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는 2억8000만년 전에 출현해 빙하기를 거치며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그래서 찰스 다윈은 은행나무를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불렀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는 단풍, 억새, 낙엽과 함께 가을의 상징이다. 서울 도심에서는 이즘 덕수궁 돌담길, 삼청동 은행나무길, 신사동 가로수길 등에서 노란 물결을 만날 수 있다. 경기 양평 용문사, 충남 금산 보석사, 강원 원주 문악읍 반계리의 은행나무와 경북 영주 부석사 입구, 충남 보령 청라마을, 강원 홍천 은행나무 숲길에서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전국의 천연기념물은 모두 477건인데, 그중 은행나무가 25그루다.
은행나무는 가을철 아름다운 풍경만 제공하는 게 아니다. 수명이 길고, 공해에도 강하다. 불이 잘 붙지 않아 도심에서 화재가 확산하는 걸 막을 수 있다. 은행나무는 배기가스를 흡수해 정화하는 능력이 있다. 열매는 천식이나 기침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은행잎에서 추출한 징코플라본글리코사이드는 혈액순환 개선제로 쓴다. 쓰임새가 이렇게 다양하다 보니 한때 전국 가로수의 40% 가까이 차지할 만큼 사랑을 받았다. 지금도 서울 가로수의 3분 1가량인 10만여 그루가 은행나무다.
가을철 각별한 정취를 제공하지만, 열매에서 나는 악취는 은행나무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고약한 냄새로 인해 주민들의 민원이 잇따르자 지자체는 ‘은행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9~10월이면 은행 열매를 수거해 가는 작업을 벌인다. 진동 수확기를 구입해 나무를 흔들어 열매를 떨어뜨리거나, 깔때기 모양의 그물망을 매달았다. 은행의 고약한 냄새는 겉껍질 속 점액에 있는 ‘비오볼’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암나무에서만 은행이 열린다. 그래서 심지어 암나무를 수나무로 바꿔 심는 작업을 벌이는 지자체까지 등장했다. 약물 주입으로 아예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곳도 있다.
은행나무가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으면서 서울의 은행나무 가로수는 지난 10년 사이 1만 그루 이상 사라졌다. 가로수로 쓰이지만 은행나무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위기(EN)’ 등급으로 지정된 국제 멸종위기종이다. 은행나무는 여러 이점도 있는 만큼 은행이 떨어지는 짧은 시기만 사람이 냄새를 감수하고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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