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3일 당내 기득권 타파의 대상으로 지도부와 중진, 친윤(친윤석열)계 핵심 의원들을 정조준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총선을 5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야권보다 발 빠르게 인적 쇄신 이슈를 선점하는 동시에 '뇌관'이라 할 수 있는 공천 문제를 건드리면서 당내 물갈이 논의에도 불을 댕긴 것으로 풀이된다.
인 위원장은 이날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혁신위 4차 회의를 마친 뒤 본인이 직접 나선 브리핑에서 이들을 상대로 총선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 사이 선택지를 제시하며 희생을 요구했다.
이 제안은 혁신위 공식 의결 사안은 아니었다. 이날 회의에서 정치적 방향성에는 공감을 이뤘지만, 실현 가능성을 두고 이견이 있었고, 이날 발표 여부 역시 인 위원장을 제외한 혁신위원 12명의 의견이 6대 6으로 갈렸다고 한다.
결국 당내 메가톤급 파장을 불러올 제안을 인 위원장이 직접 발표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린 셈이다. 김경진 혁신위원은 인 위원장 개인의 '정치적 권고 메시지'라고 규정했다.
인 위원장의 발표에는 이 정도의 파급력을 지니지 못한 인적 혁신안으로는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여권의 최대 약점으로 중도층, 무당층 등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민심 이반이 지목됐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제안은 총선 때마다 불거진 여당 내 고질적인 공천 파동과는 결이 다르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친박 학살', '진박 감별' 등 극심한 내부 분열과 외부 비난의 빌미가 된 비주류 찍어내기가 아닌 주류 세력을 대상으로 해서다.
인 위원장이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당내에선 사실상 특정 인사들을 과녁으로 삼았다고 보는 분위기다.
특히 "대통령과 가까운 의원들"이란 언급에 김기현 대표·윤재옥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물론이고 권성동, 장제원, 이철규, 박성민, 박수영 의원 등 친윤 핵심 의원들의 이름이 희생의 대상으로 거론됐다.
당 안팎은 벌집을 쑤신 듯 발칵 뒤집혔다. 특히 당사자들은 "월권"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희생'을 요구받은 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영남에서 중진들이 물러나면 그 빈자리에 검핵관(검찰 핵심 관계자), 용핵관(용산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이 내려오는 것 아니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친윤계 의원은 "정권교체에 열과 성을 다한 국회의원에게 훈장을 줘야지 왜 불이익을 주려고 하느냐"며 한층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이런 혁신위원장을 임명한 책임을 김기현 대표가 져야 한다"고 주장한 친윤 의원도 있었다.
"수도권 당협위원장은 영문도 모르고 물러나라는 것이냐", "반헌법, 비민주적 월권" 등 영남권 중진의 이동으로 유탄을 맞게 될 이른바 '수도권 험지' 인사들의 성토도 만만치 않았다.
반대로 찬성 의견도 있었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초선 비례 이용 의원은 "총선 승리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는 불출마든 험지 출마든 당에서 요구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말했다.
전임 혁신위원장인 최재형 의원은 "혁신과 변화는 언제나 저항과 고통이 수반된다"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인 위원장에게 힘을 실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친윤 핵심 의원들을 거명하며 "모두모두 집에 가게 생겼네"라고 비꼬기도 했지만, "거 혁신위원장 시원하게 한번 지르네. 혁신이란 바로 그런 것"이라고 긍정평가했다.
이날 인 위원장이 내놓은 파격 혁신안의 실현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우선 당 지도부가 혁신위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수용할지부터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도부는 일단 즉각적 반응을 삼가면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김 대표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안이 오면 검토해보겠다"고 원론적으로 답했고, 또 다른 핵심 당직자도 "일단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다"며 말을 아꼈다.
정식 안건이 아니어서 최고위가 가부 결론을 내지 않아도 되는 만큼,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도 벌써부터 제기된다.
당의 한 관계자는 "개인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영역이며, 지도부가 강요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지도부와는 선을 긋고자 하는 기류가 감지됐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중진 용퇴 결단'을 촉구했지만, 후속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흐지부지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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