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일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이 전시 일제 지도자들에게 형사책임을 묻기 위해 설치한 도쿄 극동 국제군사재판소에서 판결이 내려진 지 75년이 되는 날이다. 1946년 4월 29일 시작된 재판은 1948년 11월 4일부터 12일까지 1781쪽 분량의 판결문 낭독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앞서 열린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의 나치 독일 지도자 재판과 함께 도쿄재판은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사법정의 실현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와 마찬가지로 도쿄 극동 국제군사재판소의 관할범죄는 평화에 반한 죄, 전쟁범죄, 인도에 반한 죄 3가지였다. 당시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 최고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선전포고 없이 이루어진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따른 인명 살상은 평시 범죄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여 국제 검사단은 기소장에 살인죄(murder)를 소인으로 추가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평화에 반한 죄와 별도로 살인죄를 다룰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세 관할범죄 중 침략전쟁의 계획, 준비, 개시, 수행, 공모를 처벌하는 평화에 반한 죄는 가장 논란이 되었다. 국가 지도자의 침략행위 기소는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소급처벌, ‘승자의 정의’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독일은 1933년 이후 히틀러의 나치당이 계속 집권하였으나 일본은 침략 모의가 시작되었다는 1928년부터 1945년까지 내각이 17번이나 바뀌어 공모가 성립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 제기되었다.
더군다나 국가 지도자 개인을 침략범죄로 처벌하는 것은 그 국가를 ‘침략국’으로 규정짓는 효과까지 있었다. 1946년 연합국의 천황제 폐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채택된 군대 보유를 금지하는 ‘평화 헌법’의 개정론자들이 도쿄재판의 정당성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일본 피고인 전원 무죄를 주장한 반대 의견을 낸 인도 출신 라다비노드 팔 재판관은 전후 일본의 침략전쟁 부정론자들에게는 영웅이 되었다. 팔 재판관이 신랄하게 지적했듯이 무력으로 아시아 각지를 점령하고 식민제국을 유지하던 서양 국가들과 한때 나치 독일, 일제와 손잡고 침략행위를 일삼던 소련이 일제 침략을 심판하는 것은 분명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물론 일본군 점령을 경험하지 않은 인도 벵갈 지방 출신의 팔 재판관과 달리 중국 출신의 메이루아오 재판관, 필리핀 출신의 델핀 하라닐라 재판관이 동참한 다수 의견은 도쿄재판을 통해 침략행위를 처벌하는 선례를 만들어야 앞으로 침략전쟁을 억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입각하였다.
한편,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특히 주목하였던 자국 포로에 대한 학살, 학대행위에 대해서는 도쿄재판 외에도 각국의 특별 군사재판에서 수천 명의 일본 가해자들이 기소되었다. 이는 1949년 내용이 강화된 전쟁 포로의 대우에 대한 제네바협약 채택에 기여하였으며, 이듬해 발발한 한국전에서 미국은 북한군의 자국 국군포로에 대한 전쟁범죄를 조사하여 전범재판을 준비하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향년 91세로 돌아가신 귀환 국군포로 김성태씨와 같이 1953년 정전협정 체결 뒤에도 북한이 5만명이 넘는 국군포로를 억류하여 탄광 강제노역 등에 투입한 것을 전쟁범죄라 할 수 있는 것에도 도쿄재판의 판례가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도쿄 극동 국제군사재판소에서 거의 원용되지 않았지만 재판소 헌장에서 관할 범죄로 규정된 인도에 반한 죄(반인도범죄)는 전시 적국민에 대한 잔학행위만 처벌 대상으로 삼던 기존의 전쟁범죄와 달리 평시 자국민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인권침해도 처벌할 법적 근거를 확립하였다. 이는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에서 북한의 중대한 인권침해가 반인도범죄에 해당되며 국제형사재판소(ICC) 등에서 수사에 나서야 한다는 권고를 내는 근거가 됐다.
물론 도쿄재판은 당시 일본의 국가원수이자 육해군을 통솔하던 히로히토 일왕, 잔학한 생체실험과 세균전을 자행한 731부대 이시이 시로 등을 기소 대상에서 배제하였고,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등을 반인도범죄로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한계 등이 분명하다. 그러나 75년이 지난 지금 도쿄재판은 국제사회의 사법정의 실현 시도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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