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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내린 물이 바닥을 적신다’는 뜻의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라는 말이 있다. 적하(滴下)효과, 하방침투 효과라고도 한다. 1904년 독일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이 유행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세운 가설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주로 경제용어로 쓰인다. 대기업이 성장하면 그 혜택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돌아가 경기가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감세정책의 근거로도 활용된다. 미국의 41대 대통령 조지 부시는 재임 중이던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이를 경제정책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소아과 오픈런’(문 여는 시간에 맞춰 대기), ‘응급실 뺑뺑이’로 대표되는 지역·필수의료 붕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의대 정원 확대를 놓고 낙수효과 논쟁이 불붙고 있다. 물론 수도권 병원 쏠림의 원인은 많을 것이다. 1998년 특정 지역 병원만 이용토록 하는 의료보험 진료권 제도가 폐지됐다. 이후 KTX 개통은 ‘상경 진료’에 날개를 달았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2006년 이후 17년째 의대 정원이 묶여 있는 것이다.

내년 상반기 의대 증원 규모 발표를 앞두고 연 500명, 1000명, 심지어 3000명 증원 얘기까지 들리면서 학원가가 들썩인다. 한 입시학원 설명회에는 의대 정원 확대에 따른 관심이 집중되면서 지난해의 4배가 넘는 학부모가 몰렸다. 상위권 학생들이 지방 의대로 빠져나가면 상위권대 진학이 쉬워지는 낙수효과를 기대해서다. 2024학년도 수능에서 반(半)수생·N수생이 역대 최대인 8만9642명인 것도 같은 이유다.

의료계도 극명하게 갈린다. 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사단체는 정원 확대가 성형외과·피부과 등 쏠림만 심화시킬 뿐 필수 의료 분야 낙수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지방 국립대 병원 등은 ‘반대를 위한 반대 논리’라며 낙수효과는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의대 정원 확대가 인기 과 포화 상태로 이어지고 수익성 악화에 따른 필수 의료 분야 선택이 늘 것이라는 것이다. 성형외과와 피부과 등이 경기 사이클을 많이 타는 업종이라는 논리도 제시됐다. 물론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필수의료 인프라 개선과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한다. 다만 국민의 건강권을 생각한다면 의사부터 늘리는 게 급선무 아닐까.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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