말을 걸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관중이 “우리도 돈을 내고 들어왔는데 왜 자꾸 말을 거느냐”며 “경기에 집중 좀 합시다”라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정말 값을 지불했을까. 안내요원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하니 “북한 응원단도 티켓을 샀다”고 말했다. 방해하지 않겠다고 가볍게 사과했지만 듣지 않았다. 오늘 추석인데 행복한 시간 보내길 바란다고 말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계속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경기가 우리나라의 승리로 끝나자 이들은 아쉬운 듯 ‘에잇’하는 소리를 내며 자리를 떠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항저우=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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