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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전, 최강국의 탄생』 폴 케네디 “결정적 대양 해전에서 결정되는 제해권, 전쟁 승리 좌우한다” [김용출의 한권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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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1-10 07:30:00 수정 : 2023-11-07 2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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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9년 전후 세계에서 유의미한 해군력을 보유한 주요 국가는 6개국이었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일본, 독일, 이탈리아. 전체적으로 영국 해군이 최강이었고, 미국 해군이 영국을 바짝 뒤쫓고 있었다. 추축국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 역시 바다의 세력관계를 뒤엎기 위해서 호시탐탐 준비 중이었다.

 

특히 일본은 항공모함을 보유한 세 국가 중 하나였고, 군함들이 항모 기동부대를 이루도록 편성돼 해군의 조직력도 우수했다. 6척의 플리트 항공모함과 4척의 경항공모함, 10척의 전함, 36척의 순양함, 113척의 구축함 등을 갖췄다. 이는 영국과 미국이 보유한 해군 전투력의 70~80퍼센트 수준. 다만 대잠수함 역량이 미흡했고, 천연자원이 부족했으며, 육군과의 연계가 미흡했다.

 

미군에 의해 침몰하는 야마토함

해군 역량에서 이 같은 다극 체제가 형성된 것은 기본적으로 영국과 미국 해군이 전함과 함포의 약 30퍼센트를, 일본 해군이 20퍼센트, 프랑스와 이탈리아 해군이 각각 10퍼센트씩 할당되는 1921년 워싱턴 조약에 따른 결과였다.

 

1939년 9월,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유럽에서 제2차 대전이 발발했다. 영국과 프랑스 해군이 독일 해군을 압도한 까닭에 히틀러가 노르웨이를 비롯해 북서유럽 지역을 장악하기 전까지는 아직 제한적인 전쟁이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노르웨이를 비롯해 북서유럽을 장악한 뒤에는 해군력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1940년 6월, 프랑스가 독일에 무너지고 이탈리아마저 참전을 선언하면서 유럽의 바다는 위태로워졌다. 독일은 유보트를 동원해 영국의 병참선을 차단하려 했다.

 

영국 해군은 세력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다. 처칠은 독일과의 평화 협상을 단호히 거부하면서 해군과 방공망, 자원을 믿고 싸우자고 독려했다. 대영제국의 전투자원을 독일과의 전투에 대거 투입했다.

 

“아침 7시40분 직후, 일본 폭격기들이 떨어뜨린 포탄에 표적이 산산조각 나며 평화가 깨졌다. 애리조나호는 갈기갈기 찢어져 몇 분 만에 가라앉았고, 1177명의 승조원이 목숨을 잃었다. 테네시호와 메릴랜드호는 폭탄 세례에 크게 부서졌고, 웨스트버지니아호와 오클라호마호는 어뢰에 맞아 파손됐고, 캘리포니아호와 네바다호도 어뢰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그렇게 첫 공격조가 휩쓸고 지나가자, 곧이어 170대의 항공기가 벌떼처럼 몰려와 부분적으로 파손된 전함들을 완전히 끝장내고, 다른 군함들까지 격침하려고 공격을 퍼부었다.”(300쪽)

 

진주만 기습 공격

1941년 12월, 일본이 충격적인 진주만 기습 공격을 비롯해 홍콩, 필리핀을 동시에 공격하면서 태평양에서도 해군력의 균형에 변화가 닥쳐왔다. 독일-이탈리아-일본에 영국-소련-미국이 맞서는 진정한 세계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2년 이상 주요 대양과 해역에서 제해권을 장악하려는 다툼이 벌어졌다. 1942년 특히 많은 해전이 벌어졌다. 독일 해군은 유보트를 동원해 연합국 수송선단을 기습했고, 영국 해군은 우월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제해권을 유지하려 애썼다. 태평양에선 미드웨이 해전과 과달카날 전투를 거치며 일본의 예봉이 꺾였지만, 여전히 팽팽했다.

 

1943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지중해에서 영국군과 미군은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로 진격했고, 북대서양에선 첨단 레이더와 강력해진 폭뢰로 독일 유보트 부대를 북대서양에서 밀어냈다.

 

“5월5일이 어둠에 잠겨갈 때 영국 프리킷함 테이호가 7척의 유보트가 수면에 올라 수송선단의 항로를 가로막고 있는 것을 탐지했다. 영국이 개발한 센티미터파 레이더 덕분에 호위함들은 유보트를 볼 수 있었지만 유보트는 그렇지 못했다⋯23시09분, 영국 구축함 비뎃호의 레이더가 5100야드 지점에서 적군을 탐지, 700야드 앞에서 잠수하는 게 목격된 잠수함에 10발의 폭뢰를 투하했다. 역사학자들의 기록이 맞다면, 그 첫 공격에 유보트 531이 침몰했다.”(672쪽)

 

태평양에서도 미 해군이 수십 척의 첨단 항공모함과 레이더, 수천대의 전투기와 폭격기 등을 동원해 일본 해군에 확고한 우위를 차지했다. 연합국이 주요 대양과 해역에서 제해권을 장악함으로써 연합국의 승리가 결정되었다.

 

“1939년부터 1942년까지는 화살표가 독일과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밖을 향해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지만, 그 이후에는 화살표가 반대 방향, 즉 바깥 세계에서 추축국들의 수도를 향한다.”(378쪽)

 

노르망디 상륙작전

특히 연합국에 최종적인 승리를 안겨준 열쇠는 바로 미국과 영국이 전투원과 군수품을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끝없이 실어 나른 덕분에 가능했다. 군인들과 군수품이 봇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면서 필리핀의 레이테만과 유럽의 노르망디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역사는 실제로도 대군의 편이었다. 하늘에서는 수천 대의 영미 폭격기가 제3제국의 도시들과 산업체를 찢어버렸다.”(515쪽)

 

40여 년 간 예일대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역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강대국의 흥망』를 썼던 저자 폴 케네디가 바다에서 펼쳐지는 제2차 세계대전사 이야기 『대해전, 최강국의 탄생』(강주헌 옮김, 한국경제신문)으로 돌아왔다. 그는 신간에서 미국과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6대 해군 강국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제2차 대전 동안 승리를 위해 어떻게 움직였고, 그 균형추가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추적한다. 해전의 승리가 연합군의 승리로 이어진 단계들을 찾아내고, 그 단계들 사이에서 어떤 인과관계가 있었는지를 추적하면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전쟁의 이면과 진실을 파헤친다. 저자는 이를 통해서 대해전이 제2차 대전의 승패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고, 제2차 대전이 어떻게 해군력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하고, 그로 인해 세계 주도권의 판도가 어떻게 바뀌었는가에 대한 생생하게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2차 대전이 끝난 뒤 주요국의 해군 풍경은 전쟁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의 해군은 완전히 괴멸되거나 규모가 크게 줄면서 다국적 균형이 사라졌다. 반면 미국과 영국 두 나라만 대함대를 보유하게 됐고, 특히 미국 해군력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증가돼 있었다. 마침내 미국이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진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2차 대전 기간 바다에서 벌인 전투와 군사 활동, 수송 선단과 상륙작전 등을 상세하게 담아낸다. 이를 위해 대표적인 해양화가 이언 마셜이 주요 사건과 장면, 군함을 그린 수채화 53점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케네디의 다음 말이 맴돌지도.

 

“해군의 지배력은 대양에서 벌어지는 결정적인 전투에서 획득되고, 해전의 승리를 위해서는 그런 전략을 수행할 수 있는 큰 중심력이 해군에 필요하다.”(167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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