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비율 0.2%인데 사용량 많아
시설 규모 등 고려 인상 폭 차등화
주택용·소상공인용 요금은 ‘동결’
한전, 부지 매각 등 추가 자구책
재계 “경영활동 위축 심화” 우려
“정부 리쇼어링 독려와 모순” 지적
정부가 중견·대기업에 해당하는 산업용(대용량) 전기요금을 9일부터 ㎾h(킬로와트시)당 10.6원 인상한다. 주택용과 소상공인·중소기업용 전기요금은 동결했다. 201조원 부채를 떠안은 한국전력은 조직을 축소하고 인재개발원 부지와 자회사 지분을 매각하는 추가 자구책을 내놨다.
김동철 한전 사장과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전기요금 인상 방안을 발표했다.
한전은 이번에 전체 산업용(약 44만호) 중에서도 대용량 고객(4만2000호)의 전기요금을 ㎾h당 평균 10.6원 인상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이 사용하는 산업용 요금은 경제에 미치는 부담을 고려해 동결했다. 지난해 기준 대용량 산업용 전기 이용 고객은 전체의 0.2% 수준이다. 이들의 전력 사용량은 26만7719기가와트시(GWh)로, 전체(54만7933GWh)의 절반(48.9%)에 육박한다. 이번 인상으로 올해 말까지 4000억원의 재무 적자를 해소하고, 연간 2조7000억원가량의 적자 감축 효과가 있을 것으로 한전은 내다봤다.
한전은 대용량 산업용 요금도 시설 규모 등 요금 부담 여력을 고려해 전압별로 세부 인상 폭을 차등화했다. 고압A(3300∼6만6000V 이하)는 ㎾h당 6.7원, 고압B(154㎸)와 고압C(345㎸ 이상)는 ㎾h당 13.5원을 각각 인상한다. 주택용·소상공인용 전기요금을 동결한 것은 물가와 서민경제에 미치는 부담을 고려한 조치다.
한전은 이날 추가 자구책도 내놨다.
2021년 이후 누적 적자 47조원, 상반기 기준 부채 201조원에 달하는 등 재무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5월 한전이 발표한 25조7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에 이은 것으로, 추가적인 자산 매각과 본사조직 축소 등이 포함됐다.
먼저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2500억원 가치의 한전 인재개발원 부지(64만㎡)를 매각한다. 자산 가치를 높이기 위해 대부분 자연녹지(99.3%)인 해당 부지의 용도변경을 추진한 뒤 매각할 방침이다.
한전KDN의 지분 가운데 20%도 민간에 매각한다. 한전KDN은 전력산업 분야의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를 전담하는 한전 자회사로,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필리핀 칼라타간 태양광 사업의 지분 38%도 전량 매각한다.
한전 조직 20% 축소 및 인력 효율화 계획도 포함됐다. 현재 ‘8본부 36처’인 본사 조직을 ‘6본부 29처’로 줄이고, 유사 조직 통합, 비핵심기능 폐지 등 본사 규모를 축소한다. 동시에 소규모 지사를 거점 지사로 통합하고, 통합 시너지가 큰 업무는 지역본부나 거점 사업소에서 일괄 수행한다.
인력 효율화를 위해 공공기관 혁신계획에 따른 ‘인원 488명 감축’을 올 연말까지 완료하고, 설비관리 자동화 등을 통해 2026년까지 700명 수준의 운영인력을 추가 감축한다. 2급(부장급) 이상 간부들의 내년 임금 인상분 반납과 위로금 재원 확보 범위 내에서 희망퇴직도 실시한다.
경제·산업계는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추광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기업의 고통 분담도 필요하지만 고물가·고환율·고금리로 이미 한계상황까지 놓인 기업들의 경영활동 위축 심화가 우려된다”고 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산업용 전기요금만 올린 ‘핀셋’ 인상이 전기요금 원가주의 원칙에 부합되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정부가 법인세 인하 등 기업의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자국 복귀)을 독려하는 동시에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나선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 방침에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 대규모 설비 투자를 해야 하는데, 정부가 여기에 추가 비용까지 얹어준 꼴이라는 것이다.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전자, 자동차, 조선 등 제조업계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장비와 설비를 적극 도입하고 전기 사용 절감 방안을 추가로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