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일곱 살 딸아이와 함께 백두산에 다녀왔다. 아이의 친구, 그의 중학생 누나, 나와 비슷한 연배라 친구처럼 지내는 그 집 엄마까지 모두 다섯이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3박4일 짧은 일정이었으나 짐 싸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이와 가는 여행은 언제나 최악의 경우도 대비하고 가능성이 희박한 변수도 고려해야 하므로 짐이 많게 마련이지만 이번에는 추가로 날씨 문제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평균 기온 영하 15도, 체감 기온은 영하 25도라는 백두산 일대의 무시무시한 추위 때문에 두꺼운 패딩이며 털부츠, 털모자, 장갑에 양말에 목도리까지 온갖 방한 용품을 챙기고 나니 짐 부피가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최종 중량 14㎏. 이 정도면 선방했다 싶었으나 그래도 여행 가방은 가벼울수록 좋다고, 더구나 산에 오를 때는 눈썹도 무거운 법이니 ‘어지간한 것은 포기하자’ 주의였던 나로서는 좀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정말 당혹스러웠던 것은 아이 친구 가족을 만난 다음이었다. 인원이 셋임을 감안해도 그들의 짐은 배낭을 빼고도 캐리어가 세 개요, 무게를 합산하니 무려 40㎏에 육박했다. 세상에. 대체 뭘 이렇게 많이 싸 오신 거예요? 그 엄마가 수줍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게요. 이것저것 싸다 보니 이렇게 되었어요.
그의 짐 목록의 세부는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일단 무전기 2개. 혹시라도 아이와 떨어졌을 때 연락하려고 샀단다. 페트병 생수 여러 병. 혹시 아이가 물갈이를 할까 봐 준비했단다.
그가 문득 중학생 아이가 얼마 전 독감을 앓은 이야기를 했다. 저도 잠복기일 수 있으니 병원 가서 검사를 받았어요. 저도 아이도 괜찮대요. 그래도 모르는 일이니 인플루엔자 치료제를 처방받아 가져왔어요. 거기서부터 나는 놀라움을 넘어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만물상을 차리셔도 되겠어요. 무인도에 불시착해도 아무 걱정 없겠어요. 그가 내 딸아이가 좋아하는 간식, 내가 혹시 안 가져왔을 상황에 대비한 여유분의 방한 용품까지 챙겨 왔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넘어 감동했다는 이야기는 쏙 빼고 말이다.
여행의 매력은 낯선 곳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탐색하는 일에도 있지만, 동행한 이의 잘 몰랐던 면모를 새로이 발견하고 그를 더욱 좋아하게 되는 일에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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